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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9550억달러 경기회복기금, 경제 체질 개선엔 제자리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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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9550억달러 경기회복기금, 경제 체질 개선엔 제자리걸음

벨기에 브뤼셀의 EU 집행위원회 본부.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벨기에 브뤼셀의 EU 집행위원회 본부. 사진=로이터

유럽연합(EU)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사상 최대 규모로 조성한 9550억 달러(약 1394조 원) 규모의 경기회복기금이 유럽 경제의 구조적 전환을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농업과 디지털, 탈탄소 분야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됐지만 인력 부족과 복잡한 행정 절차, 기금 종료 이후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스페인 남부 올리브 농장과 포도밭에서는 토양 상태를 분석하는 센서와 드론이 가동되고 있다. 이 장비들은 EU가 조성한 ‘넥스트 제너레이션 EU’ 기금으로 마련됐다. 수집된 데이터는 인공지능(AI) 모델에 입력돼 수확량과 품질 개선에 활용된다. 농업의 디지털화와 탈탄소 전환이라는 이 기금의 목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한계도 분명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농업 프로젝트를 조정하는 후안 프란시스코 델가도는 “이 기금은 대규모로 AI를 운영할 수 있는 데이터 인프라와 공통 거버넌스를 남겼다”면서도 “정작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수익 모델은 남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금이 종료된 뒤 데이터 플랫폼 고도화와 인력 채용을 위한 재원 마련이 최대 과제라고 밝혔다.

EU는 2020년 팬데믹으로 국내총생산(GDP)이 급감하자 공동 차입을 통해 사상 최대 규모의 회복기금을 출범시켰다. 단기적인 경기 부양과 함께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투자를 통해 장기 성장 기반을 다지겠다는 구상이었다. 지난 2021년부터 보조금과 대출 형태로 7000억 유로(약 1211조 원) 이상이 배정됐지만 일부 회원국이 대출을 포기하면서 실제 가용 규모는 5770억 유로(약 998조 원)로 줄었다.

기금 집행은 예상보다 더뎠다. 로이터가 EU 자료를 토대로 집계한 결과 배정된 자금 가운데 1820억 유로(약 315조 원)는 아직 집행되지 않았다. EU 집행위원회는 이 기금이 단기와 장기 목표 모두에서 성과를 냈다는 입장이지만 로이터가 인터뷰한 관료와 기업 관계자들은 성과가 국가와 분야별로 크게 엇갈린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 기금이 팬데믹 충격을 완화하는 데는 분명한 역할을 했고 공동 차입이라는 오랜 금기를 깨 유럽 정책 수단을 확장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만 노동시장 개혁과 재생에너지 인허가 간소화, 사이버 보안 강화 등과 연계된 구조 개혁이 실제 생산성과 성장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경제적 압박 가능성과 미국과의 통상 갈등 등 대외 환경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EU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회성 재정 투입을 넘어 제도 개혁과 민간 투자 유도까지 연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로이터는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