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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유럽이 먼저 맞은 미래, 한국이 곧 마주할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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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유럽이 먼저 맞은 미래, 한국이 곧 마주할 현실

유럽에서 동아시아로의 미국의 이동과 이에 따른 독일의 귀환, 그리고 여기서 한국이 배워야 할 3가지 교훈과 취해야 할 3가지 대응 전략
독일은 역대 최대 규모의 잠수함 중어뢰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은 독일의 212CD급 잠수함 모습이다. 사진=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이미지 확대보기
독일은 역대 최대 규모의 잠수함 중어뢰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은 독일의 212CD급 잠수함 모습이다. 사진=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

트럼프는 유럽의 위기인가, 각성의 촉매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유럽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혼란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다. 그것은 ‘강제된 각성’이다. 최근 미국 언론 매체들이 전하고 있는 카를-테오도어 추 구텐베르크 전 독일 국방장관의 발언은 감정적 평가가 아니라 구조적 진단에 가깝다. 미국이 더 이상 유럽의 안보를 무조건 보장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순간, 유럽은 선택이 아니라 행동을 강요받는 상황에 놓였다.

구텐베르크 전 장관은 지난 12월17일 공개된 팟캐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때문에 유럽은 마침내 오랫동안 투덜대며 안락한 소파에 기대어 있던 엉덩이를 떼고, 한 번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숙제를 하도록 강요 받았다. 우리는 늘 다른 이들에게 의존해왔다. 값싼 석유와 가스는 러시아에서 오고, 안보는 미국이 제공하며, 자동차를 팔 때는 중국에 의존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세상을 뒤집어 놓았고, 우리는 행동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사실 이 것은 유럽에 그렇게 나쁜 소식만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트럼프는 유럽 질서를 파괴한 인물이 아니라, 전후 질서의 허구를 폭로한 인물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앞서의 구텐베르크 전 장관의 언급대로 유럽은 오랫동안 러시아의 에너지, 미국의 안보, 중국의 시장이라는 삼각 구조 위에서 번영을 누려왔다. 이 구조는 지속 가능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패권국 미국의 의지와 역량이 유지되는 동안에만 작동하는 임시적 배열이었다.
트럼프는 그 가정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유럽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공간으로 되돌아갔다.

미중 패권 경쟁이 유럽을 방치하는 이유


미국의 유럽 이탈은 고립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글로벌 및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싸고 중국이라는 체제적 경쟁자가 부상한 이후, 미국은 더 이상 모든 지역을 동일한 비중으로 관리할 수 없게 되었다. 유럽은 전략적 중요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미국이 유럽에서 한 발 물러선 진짜 이유는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다. 미중 경쟁은 단순한 군사 경쟁이 아니라 기술, 산업, 통화, 공급망, 규범을 둘러싼 전면적 질서 경쟁이다. 이 싸움에서 미국은 자원을 분산시킬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은 유럽이 스스로 방위 비용을 부담하고, 미국의 개입 부담을 줄이기를 원한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트럼프의 ‘유럽에 대한 냉대’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산물이다. 미국은 유럽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유럽을 관리 비용이 적은 형태로 재편하려고 하는 것이다.

독일이 다시 중심으로 이동하는 이유

이 같은 공백을 가장 빠르게 인식한 유럽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의 재무장과 전략적 자율성 추구는 트럼프 개인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구조 변화에 대한 본능적 대응이다. 미국이 물러나는 공간은 반드시 누군가가 채운다. 그리고 유럽에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는 독일뿐이다.

독일은 이미 산업, 기술, 재정 측면에서 유럽의 중심국이다. 전후 체제는 독일의 군사적 복귀를 억제했지만, 그 억제 장치는 미국의 안보 우산이라는 외부 조건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 조건이 약화되는 순간, 독일의 전략적 복귀는 시간문제가 된다.

최근 미국의 한 온라인 뉴스 매체가 강조하는 ‘독일 전쟁 기계의 귀환’이라는 표현에는 종교적 해석이 섞여 있지만, 그 핵심 문제의식 자체는 무시할 수 없다. 유럽이 재무장될 경우, 그것은 프랑스가 아니라 독일 중심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유럽은 미국의 하위 파트너가 아니라, 독자적 행위자로 등장할 것이다.

