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트럼프식 ‘연줄 자본주의’ 논란 확산…美 기업들 “시장 왜곡·침묵의 비용 커져”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트럼프식 ‘연줄 자본주의’ 논란 확산…美 기업들 “시장 왜곡·침묵의 비용 커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 2년 차에 접어들며 일부 기업과 투자자를 노골적으로 우대하고 다른 기업에는 압박을 가하는 정책을 이어가면서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이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의 경쟁력과 국제적 위상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연줄 자본주의’ ‘국가 주도 자본주의’ 등으로 불리며 정부와 기업의 경계를 흐리고 있다고 2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 “정부가 특정 기업 편들면 시장 왜곡”


앤 립턴 콜로라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NPR과 한 인터뷰에서 “정부가 특정 기업을 경쟁사보다 우대하면 시장이 왜곡된다”면서 “기업들이 혁신이 아니라 정치적 관계 맺기에 집중하게 되고, 이는 자유시장 원리의 정반대”라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여름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압박했다가 백악관 면담 이후 입장을 바꿨고 미 정부가 인텔 지분 10%를 확보하는 데 합의했다. 또 엔비디아에는 중국에 고급 반도체를 판매하도록 허용하는 대신 매출의 25%를 정부가 가져가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비롯한 주요 기술기업 경영진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프로젝트와 행사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며 관계를 강화해 왔다는 점도 함께 거론됐다.

◇ “아부 경쟁은 혁신을 갉아먹는다”


립턴 교수는 이런 현상을 ‘아부로 굴러가는 자본주의’라고 표현하며 “기업들이 기술과 제품이 아니라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경쟁한다면 결국 소비자와 경제 전체가 손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 국무부 관료를 지냈고 지금은 컨설팅회사 달버그를 창업해 경영하고 있는 다니엘라 발루아레스는 NPR과의 인터뷰에서 “규칙 기반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정부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위험이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초당적 기업인 연합체인 리더십 나우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이 단체와 해리스폴이 지난 10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4%가 “현재의 정치·법적 환경이 자사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 백악관 “과장된 해석…자유시장 지향”


이에 대해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연줄 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과장”이라며 “공화당 행정부에서 통상 볼 수 있는 자유시장 중심 정책”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미 정부가 인텔과 엔비디아를 비롯해 US스틸, 희토류 기업 MP머티리얼스 등 국가안보와 직결된 기업에는 지분 확보나 수익 공유 방식으로 개입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유시장의 성장을 존중하되 국가적 이해가 걸린 분야에는 제한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빅테크는 수혜, 다른 기업들은 불만


NPR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대형 기술기업과 다른 산업 간 온도 차가 뚜렷하다고 전했다. 인공지능(AI) 열풍을 주도하는 이른바 ‘매그니피슨트 세븐’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니얼 킨더먼 델라웨어대 교수는 “거대 기술기업과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상당 부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면서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는 방식이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느끼는 경영자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런 관계가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팀 쿡 애플 CEO는 지난해 여름 트럼프 대통령에게 금으로 장식된 기념패를 전달하며 미국 내 6000억 달러(약 888조6000억 원) 투자 계획을 약속했고, 이후 아이폰은 관세 부담을 상당 부분 피했다.

◇ “침묵이 확산…보복 두려움”


미국상공회의소는 고급 외국 인력 비자인 H-1B 비자 발급 비용을 건당 10만 달러(약 1억4810만 원)로 올리려는 정부 방침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는 CNN과 한 인터뷰에서 백악관 기부 요청에 응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정부와 계약을 많이 맺는 기업으로서 어떤 행동이든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을 매우 신중히 고려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공개 비판을 꺼리는 배경으로 대통령의 공개 공격과 그에 따른 불매 운동, 정치적 압박을 꼽고 있다. 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교수는 “소수의 대형 기술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최고경영자들은 현재 상황에 상당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 “연줄 자본주의, 결국 기업에 독”


NPR은 러시아·헝가리·중국 등 국가 주도 자본주의 사례를 언급하며 정치 권력과 기업 간 과도한 밀착이 결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한 전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발루아레스는 “연줄 자본주의가 기업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 사례는 거의 없다”며 중국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의 사례를 언급했다.

NPR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아직 임기 초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향후 기업과 시장의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