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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의 역설… 재생 에너지 메가프로젝트, 설 자리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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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의 역설… 재생 에너지 메가프로젝트, 설 자리가 사라진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 ‘INNA’ 수소 프로젝트, 천문학계 반대에 결국 폐기
빛 공해·생태계 파괴 논란에 ‘NIMBY’ 확산… “적절한 입지 선정과 사회적 타협이 관건”
사진=구글 제미나이를 통한 이미지 생성이미지 확대보기
사진=구글 제미나이를 통한 이미지 생성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탈탄소화의 핵심인 재생 에너지 사업이 역설적으로 환경 보전과 지역사회 권리라는 벽에 부딪히며 위기를 맞고 있다.

대규모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가 생태계를 교란하고 인류의 소중한 자산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이제는 ‘어디에 짓느냐’가 기술적 완성도보다 더 중요한 문제로 부상했다.

9일(현지시각) 에너지 전문 매체 오일 프라이스에 따르면, 최근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추진되던 대규모 수소 및 녹색 암모니아 생산 프로젝트인 ‘INNA(Integrated Energy Infrastructure)’가 공식 취소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건조하고 하늘이 맑기로 유명한 아타카마의 ‘어두운 밤하늘’을 지키려는 천문학자들의 1년에 걸친 캠페인이 거둔 승리다.

◇ "별을 볼 권리 vs 청정 에너지"… 아타카마의 충돌


아타카마 사막은 세계 최고의 천문 관측지로, 유럽 남방 천문대(ESO)의 파라날 관측소 등 인류의 우주 탐사를 위한 핵심 망원경들이 밀집해 있다.

하지만 계획된 INNA 부지는 파라날 관측소에서 불과 5km 거리에 위치해 있었으며, 약 3,000헥타르(7,500에이커)에 달하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될 예정이었다.

ESO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가 강행될 경우 밤하늘의 빛 공해가 최소 35% 증가하고 대기 난기류가 발생해 망원경의 관측 선명도가 치명적으로 저하될 것으로 분석되었다.

빗 공해는 단순히 별을 가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박쥐, 철새, 곤충 등 야행성 동물의 이동 패턴을 방해하고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며, 인간의 건강 주기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 선진국 넘어 개발도상국까지… 전 세계로 번지는 ‘그린 에너지 반대’

이번 사례는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가 직면한 ‘토지 부족’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동안 선진국 농촌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이어져 온 대규모 녹색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저항은 이제 개발도상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해외 자본의 대규모 개발을 묵인하던 국가들도 이제는 환경적·보건적 외부 효과를 견디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탈탄소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광활한 토지가 필요하지만, 농업 용지 보호와 생태 보존 구역 확대 등으로 인해 적합한 부지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 "나가라는 게 아니라, 여기서 하지 말라는 것"… 타협의 지혜 필요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기후 목표와 환경 보호 사이의 ‘현명한 타협’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이번 INNA 프로젝트 반대를 주도한 노벨상 수상자 라인하르트 겐첼(Reinhard Genzel)은 “우리가 ‘나가라’고 한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하지 말아달라’고 한 것”이라며, 부지를 50km만 이동했어도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향후 재생 에너지 사업의 성패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변화에 달려 있다.

우선, 천문대나 핵심 생태계 구역을 피한 정교한 부지를 선정하고 태양광 패널 아래에서 농사를 짓는 ‘영농형 태양광’처럼 토지 이용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칠레의 천문학자들은 천문 관측 부지를 영구적으로 보호할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재생 에너지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길 것인지에 대한 ‘가치 선택’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인류는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밤하늘의 별과 대지의 생태계를 동시에 지켜낼 수 있는 지혜로운 조율을 요구받고 있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