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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자본은 웃고 노동은 제자리…美 경제 ‘부의 축’, 자본으로 급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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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자본은 웃고 노동은 제자리…美 경제 ‘부의 축’, 자본으로 급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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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달러 미국 달러 지폐. 사진=로이터

미국 경제에서 성장의 과실이 노동이 아니라 자본으로 집중되는 흐름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기업 이익과 주가 상승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키우는 반면, 임금과 고용을 통한 노동의 몫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오늘날 미국 경제에서 가장 큰 돈은 노동이 아니라 자본으로 향하고 있다”며 “인공지능(AI) 확산은 이 흐름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IBM에서 엔비디아로…‘고용 없는 가치’의 시대

WSJ에 따르면 지난 1985년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자 최대 고용주 가운데 하나였던 IBM은 직원 수가 약 40만명에 달했다. 반면 현재 시가총액 1위권 기업인 엔비디아는 물가를 반영해도 당시 IBM보다 약 20배 높은 기업가치를 지녔지만 고용 규모는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이 같은 대비는 오늘날 미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WSJ는 지적했다. 팬데믹 이후 기업 이익은 급증했고, 이익에 부여되는 시장 가치도 그 이상으로 뛰었다는 것. 그 결과 기업과 주주, 그리고 일부 핵심 인재로 구성된 ‘자본’은 승자가 된 반면, 평균적인 노동자는 제한적인 소득 증가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WSJ의 진단이다.

WSJ는 “이 같은 자본과 노동 간 격차가 경기 지표는 양호한데 가계 체감 경기는 부정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 40년간 이어진 노동 몫 감소


미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총소득(GDI) 기준으로 노동 보상 비중은 1980년 58%에서 지난해 3분기 51.4%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기업 이익 비중은 7%에서 11.7%로 상승했다.

1980~1990년대 노조 약화와 아웃소싱 확산은 노동자의 협상력을 떨어뜨렸고, 자본의 성격도 변화했다. 기업 투자는 공장·설비보다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지식재산 등 짧은 주기로 교체되는 무형 자산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자동화의 영향은 제조업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 예일대 경제학자인 파스쿠알 레스트레포 교수에 따르면 1980년 제조업 부가가치의 66%가 임금과 복지로 노동에 돌아갔지만 2000년대에는 45%로 낮아졌다. 레스트레포 교수와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이 변화가 1987~2016년 노동 몫 감소의 약 절반을 설명한다고 분석했다.

◇ 팬데믹 이후 빅테크, 자본 집중 가속


팬데믹 초기에는 인력난 속에 임금이 급등하며 노동이 잠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물가 상승이 이를 상당 부분 상쇄했고 기업 이익은 빠르게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동시에 빅테크 기업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됐다. 오늘날 기술 기업의 자본은 공장이나 기계가 아니라 알고리즘, 운영체제, 표준, 방대한 사용자 네트워크에 있다. 엔비디아는 설계는 하지만 생산은 직접 하지 않는 구조를 대표한다.

이 같은 ‘슈퍼스타 기업’은 임금 수준은 높지만 고용 규모는 크지 않다. 최근 3년간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매출은 43% 증가했지만 직원 수는 거의 늘지 않았다.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아마존도 최근 인력 감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자본과 노동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다. 핵심 기술 인력은 주식 보상으로 대우받으며 일종의 ‘인적 자본’이 된다. 메타플랫폼은 인재 확보를 위해 스케일 AI 지분을 140억 달러(약 20조4400억 원)에 인수한 바 있다.

◇ 주식이 소비를 좌우하는 경제


WSJ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말 이후 물가를 감안한 평균 시간당 임금은 약 3% 증가하는 데 그쳤고 전체 노동 보상은 8% 늘었다. 반면 기업 이익은 43% 급증했다. 지난해에도 임금 상승은 양호했지만 기업 이익 증가 폭은 이를 웃돌았다.

팩트셋에 따르면 S&P 500 기업의 이익률은 최소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주가 대비 이익 배수 상승까지 겹치며 주식시장은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미국 가계의 주식 자산은 연간 가처분소득의 약 300%에 달한다. 이는 2019년의 200%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주식을 보유한 고소득층에게는 임금보다 자산 가치가 소비를 좌우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BCA리서치의 더그 페타 전략가는 “주가가 10% 오르면 최고 세율을 적용하더라도 소비 여력은 소득이 18% 증가한 것과 맞먹는다”고 분석했다.

◇ AI 확산, 노동보다 자본에 유리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확산이 이 같은 추세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에 수천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쏟아붓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을 활용하는 방식이라는 분석이다.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AI는 특정 직업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 노동 전반을 대체하는 범용 기술”이라며 “노동 집약도가 훨씬 낮은 기업 구조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레스트레포 교수도 “기업이 AI를 도입할수록 매출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 제조업처럼 줄어들 것”이라며 “육체 노동자뿐 아니라 화이트칼라 노동자도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사회적 기술이나 현장성이 필요한 직업, 그리고 소비자는 상대적 수혜자가 될 수 있지만, “가장 큰 승자는 결국 주주”라고 내다봤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