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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중국산 배터리의 역습”... 10년 의존이 불러온 ‘에너지 종속’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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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중국산 배터리의 역습”... 10년 의존이 불러온 ‘에너지 종속’의 실체

리튬 가격 저점 대비 70% 반등… 중국 제조사들 ‘저가 경쟁’ 끝내고 일제히 가격 인상
전 세계 LFP 셀 99%, 양극재 90% 장악… AI 데이터 센터 확대로 ‘중국 의존’ 심화
중국 저장성 후저우의 한 공장에서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EV) 생산 라인에서 작업자들이 목격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저장성 후저우의 한 공장에서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EV) 생산 라인에서 작업자들이 목격되고 있다. 사진=로이터
지난 10년간 전 세계가 향유해온 ‘저렴한 배터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중국이 압도적인 물량과 저가 공세로 시장을 장악하는 동안 서구권이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결과, 이제는 중국의 정책 결정 하나에 전 세계 에너지 전환과 AI 산업이 흔들리는 ‘에너지 종속’ 상태에 빠졌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5일(현지시각) 에너지 전문 매체 사타카와 분석가들에 따르면, 중국 배터리 업계는 3년간의 치열한 치킨게임을 끝내고 본격적인 가격 인상 궤도에 진입했다.

◇ ‘인볼루션’의 종료… 리튬 반등과 함께 시작된 가격 인상


최근 중국 리튬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잇따라 가격 인상을 발표하고 있다. 배터리 기업 ‘디가레스’가 가격을 15% 인상한 것이 신호탄이 되었다.

이는 더 많이 생산하고 더 싸게 팔아 수익을 깎아먹던 ‘인볼루션(내권, 과도한 내부 경쟁)’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연평균 최저점 대비 약 70% 반등한 리튬 가격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

소도시급 전력을 소비하는 AI 데이터 센터의 폭발적 확장으로 대규모 저장 장치(ESS) 수요가 급증하며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수억 개의 리튬이온 셀을 도입하며 중국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산업부는 '비합리적 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과잉 생산을 통제하고 가격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올리는 산업 재편에 나섰다.

◇ “대안은 없었다”... 러시아 가스보다 위험한 단일국 의존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흐 비롤 사무총장은 현재 상황을 "러시아 가스에 의존했던 유럽의 위험과 견줄 만하다"고 경고했다.

2024년 기준 중국은 전 세계 LFP(리튬인산철) 셀의 99%를 제조했으며, 배터리 양극재와 전해질의 90%, 전 세계 리튬 처리의 80%를 독점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이 관세를 부과하며 대응하고 있지만, 중국은 핵심 광물 수출 제한이라는 강력한 지렛대로 맞서고 있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단순히 배터리를 만드는 공장 역할을 넘어, 원자재부터 조립까지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된 가치사슬 전체’를 중국이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 서구권의 뒤늦은 반격... “격차 해소에 수년 소요”


미국과 유럽은 리튬과 배터리를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고 광산 프로젝트 직접 투자, 기가팩토리 건설 확대, 중국산 구매 제한 등 대응책을 쏟아내고 있다. 엑손과 셰브론 같은 석유 대기업들도 리튬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진단은 냉혹하다. 환경 규제, 높은 인건비, 중앙집중식 산업 계획의 부재로 인해 중국 모델을 복제하는 데는 최소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스프로트(Sprott) 보고서는 "분리가 이루어진다 해도 그 과정은 매우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들며 정치적으로 불편할 것"이라고 짚었다.

결국 수년간의 낮은 가격은 ‘중국에 대한 심각한 의존’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가리고 있었다.

중국이 세계 최초의 ‘전기 국가’로서 에너지 패권을 장악해가는 상황에서, 세계는 에너지 시스템의 핵심을 외부로 위임한 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제 배터리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21세기 권력의 핵심 도구가 되었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