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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그린란드 관세 폭탄’에 흔들린 EU 유화 전략…폰데어라이엔 리더십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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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그린란드 관세 폭탄’에 흔들린 EU 유화 전략…폰데어라이엔 리더십 시험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둘러싼 압박 수단으로 유럽연합(EU)에 추가 관세를 예고하면서 그동안 EU가 유지해 온 유화 중심의 대미 통상 전략이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내부 비판도 확산되고 있다.

19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지난 주말 남미 최대 경제권과의 무역 협정 체결을 앞두고 이를 자신의 성과로 부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행사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문제를 이유로 유럽에 대한 관세 인상 방침을 전격 발표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덴마크의 그린란드 지원을 문제 삼아 EU를 압박하는 성격이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미·유럽 동맹 관계를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공개 석상에서 즉각적인 정면 반박에 나서지 않았다. 이후 나온 공식 입장에 대해서도 EU 내부의 다수 고위 당국자와 외교관들은 “약하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파울라 핀유 EU 집행위 수석 대변인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언제나 EU와 시민의 최선의 이익을 기준으로 결정을 내린다”고 해명했지만 내부 불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EU 안팎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충돌을 피하려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통상 접근법이 오히려 워싱턴의 압박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란차 곤살레스 라야 스페인 전 외교부 장관은 “유럽의 유화 전략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고위 당국자들이 사석에서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EU의 경제적 취약성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약속했던 경제 회복 전략이 지연되면서 유럽은 미국의 압박에 더 취약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린란드를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최후통첩은 미·EU 관계를 통상 갈등 격화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문제는 EU의 존립과도 연결돼 있다는 지적이다. EU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보호하고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에 적응할 수 있을지가 이번 국면에서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이다. 곤살레스 라야 전 장관은 “유럽에는 포식자에 대응할 수 있는 지능적인 억지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재선 공약과 현실의 괴리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지난 2024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경제 경쟁력과 안보 강화를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그는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작성한 행동 계획을 바탕으로 20조 유로(약 3경4220조 원)가 넘는 단일시장 규모와 4억5000만 명의 인구를 지렛대로 삼아 EU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당수 과제는 이행되지 않은 상태라는 지적이다.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고 러시아는 EU의 동쪽 국경을 위협하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역내 경제 개혁보다는 국제 무대에서의 외교 행보에 더 무게를 둬 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핀유 대변인은 “사실과 다르다”며 집행위가 포용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남미 국가들과의 무역 협정과 인도와의 막바지 통상 협상을 성과로 제시했다.

실제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첫 임기 동안 백신 공동 구매와 공동 부채 발행, 러시아 제재 공조, 중국산 전기차 관세 부과 등 굵직한 결정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도 받는다. 남미 메르코수르 국가들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 역시 25년간의 협상 끝에 성사된 EU 사상 최대 규모의 협정이다.

◇ 트럼프 복귀 이후 달라진 환경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이후 환경이 급변했다는 점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취임 직후 미국과의 통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합의를 시도했다. 지난해 7월 그는 스코틀랜드 턴베리의 트럼프 대통령 골프 리조트를 찾아 EU 수출품에 대한 15% 관세를 수용하는 대신, 미국산 산업재와 일부 농산물에 대한 EU 관세를 철폐하는 데 합의했다.

당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불확실한 시대에 확실성을 제공하는 합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세 정책에서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이어왔고 미국은 금속 관세를 확대하고 EU 기술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이번 주말 관세 위협으로 이 합의는 사실상 존폐의 기로에 섰다. 유럽의회 지도부는 최종 승인 보류를 시사했고 EU 내부에서는 “왜 이런 합의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CB는 최근 EU 내부 단일시장의 규제가 오히려 미국보다 더 높은 무역 장벽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상품에는 67%, 서비스에는 95% 관세에 해당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EU가 외부 압박 이전에 내부 개혁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고위 EU 외교관은 “언젠가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당장의 비용이 이익을 넘어선다고 판단해야 할 순간이 올 수 있다”며 “그린란드가 그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