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략적 포섭’과 미국의 ‘이탈 감시’ 사이에서 성과 대신 ‘유예’를 택한 한중 정상회담…관리의 공간이 닫히기 전 ‘준비된 자강’ 설계하라
이미지 확대보기표면적으로 회담은 우호적이었다. 양국 정상은 협력과 교류, 상호 존중을 강조했고 경제 협력과 소통 확대가 부각됐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구조적 현실이 분명히 자리 잡고 있었다. 중국은 한국의 행동 반경을 관리하려 했고, 한국은 그 압박을 수용하지 않으면서도 정면 충돌을 피하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이 장면을 가장 냉정하게 관찰한 쪽은 워싱턴이었다.
이번 회담의 본질은 한중 관계 그 자체보다, 이 관계가 미중 경쟁이라는 더 큰 틀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있다. 한중 정상회담은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동아시아 질서와 글로벌 패권 경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 하나의 신호였다.
선택을 요구한 중국과 관리를 택한 한국
중국이 이번 회담에서 던진 핵심 메시지는 단순했다.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하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이 메시지는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전략적 요구에 가까웠다. 그 요구의 핵심은 한국이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행동할 것인가를 정하라는 것이었다. 중국은 한국에게 동맹을 끊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동맹의 행동 반경을 제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대만 문제, 남중국해, 서해와 동중국해에서의 중국 행동에 대해 한국이 어느 수준까지 동참하거나 거리를 둘 것인지가 중국의 관심사였다. 이번 회담에서 중국은 이 사안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바로 그 침묵이 압박의 언어였다. 말하지 않은 요구가 오히려 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순간이었다.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명확했다. 요구를 수용하지도, 정면으로 거부하지도 않았다. 한국은 핵심 안보 쟁점을 회담의 전면에 올리지 않음으로써, 선택의 문제를 관리의 문제로 전환했다. 이는 전략적 회피라기보다 현실적 계산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어느 한쪽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은 한국의 선택지를 지나치게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합의의 회담이 아니라 유예의 회담이었다. 갈등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미뤄둔 것이고, 입장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선을 확인한 자리였다. 이 점에서 이번 회담은 성공도 실패도 아닌 관리였다.
안보를 비켜가고 경제를 전면에 세운 이유
이번 회담에서 실질적으로 움직인 영역은 안보가 아니라 경제였다. 대기업 총수 동행, 반도체와 인공지능, 환경과 무역 협력 논의는 관계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완충 장치였다. 중국은 경제 협력을 유인으로 제시했고, 한국은 이를 안보 문제와 분리해 관리하려 했다.
이번 회담은 이 이중 구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동시에 그 한계도 분명히 드러났다. 경제 협력은 확대됐지만 신뢰는 회복되지 않았고, 안보 문제는 관리됐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이는 양국 관계의 현실적 상한선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워싱턴이 본 것은 무엇이었는가
이번 회담을 바라보는 워싱턴의 시각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미국은 회담의 수사보다 결과를 봤고, 결과보다 빠진 요소를 먼저 점검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 변화가 있었는지,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에 균열이 생겼는지, 미군 운용과 확장억지 구조에 변화의 조짐이 있었는지가 워싱턴의 핵심 관심사였다.
이 기준에서 보면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워싱턴에 경보를 울릴 사건은 아니었다. 중국의 요구는 분명했지만, 한국의 행동 변화는 관찰되지 않았다. 외교적 언사는 있었지만 안보 구조는 건드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워싱턴은 이를 위험한 이탈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조정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이미 한국이 중국과 일정 수준의 관계 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현실을 알고 있다.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며, 북한 문제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변수다. 따라서 정상회담 자체는 미국에게 놀라운 사건이 아니었다. 미국이 문제 삼는 것은 회담의 존재가 아니라 그 이후의 행동이다.
레드라인은 외교가 아니라 안보 구조
워싱턴의 시각에서 볼 때 레드 라인(red line, 금지선)은 명확했다. 한국이 이번 중국과 정상회담 결과 대만 유사 시 미국과의 군사 협력에서 이탈하는지 여부, 한미일 협력이 형해화되는지 여부, 확장억지와 정보 공유 구조에 실질적 변화가 생기는지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이 어느 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이 점에서 워싱턴은 이번 회담을 경계하면서도 수용했다. 불편했을 수는 있지만 통제 불가능한 변수로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워싱턴이 더 주의 깊게 분석했을 대상은 중국의 메시지였다고 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하라는 시진핑 주석의 노골적인 압박, 대만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 행동 반경을 제한하려는 방식은 중국이 한국을 중립화하려는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체제에서의 계산
현재 워싱턴의 관점은 더욱 거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맹은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기여와 행동의 문제로 평가된다. 외교적 언사보다 군사적 협력, 산업적 기여, 전략적 정렬이 중요하다. 이 기준에서 보면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기대치를 충족하고 있다. 미군 주둔은 유지되고 있고, 방산과 조선, 산업 협력은 확대되고 있으며, 중국 견제 구도에서 구조적 이탈은 관찰되지 않는다.
따라서 워싱턴의 내부 평가에서 볼 때 한국은 아마도 '주의 관찰 대상'이라는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경고도, 신뢰 상실도 아닌 상태다. 워싱턴은 다만 중국의 다음 요구와 한국의 다음 선택을 면밀히 지켜보는 단계에 들어갔을 가능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중 회담과 워싱턴 시각을 관통하는 핵심
이번 한중 정상회담과 이를 바라보는 워싱턴의 관점을 종합하면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한국은 지금 선택을 강요받는 위치에 있지만, 아직 선택을 확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선택의 비용을 관리하는 전략을 택했다.
중국은 한국의 행동 반경을 줄이려 하고, 미국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과 관련한 한국의 구조적 정렬이 유지되는지를 점검한다. 한국은 이 두 압력 사이에서 가능한 한 많은 선택지를 보존하려 한다. 이번 회담은 그 균형 행위의 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 균형은 시간이 갈수록 유지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미중 경쟁이 격화될수록 관리의 공간은 줄어들고, 선택의 압박은 커진다. 이번 회담은 그 압박이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한국의 전략적 과제
이번 회담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함의는 분명하다. 동맹을 유지하되 자동화해서는 안 된다. 동맹은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며, 실제 작동 메커니즘이 없는 동맹은 위기에서 취약해진다.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되, 경제 협력이 안보 선택지를 잠식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명확한 선택 선언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의 축적이다. 외교와 안보, 경제를 분리해 사고하는 관성에서 벗어나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국가 전략이 요구된다. 그래야만 한국은 압박의 대상이 아니라 계산의 주체로 남을 수 있다.
회담 총평과 워싱턴의 시각 함께 읽어야 얻는 결론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협력의 회담이 아니라 갈등을 미뤄둔 회담이었다. 워싱턴은 이를 이탈의 신호가 아니라 관리 외교의 한 장면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관리의 공간은 영원하지 않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될수록 한국의 선택지는 줄어들 것이고, 관리의 비용은 커질 것이다.
이번 회담의 진짜 의미는 성과표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한국이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앞으로 어떤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고편에 있다. 한국의 전략은 이제 관리의 단계에서 준비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것이 이번 회담과 워싱턴의 시각을 함께 읽을 때 도달하는 가장 냉정한 결론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