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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크를 들여온 펜타곤, 윤리를 버린 전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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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크를 들여온 펜타곤, 윤리를 버린 전쟁의 시작

일론 머스크의 AI가 미국의 군사 네트워크에 들어온 순간 바뀌어 버린 신냉전의 규칙
미국 워싱턴 D.C 항공에서 바라본 펜타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워싱턴 D.C 항공에서 바라본 펜타곤. 사진=로이터


일론 머스크의 AI 챗봇 그로크가 미국 국방부의 비밀·비분류 군사 네트워크 전반에 접근하게 된다고 최근 미 국방 부문 매체들이 보도했다. 펜타곤이 그로크의 도입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한 문장은 기술 뉴스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전쟁에서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는지를 바꿨다는 선언이며, 윤리와 책임보다 속도와 효율을 택한 패권국의 노선 전환을 상징하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새로운 AI 가속 전략은 지난 4년간 세 번째다. 그러나 이번 전략은 반복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다. ‘책임 있는 AI’라는 언어는 문서에서 사라졌고, 대신 데이터의 중앙화, 알고리즘의 즉각적 적용, 그리고 상용 대형 언어 모델의 군사 통합이 전면에 등장했다. 그로크의 도입은 이 전략의 부수적 선택이 아니라, 전환의 상징이 된 것이다.

세 번째 전략이 의미하는 것은 ‘더 빠르게 쓰겠다’가 아니다


이번 AI 가속 전략의 핵심은 AI를 더 많이 도입하겠다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전쟁의 두뇌를 어디에 둘 것인가다. 전략은 향후 4년간 국방부 전 구성 요소의 데이터를 중앙화해 AI 학습과 분석에 활용하도록 지시한다. 이는 행정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중심을 인간 조직에서 알고리즘으로 이동시키는 선택이다.

문서가 제시한 일곱 개의 선도 프로젝트는 이 변화를 구체화한다. 전투 환경에서 AI를 반복적으로 발견·시험·확장하는 체계, 에이전트형 AI가 캠페인 계획부터 킬 체인 실행까지 수행하는 구조, 수년이 걸리던 정보 분석을 수 시간 내로 압축하는 정보 무기화 프로젝트는 모두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전장을 지배한다는 사고를 전제로 한다.

이 전략에서 AI는 보조 수단이 아니다. AI는 계획자이자 분석가이며, 점차 실행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이 순간 전쟁은 더 빨라지지만, 동시에 더 불투명해진다.

윤리가 빠진 자리에 남은 것은 ‘합법적 최소 기준’이다


이번 전략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윤리의 실종이다. ‘책임 있는 AI’에 대한 명시적 언급은 사라졌고, 전투에서의 의미 있는 인간 통제에 대한 구체적 기준도 흐릿해졌다. 대신 전략은 AI의 사용 조건을 법적으로 허용되는 최소 기준으로 설정한다.

이는 중대한 전환이다. 합법성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문서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이념적 조정이 객관적 사실 기반 판단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와 함께, DEI 요소가 포함된 모델의 사용을 금지하는 조항은 규범보다 속도와 실용을 우선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윤리는 경쟁 우위의 자산에서, 경쟁을 늦추는 제약으로 재분류됐다. 이는 미국이 그동안 강조해 온 규범 기반 질서의 언어를 스스로 내려놓았다는 의미다.

왜 하필 그로크인가


그로크의 도입은 기술적 선택을 넘어선다. 그로크는 정치적 편향성, 노골적 이미지 생성, 아동 이미지 문제 등으로 국제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모델이다. 일부 국가는 이를 차단했고, 규제 기관은 조사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 모델이 군사 네트워크에 통합된다는 사실은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안정성과 도덕성보다 실험 속도와 확장성이 우선이라는 판단이다. 이는 상용 대형 언어 모델을 군사 영역에 본격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선언이며, 군사와 민간의 경계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로크는 도구이자 상징이다. 미 펜타곤은 더 이상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AI’가 등장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먼저 쓰고, 문제는 나중에 관리하겠다는 방식인 것이다.

속도가 인간의 숙고를 압도할 때 발생하는 위험


이 전략의 가장 큰 위험은 AI의 오작동 그 자체가 아니다. 진짜 위험은 속도가 인간의 숙고를 구조적으로 밀어내는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다. 정보가 수 시간 내에 무기화되고, 시나리오가 알고리즘에 의해 빠르게 제시될수록, 정치적·군사적 결정은 검토가 아니라 반응의 영역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AI는 계산을 빠르게 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인간 통제가 형식화될수록 전쟁의 문턱은 낮아진다. 오판은 더 빠르게 확산되고, 수정할 시간은 줄어든다. 이는 억지를 강화하기보다 충돌 가능성을 상시화하는 구조다.

특히 신냉전 환경에서는 이러한 속도 경쟁이 상대방의 위기 인식을 자극한다. 한쪽의 ‘합리적 자동화’는 다른 쪽의 ‘선제적 대응’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미중 경쟁에서 윤리는 더 이상 공통 언어가 아니다


이번 전략은 미중 경쟁의 성격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더 이상 윤리를 통해 중국과 자신을 구분하려 하지 않기 시작했다. 대신 누가 더 빨리, 더 깊게 AI를 전쟁에 통합하느냐의 경쟁으로 전장을 재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AI 군사화 속도에 대한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이 스스로 구축해 온 규범적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선택이기도 하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준을 낮추는 순간, 그 기준을 다시 높이기는 어렵다.

한국에 주는 구조적 메시지


이 같은 변화는 한국에도 직접적인 함의를 갖는다. 한미동맹의 군사 환경은 더 빠르고, 더 자동화되며, 더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크다. AI 기반 의사결정 체계에 대한 접근과 이해 없이는, 한국은 동맹의 전략 판단 과정에서 점점 주변화될 우려가 크다.

방산과 AI 산업 역시 동일한 압력을 받는다고 봐야 한다. 윤리와 규범 중심의 기술 담론은 경쟁력이 되기 어렵다. 실전 적용 속도와 통합 능력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기술 주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은 단순한 하청 생태계로 고착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속도가 전쟁의 규칙이 된 순간


펜타곤의 AI 가속 전략은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미국은 윤리를 관리하는 패권국에서, 속도를 지휘하는 패권국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로크의 도입은 이 전환의 가장 선명한 장면이다. 단기적으로 이 선택은 경쟁 우위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전쟁의 문턱을 낮추고, 오판의 비용을 증폭시키며, 질서의 언어를 빈약하게 만든다.

AI는 전쟁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더 안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지금 미국이 택한 길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 길의 끝에서 누가, 무엇으로 책임을 질 것이냐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