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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AI 전력난에 ‘냉전 유산’ 깨운다…30년 잠든 핵시설 전격 재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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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AI 전력난에 ‘냉전 유산’ 깨운다…30년 잠든 핵시설 전격 재가동

워싱턴주 핸퍼드 'FMEF' 부활
미 에너지부-제너럴 매터 임대계약 체결
1만7650㎡ 규모 처리 시설
차세대 핵연료 연구 거점
구글·MS 등 빅테크발 전력 수요 폭증
'무중단 기저부하' 원자력 가치 재조명
미국은 전력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년 동안 가동을 중단했던 냉전 시대 핵시설을 전격 재가동한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은 전력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년 동안 가동을 중단했던 냉전 시대 핵시설을 전격 재가동한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에 따른 전력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년 동안 가동을 중단했던 냉전 시대 핵시설을 전격 재가동한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 인터레스팅 엔지니어링(Interesting Engineering)이 지난 6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DOE)는 워싱턴주 핸퍼드(Hanford) 부지의 '연료 및 재료 검사 시설(FMEF)'을 재활용하기 위해 민간 핵연료 기업 '제너럴 매터(General Matter)'와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축구장 2.5개 크기에 달하는 1만7650㎡ 규모의 이 시설은 1984년 완공됐으나 1993년 이후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왔다. 이번 결정은 AI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수적인 24시간 무중단 기저부하 전력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30년 방치된 시설의 부활…첨단 핵연료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이번 계약으로 제너럴 매터는 핸퍼드 시설을 차세대 원자로에 필요한 첨단 핵연료 주기 기술 및 재료 개발의 핵심 거점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시설은 본래 핵연료 검사를 목적으로 설계됐으나, 냉전 종식과 정책 변화로 실제 가동에 들어가지 못한 채 연방 정부의 관리 대상이자 부채로 남아 있었다.

팀 월시(Tim Walsh) 에너지부 환경관리국(EM) 차관보는 지난 6일(현지시각) 발표에서 "FMEF 시설을 미국의 에너지 패권을 강화하고 혁신을 주도할 자산으로 전환하겠다"라며 "방치된 시설을 국민을 위해 다시 일하게 만드는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제너럴 매터는 앞으로 시설의 기술 상태를 평가하고 현대화에 필요한 설비 보강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개별 시설을 살리는 것을 넘어 미국의 핵연료 자립도를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제너럴 매터는 지난달 7일 켄터키주 퍼듀카(Paducah) 부지에서도 차세대 원자로용 특수 연료(HALEU) 생산을 가속하기 위해 9억 달러(약 1조3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따낸 바 있다.

워싱턴주와 켄터키주를 잇는 이른바 '핵연료 밸류체인'을 구축해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적인 핵연료 공급망을 완성하겠다는 구상이다.

AI 시대 전력 해법은 원자력…빅테크와 손잡는 미국 에너지 업계


미국 정부가 이처럼 노후 핵시설 재가동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인공지능(AI)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자리 잡고 있다.

올해 미국 내 전력 소비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구글(Google)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깨끗하고 안정적인 전력원을 확보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실제 미국 원자력 업계에서는 기존 시설을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가파르게 전개되고 있다.

구글(Google)은 넥스트에라 에너지(NextEra Energy)와 협력해 아이오와주 듀안 아놀드 에너지 센터의 재가동을 추진 중이다. 구글은 25년 장기 전력 구매 계약(PPA)을 통해 해당 시설에서 생산되는 600메가와트(MW) 규모의 전력을 전량 확보하기로 했다.

이 시설은 지난 2020년 가동이 중단됐으나, 최근 빅테크발 전력 수요 급증과 맞물려 이르면 2029년 초 상업 운전 재개를 목표로 설비 점검에 착수한 상태다.

홀텍 인터내셔널(Holtec International)은 미시간주 팰리세이즈 원자력 발전소 부활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홀텍 측은 800MW급 기존 원자로를 이달 말까지 전력망에 다시 연결하기 위해 막바지 점검 작업을 진행 중이며, 이는 미국 역사상 폐쇄된 대형 원자로가 다시 가동되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아울러 홀텍은 동일 부지에 300MW급 소형모듈원자로(SMR) 2기를 추가로 건설해 2030년대 초까지 총 1.6기가와트(GW)급 청정에너지 단지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콘스텔레이션 에너지(Constellation Energy)와 손잡고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 재가동을 지원하고 있다. 20년간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독점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를 통해 AI 데이터센터 전용 전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콘스텔레이션 에너지는 약 16억 달러(약 2조3000억 원)를 투입해 설비를 보강하고 있으며, 2027년 내에 약 835MW 규모의 전력 공급을 재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경제 가치와 안보 자산의 조화…에너지 주권 확보 가속


업계에서는 이번 핸퍼드 시설 재가동이 중앙 워싱턴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방 정부 처지에서는 유지비만 들어가던 시설을 임대 수익을 창출하는 상업 자산으로 바꾼 셈이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핵연료를 단순 에너지원을 넘어 국가 안보의 핵심 우선순위로 다루겠다는 미국의 전략 판단이 이번 임대 계약에 녹아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30년 넘게 멈춰있던 시설인 만큼 안전 확보와 기술 보강에 들어가는 비용, 지역 주민의 수용성 등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요소로 꼽힌다. 에너지부와 제너럴 매터는 시설의 물리 건전성을 검증하기 위한 현장 특성 평가와 기술 평가를 최우선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이번 사례는 전 세계적인 탄소 중립 흐름과 AI 산업의 폭발적 전력 수요가 맞물리며 원자력이 다시 경제 성장 핵심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과거 냉전의 상징이었던 핵시설을 미래 산업인 AI의 전력 공급 기지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성공할지 세계 에너지 시장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