유럽 재무장의 본질은 반미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유럽의 재무장이 곧바로 반미 노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미국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다. 미국은 더 이상 유럽을 ‘보호 대상’으로 유지할 수 없으며, 유럽이 스스로를 지킬 능력을 갖추기를 원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다. 군사적 자율성을 획득한 유럽이 과연 미국의 전략에 계속 부응하는 현재의 위치를 고수할 것이냐는 질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략적 자율성을 획득한 세력은 반드시 독자 노선을 모색해 왔다고 볼 때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이 미국과 완전히 동일한 전략을 유지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중 패권 경쟁은 삼각 구도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축 사이에 유럽이라는 또 하나의 전략적인 축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것이다.

동아시아에 투영되는 유럽의 미래


유럽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변화는 동아시아에 대한 예고편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미 동아시아에서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동일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누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가, 누가 기여할 수 있는가,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일본은 재무장을 통해 응답하고 있고, 대만은 전략적 요충지라는 지위로 응답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일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미국이 지켜줄 것’이라는 전후적 사고에 깊이 묶여 있다. 그러나 유럽의 사례는 미국의 보호는 영구적인 권리가 아니라, 조건부 계약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우선순위는 분명하다. 대중국 억제 체제에 직접 기여하는가 여부다.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동맹은 자동적으로 주변화(marginalization)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이 유럽에서 배워야 할 교훈들


한국은 현재의 유럽 상황에서 세 가지 교훈을 배워야 한다. 첫 번째 교훈은, 안보는 위임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유럽은 수십 년간 안보를 미국에 위임했고, 그 결과 스스로 전략을 설계할 능력을 상실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유럽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 역시 비슷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한미동맹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한국 안보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동맹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은 한국의 생존과 번영이다.

두 번째 교훈은 자율성 없는 번영의 허상이다. 유럽은 경제적으로 번영했지만, 전략적 자율성은 희박했다. 그 결과 번영을 지켜낼 힘이 없었다. 한국 역시 경제 규모와 기술력에 비해 전략적 자율성이 제한된 상태다. 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산에서 한국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그 힘을 전략으로 전환하는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경제력은 전략으로 조직되지 않으면 보호되지 않는다.

세 번째 교훈은 핵심 억제력의 문제다. 유럽이 가장 취약한 지점은 핵 억제력이다. 프랑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핵 억제력을 미국에 의존해 왔다. 미국의 의지가 흔들리는 순간, 그 공백은 치명적이다. 한국 역시 동일한 구조에 놓여 있다. 북핵 위협은 실존적이며, 중국과 러시아의 핵 전력은 이미 지역 질서를 압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확장억제라는 추상적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이 재무장 논의와 함께 독자적 핵무장 의제를 추진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 논리다.

한국의 대응 전략은 선택지가 아니라 필수 조건이다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명확하다. 모두 세 가지다. 첫째, 한미동맹을 유지하되, 그 안에서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이는 군사적 기여, 방산 협력, 기술 동맹을 통해 가능하다.

둘째,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와 함께 그 신뢰에 기반한 독자 핵무장 전략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이는 당장의 핵무장을 의미하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자체 핵무장을 통해 미국의 역내 질서를 뒷받침해나가겠다는 정치적·전략적 신호다. 유럽의 실패는 선택지를 스스로 봉쇄한 데서 시작되었다.

셋째, 한국은 일본, 호주, 일부 유럽 국가와의 전략적 연대를 통해 다층적 억제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단일 동맹에 모든 생존을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결론은 트럼프가 경고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유럽을 배신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유럽이 직면하고 있던 현실을 강제로 드러낸 인물이다. 더트럼펫 등 미 언론 매체들의 표현처럼, 그는 유럽을 소파에서 끌어내렸다. 이 장면은 한국에게 낯설지 않다. 한국 역시 안락한 구조 속에서 불편한 질문을 미뤄온 국가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국제질서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국가는 움직임의 대상이 된다.

유럽의 재무장은 과거의 귀환이 아니라, 미래의 경고다. 그리고 그 경고는 이미 동아시아를 향하고 있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