미 의회의 대중 바이오·투자 봉쇄가 드러낸 트럼프 2기 행정부 대전략의 실체와 산업과 안보를 연결한 한국의 대전략
이미지 확대보기군사 예산을 넘어선 국방수권법의 변신
미국 상원이 12월17일(현지 시간) 2026회계연도 국방수권법 최종안을 찬성 다수로 통과시키면서 세계 질서의 중요한 변화가 하나 더 법률의 형태로 고정되었다. 이 법은 표면적으로는 9천억 달러가 넘는 국방 예산을 승인하는 연례 법안이지만, 이번에는 전통적인 무기체계나 병력 규모를 넘어 기술·투자·연구 협력의 영역까지 국가안보의 범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특히 중국을 겨냥한 바이오테크 규제와 대중 해외투자 통제 조항은 미중 경쟁이 이제 군사력 경쟁의 단계를 넘어 국가 시스템 전체의 경쟁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국방수권법은 더 이상 군대의 장비 목록을 정리하는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어떤 세계 질서를 상정하고 있으며, 그 질서 속에서 누구를 동맹으로, 누구를 구조적 경쟁자로 규정하는지를 드러내는 헌장에 가까워지고 있다.
바이오테크가 국가안보가 된 이유
이번 국방수권법에서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중국 바이오테크 기업과의 거래를 사실상 차단하는 조항이다. 미국 연방 정부와 계약하는 기관, 연방 자금을 받는 대학과 연구기관은 중국의 특정 생명공학 기업과 연구·조달·협력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단순한 무역 제재가 아니라 연구 생태계 전체를 분리하는 조치다.
미국 의회가 바이오테크를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다루는 이유는 명확하다. 생명공학은 더 이상 의료 산업의 한 분야가 아니라, 데이터·AI·군사 응용이 결합된 전략 기술로 인식되고 있다. 유전자 데이터, 감염병 연구, 생물학적 제조 역량은 군사적·정보적 가치로 전환될 수 있으며, 의회는 이 영역에서 중국과의 상호의존 자체를 위험으로 규정했다.
이로써 미중 경쟁은 반도체와 AI를 넘어 인간의 생물학적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이는 기술 경쟁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분기점이다.
‘아웃바운드 투자’ 통제의 구조적 의미
이번 국방수권법이 담고 있는 또 하나의 핵심은 미국 기업의 대중 해외투자를 중심으로 한 '아웃바운드 투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다. 그동안 미국은 외국 자본이 자국에 들어오는 것을 심사하는 체계를 중심으로 안보를 관리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 자본이 중국의 전략 산업으로 흘러가는 것 자체를 국가안보 위험으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제재를 넘어선 패러다임 전환이다. 자본 이동의 자유라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핵심 원칙이 국가안보라는 명분 아래 제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의회는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에 미국의 자본과 기술이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구조를 차단하려 한다.
트럼프 2기와 ‘위험 감소’의 이중 구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강경한 법제화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식 국가안보 전략보다 더 매파적이라는 사실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외교적으로는 거래와 협상을 강조하며 중국과의 전면 충돌을 피하려는 ‘위험 감소’ 프레임을 사용한다. 그러나 의회는 그와 동시에 중국을 장기적·구조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되돌릴 수 없는 법률적 장벽을 쌓고 있다.
이 이중 구조는 트럼프 2기 미국 전략의 본질을 보여준다. 외교 무대에서는 유연성을 유지하되, 제도와 법률의 층위에서는 중국을 배제하는 질서를 고착화하는 방식이다. 즉, 협상은 가능하지만 복원은 불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단기적 긴장을 관리하면서도 장기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형적인 대전략의 모습이다.
미중 경쟁의 무게중심은 ‘군사력’이 아니라 ‘시스템’
이번 국방수권법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미중 경쟁의 무게중심이 더 이상 항공모함 숫자나 미사일 성능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경쟁의 핵심은 기술 표준, 연구 생태계, 자본 흐름, 데이터 접근권, 그리고 산업 구조에 있다.
미국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격파하려 하기보다, 중국이 선진 기술 국가로 도약하는 경로 자체를 차단하려 한다. 이는 냉전기의 봉쇄 전략과 유사하지만, 군사 동맹 대신 기술·금융·법제 동맹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훨씬 정교하다.
북러 협력과 중러 블록의 한계
이러한 맥락에서 북러 협력과 중러 연대도 다시 보아야 한다. 러시아와 북한의 협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압력 속에서 형성된 전술적 연대에 가깝다. 군수물자와 병력, 제재 회피라는 필요가 만든 결합이지, 장기적 가치 동맹은 아니다.
중국 역시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을 유지하지만, 북한과의 관계는 여전히 관리와 거리두기의 대상이다. 이 블록은 반미라는 공통분모를 가지지만, 경제·기술·이념적 일관성은 취약하다.
미국은 이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을 겨냥한 전략은 군사적 봉쇄보다 기술·산업 질서 재편에 집중된다.
한국이 직면한 구조적 딜레마
이 변화는 한국에 특히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미국의 핵심 동맹이자 중국과 깊게 얽힌 산업국가다. 미 의회의 대중 규제가 강화될수록 한국 기업과 연구기관은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문제는 안보다. 미국이 위험 감소 전략으로 이동할수록, 중국·북한·러시아라는 핵보유 국가들의 위협에 대해 미국의 확장 억지가 언제나 자동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가정은 점점 불확실해진다. 동맹은 유지되지만, 우선순위는 변할 수 있다. 이것이 트럼프 2기와 미 의회 전략이 동시에 던지는 신호다.
자체 핵무장 논의가 다시 떠오르는 이유
이 지점에서 한국의 자체 핵무장 논의는 더 이상 이념적 금기가 아니라 전략적 검토 대상이 된다. 미국의 확장 억지가 약화될 가능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안보 전략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자체 핵무장은 단순한 무기 선택이 아니라, 미국과의 동맹 신뢰를 전제로 한 억지력 보완 수단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는 일본, 호주 등 역내 국가들과의 협력 구조 속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 핵을 중심으로 한 억지 구조는 고립이 아니라 다층적 협력의 문제다.
산업과 안보를 연결하는 한국의 대전략
미국이 기술·산업 질서를 국가안보의 핵심으로 끌어올린 지금, 한국의 대전략 역시 안보와 산업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 바이오, 원자력, AI, 방산은 모두 억지력의 일부다. 한국은 미국의 대중 기술 차단 전략에 수동적으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핵심 기술 공급국으로서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는 단순한 동맹 순응이 아니라, 협상력을 키우는 길이다.
법으로 고정되는 세계, 전략으로 응답해야 할 한국
이번 국방수권법은 세계 질서가 더 이상 유연한 합의의 공간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 고정되는 시대로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미중 경쟁은 관리 가능한 갈등이 아니라 구조적 분기다.
한국은 이 변화 앞에서 관망자가 될 수 없다.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되, 그 신뢰 위에서 자체 억지력과 산업 주권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핵을 포함한 억지 전략, 기술·산업 동맹의 재구성, 그리고 역내 협력 질서 구축이 결합된 대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설계다. 그리고 그 설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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