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제재 뚫고 인도·중국으로 원유 빼돌린 48개 유령회사 추적
단일 이메일 서버 공유하는 치명타 실수로 900억 달러 우회 수출망 발각
촘촘해지는 국제사회 감시망… 유럽연합, 밀수 생태계 통째로 묶는 제재 나설 듯
단일 이메일 서버 공유하는 치명타 실수로 900억 달러 우회 수출망 발각
촘촘해지는 국제사회 감시망… 유럽연합, 밀수 생태계 통째로 묶는 제재 나설 듯
이미지 확대보기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자금을 대고자 꾸린 900억 달러(약 130조3600억 원) 규모의 거대 원유 밀수망이 어이없는 정보통신(IT) 서버 오류 탓에 꼬리를 밟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0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트(Rosneft) 등이 미국과 유럽연합 감시를 뚫고 아시아로 원유를 빼돌린 복잡한 우회 수출 구조를 낱낱이 파헤쳤다.
단일 이메일 서버를 함께 쓴 유령회사들의 치명타 실수로 드러난 이번 사건은, 촘촘한 경제 제재를 피하려는 러시아의 속임수를 명백히 보여주는 동시에 제재망을 다시 짜려는 국제사회의 발걸음을 한층 앞당기는 방아쇠 노릇을 하고 있다.
단일 서버가 폭로한 130조 원대 밀수 생태계
놀랍게도 이 치밀한 조직망은 ‘mx.phoenixtrading.ltd’라는 단일 이메일 서버를 공동으로 쓴 실수 탓에 무너졌다. 분석가들은 이 서버에 등록한 442개 웹 도메인을 추적해 러시아와 인도 세관 자료를 교차 검증하며 얽히고설킨 회사 관계를 짚어냈다.
확인한 최소 수출액만 900억 달러에 이른다. 전체 자료를 확보해 중복 계산을 뺄 때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들은 원유를 사들이는 회사와 인도, 중국 등 목적지에 되파는 회사를 철저히 나누고, 아랍에미리트(UAE)를 중간 기착지로 삼아 추적을 따돌렸다. 원유 종류를 '수출용 혼합유(export blend)' 등 일반 명칭으로 표기해 출처를 감추는 수법도 썼다.
'유령 함대' 앞세운 미로 전술
밀수출의 핵심 운송 수단은 앞서부터 로스네프트와 끈을 이어온 '유령 함대'다. 가틱 십 매니지먼트(Gatik Ship Management) 같은 회사는 지난 2023년 무등록 유조선 58척을 동원해 원유를 실어 날랐다.
서방 통제가 강해진 뒤 가장 큰 러시아 원유 수출업체로 떠오른 레드우드 글로벌 서플라이(Redwood Global Supply)는 아랍에미리트에 세운 회사다. 원유 시장 참여자들은 이고르 세친(Igor Sechin) 로스네프트 최고경영자와 가까운 아제르바이잔 출신 사업가 에티바르 에이유브(Etibar Eyyub)가 이 회사를 실질로 지휘한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쪼개기 운영 방식에 관해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 센터의 세르게이 바쿨렌코(Sergey Vakulenko) 연구원은 "50개 회사를 동원하는 미로 전술은 1990년대 신흥재벌들이 세금을 피하고 부를 축적할 때 쓰던 낡은 수법"이라며 "단일 네트워크가 로스네프트를 위해 이처럼 거대한 규모로 움직인다는 점은 놀랍다"고 말했다.
해운 정보업체 윈드워드(Windward)의 미셸 비즈 보크만(Michelle Wiese Bockmann) 분석가 역시 "로스네프트와 루크오일은 제재를 피하고 원유 흐름을 이어가고자 똑같은 유통망과 유조선을 쓴다"며 "선박과 회사 이름을 자주 바꾸는 것은 화물의 목적지와 출처, 소유권을 감추려는 긴 호흡의 속임수"라고 꼬집었다.
구멍 뚫린 상한제… 제재망 다시 짜는 국제사회
이들의 치밀한 우회 전술 탓에 원유 가격 상한제 등 대러시아 제재는 심각한 틈을 드러냈다. 적발한 회사 가운데 8곳은 이미 미국과 유럽연합, 영국 제재 명단에 올라 있다.
유령회사의 평균 수명이 6개월에 지나지 않아 단속 기관이 추적에 애를 먹는다. 유럽연합 당국자들은 이들의 속임수를 앞서부터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고 밝혔다.
바이바 브라제(Baiba Braže) 라트비아 외무장관은 "이러한 네트워크는 제재를 받는 러시아 생산자 정체를 숨기는 데 도움을 준다"며 "우크라이나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자 전체 생태계를 통째로 묶어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의 데이비드 오설리번(David O'Sullivan) 제재 특사도 "제재를 피하려는 새롭고 복잡한 수법과 새로운 참가자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새로운 제재 조치는 이러한 우회를 더 어렵고, 예측하기 힘들며, 비용이 많이 들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