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美 규제 속 16·28나노 '공급망 방어' 자신…중국 고객 글로벌 팹 개방
삼성·SK, 8월부로 '무기한 유예' 박탈…내년부터 '건별 승인' 살얼음판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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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디지타임스는 24일(현지시간) 로저 루오(Roger Luo) TSMC 중국·난징 법인장이 'ICCAD 2025' 컨퍼런스에서 미국의 수출 통제 속에서도 공급망 중단 위험은 없다고 일축했다고 보도했다.
깐깐해진 승인 절차, 생산 차질은 없어
루오 법인장은 이날 언론과 만나 현재 TSMC가 직면한 규제 환경과 난징 팹(공장) 운영 현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현재 규제 준수 프레임워크 아래에서 원자재와 장비 승인을 품목별로 신청하고, 공급업체와 긴밀히 협력해 문제를 풀고 있다"고 밝혔다.
승인 절차가 과거보다 훨씬 엄격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루오 법인장은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며, 난징 팹의 생산과 공급망 운영은 모두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시장 일각에서 제기한 'VEU 규제로 인한 장기 가동 중단'이나 '납품 차질' 우려를 정면으로 반박한 발언이다.
TSMC는 단순히 규제를 기다리는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고객과 한 약속을 지키면서 규제를 준수하는 단계별 해법을 실행하고 있다. 난징 팹은 현재 16나노(nm)와 28나노 공정을 주력으로 가동하며, 중국 내 스마트폰과 사물인터넷(IoT), 차량용 전자장치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중국 고객, 중국 팹에만 갇히지 않는다"
이번 발언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TSMC의 유연한 생산 할당 전략이다. 루오 법인장은 "중국 기업은 TSMC의 중국 내 공장만 이용할 수 있다는 시장의 통념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TSMC가 생산 능력(Capacity)을 나누는 기준은 '고객의 위치'나 '특정 팹'이 아니다. 핵심 기준은 ▲고객의 기술 요구사항 ▲제품 포지셔닝 ▲규제 준수 여부다. 루오 법인장은 "규제 요건만 충족한다면 중국 고객도 TSMC의 글로벌 제조 네트워크를 통해 더 발전된 첨단 공정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이 난징 공장의 16·28나노 공정에만 묶여 있지 않다는 뜻이다. 미국의 수출 통제 기준을 넘지 않는 범위라면, 대만 본토나 다른 지역의 선단 공정을 이용할 길이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TSMC가 지정학적 위험 속에서도 중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고, 유연한 '디커플링(탈동조화)' 대응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숙 공정의 재발견
기술 관점에서 16나노와 28나노 같은 성숙 공정(Legacy Node)은 여전히 중요하다. 루오 법인장은 "중국의 스마트폰, IoT, 자동차 전자 시장은 여전히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분석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이 클라우드를 넘어 온디바이스(기기 탑재)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성숙 공정 수요가 늘고 있다. AI 스마트폰의 이미지 처리, 지능형 사물인터넷(AIoT),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차량용 AI 칩 등은 최첨단 미세 공정보다 전력 소모가 적고 비용 효율이 높은 16·28나노 공정이 경쟁력을 갖는다. 제품 출시 주기(Time to Market)가 빠른 이들 시장에서 성숙 공정은 핵심 인프라 노릇을 한다.
韓 반도체, '무기한 유예' 박탈…내년부터 '건별 승인' 살얼음판
TSMC가 난징 공장의 운영 안정성을 과시하며 자신감을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규제 리스크의 '태풍의 눈'에 들어섰다. 그동안 한국 기업의 중국 공장 가동을 보장해주던 미국의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무기한 유예 조치가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8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에 적용하던 VEU의 포괄적 허가 지위를 전격 철회했다. 이에 따라 120일간의 유예 기간이 끝나는 오는 31일이 지나면,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는 장비 반입 시 미국 정부의 승인을 다시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과거와 같은 '프리패스(무기한 면제)' 혜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현재 미국 정부는 기존의 포괄적 허가 대신 매년 필요한 장비 물량을 사전에 심사받는 '연간 단위 승인(Site-specific license)' 방식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TSMC가 현재 겪고 있는 건별 승인과 유사한 고강도 통제 방식이다. 한국 기업들 역시 TSMC와 동일한 규제망 아래 놓이게 되면서 경영 불확실성은 과거보다 훨씬 커진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중국 내 한국 생산 기지의 첨단화를 원천 봉쇄하려는 미국의 의지로 해석한다. 실제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등 미세 공정 전환을 위한 핵심 장비 반입은 여전히 엄격히 금지돼 있다. 미국 측은 "기존 공장의 현상 유지는 허용하되, 기술 업그레이드나 생산 능력 확장은 불허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한국 기업들의 대중국 전략도 '확장'에서 '생존'으로 급선회했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TSMC가 28나노 등 성숙 공정에서 중국 내 파이를 지키는 실리 전략을 펴는 것처럼, 한국 기업들도 중국 공장을 고도화하기보다는 기존 레거시(구형) 공정의 수율을 극대화해 수익성을 방어하는 것이 지상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내년부터는 장비 도입 시마다 미국의 허가를 구해야 하는 만큼, '살얼음판' 같은 규제 환경 속에서 가동률을 방어하는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