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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생활비 위기가 정치 분노 키운다…美·유럽·캐나다서 “물가 더 악화” 여론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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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생활비 위기가 정치 분노 키운다…美·유럽·캐나다서 “물가 더 악화” 여론 확산

지난 2022년 2월 10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테스코 엑스트라 매장에서 손님이 장바구니를 끌며 장을 보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22년 2월 10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테스코 엑스트라 매장에서 손님이 장바구니를 끌며 장을 보고 있다. 사진=로이터

지난해 세계 정치 지형을 뒤흔든 생활비 위기가 여전히 주요 민주국가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유럽, 캐나다 등 주요 국가에서 유권자 다수가 “생활비 부담이 더 악화됐다”고 인식하면서 집권 세력에 대한 정치적 반발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최근 영국 여론조사기관 퍼블릭 퍼스트와 함께 실시한 국제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5개 주요 경제국에서 생활비 상승에 대한 불만이 정치적 분노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8일(현지시각)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적 포퓰리즘을 내세워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이번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의 65%는 “지난 1년 동안 생활비가 더 나빠졌다”고 답했다. 영국에서는 2024년 총선에서 보수당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77%가 생활비 부담이 악화됐다고 인식했다.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낮은 수준에 머무는 가운데 응답자의 45%가 “프랑스 경제가 비슷한 국가들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고 답했다. 독일에서는 올라프 숄츠 전 독일 총리의 연립정부가 경제 정책을 둘러싼 갈등 끝에 붕괴한 이후에도 응답자의 78%가 생활비 부담이 더 커졌다고 평가했다.

캐나다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이어진 생활비 위기가 정치적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캐나다 성인의 60%는 “현재의 생활비 수준이 기억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악”이라고 답했다. 이같은 여론은 쥐스탱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의 사임으로 이어진 정치적 불안과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조사는 폴리티코와 퍼블릭 퍼스트가 처음으로 공동 진행한 국제 여론조사로 각국 유권자들이 생활비 문제를 개인 차원의 어려움이 아니라 구조적인 경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다수의 응답자는 임금이 낮아서라기보다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지나치게 오른 것이 핵심 문제라고 답했다.

영국에서는 경제가 악화됐다고 느끼는 비율이 개인 재정 상황이 나빠졌다고 답한 비율보다 높게 나타났고 프랑스와 독일, 캐나다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확인됐다. 이는 유권자들이 개인 경험을 넘어 국가 경제 전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권에서는 이같은 경제적 비관론이 기존 정치 질서를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정책센터의 하비에르 카르보넬 정책분석가는 “현재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정당 모두가 집권 세력으로 인식되면서 책임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생활비 문제는 집권 세력이 선거에서 방어하기 가장 어려운 의제”라고 평가했다.

독일에서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경제 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무역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현안에 집중하면서 국내 민생 문제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틈을 타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정부가 생활비 대응 정책 일부를 되돌릴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정치적 반발이 커지고 있고 기존 정치 질서에 비판적인 좌우 성향 정당들이 이를 주요 공격 소재로 삼고 있다. 캐나다에서도 생활비 문제는 향후 선거 국면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생활비 문제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향후 각국 선거에서도 핵심 의제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캐나다 여론조사기관 애버커스 데이터의 데이비드 콜레토 대표는 “생활비 문제는 일시적인 불만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정부의 성과와 리더십을 평가하는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