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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장비도 '슈퍼사이클'… AI 투자 열풍에 ASML·도쿄일렉트론 1분기 매출 16% 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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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장비도 '슈퍼사이클'… AI 투자 열풍에 ASML·도쿄일렉트론 1분기 매출 16% 급등

9대 장비 기업 순이익도 20% 껑충… HBM·차세대 DRAM 설비 주문 봇물
중국 매출 102억 달러·전체의 30% 돌파했지만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3,390억 벌금 '경종'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 9곳의 실적 전망치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올해 1분기(1~3월) 합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할 것으로 집계됐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 9곳의 실적 전망치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올해 1분기(1~3월) 합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할 것으로 집계됐다. 이미지=제미나이3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이 전 세계를 달구는 지금, 반도체 제조 설비 시장은 몇 년 만의 대호황을 맞고 있다. 문제는 이 뜨거운 수익의 이면에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시한폭탄이 함께 째깍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닛케이와 금융정보 서비스 QUICK FactSet이 지난 24(현지시간) 발표한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 9곳의 실적 전망치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올해 1분기(1~3) 합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분기 성장률 8%를 두 배 이상 압도하는 수치다. 순이익 규모 역시 전년보다 20% 치솟을 것이 확실시된다.

이번 반등은 업계 스스로도 예상을 뛰어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당초 장비 제조사들은 반도체 제조사들의 신규 공장이 완공되는 2026년 하반기에나 실질적인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에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의 수요가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을 야기하면서 타임라인이 크게 앞당겨졌다. 새 공장 완공을 기다리지 못한 반도체 제조사들이 기존 생산 라인 업그레이드에 나서면서 유지보수·개조 서비스 부문까지 예상 밖의 활황을 누리고 있다.

AI 서버가 쏘아올린 HBM 수요… 장비 슈퍼사이클 가속


이번 사이클의 핵심 연료는 AI 서버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차세대 DRAM이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메타 등 빅테크가 경쟁적으로 GPU 클러스터를 확장하면서 HBM 수요가 생산능력을 웃도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한국의 SK하이닉스는 청주·이천 공장의 HBM 전용 생산 라인 증설에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평택 캠퍼스 5공장(P5) 가동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세계 1위 대만 TSMC 역시 지난달 공식 발표를 통해 2026년까지 자본지출(CAPEX)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확인했다.

이러한 제조사들의 증설 경쟁은 곧장 장비 업계의 수주잔고를 불리고 있다. 반도체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네덜란드 ASML1분기 매출이 전년보다 10%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실적 발표 자리에서 "지난 몇 달 사이 시장 전망이 뚜렷하게 개선됐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일본 도쿄일렉트론도 고객사들의 조기 인도 요청이 잇따르자 회계연도 하반기 판매 전망치를 공식적으로 상향했다.

중국 매출 102억 달러… 수익의 '절정'인가, ''인가

조사 대상 9개 기업 중 중국 매출이 집계된 8곳의 최근 분기 중국 지역 매출은 전년보다 8% 늘어난 102억 달러(약 14조 5600억 원)로, 전체 매출의 30%를 넘어섰다. 미국의 고강도 수출규제 속에서도 중국이 글로벌 장비 업체들의 최대 단일 시장 지위를 굳건히 지키는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급화 전략이 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 기치 아래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 구형(레거시) 공정 장비를 대량 매입해 자국 생산능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ASML의 경우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구형 노광장비의 중국 내 판매가 약 60% 급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중국 특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라쿠텐 증권경제연구소의 야스오 이마나카 수석 연구원은 "중국의 AI 칩 자급 노력이 단기 매출을 뒷받침하겠지만, ASML의 중국 매출 비중은 지난해 33%에서 올해 약 20%로 급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 기술 갈등이 심화될수록 규제 범위가 구형 장비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3,390억 벌금… '법적 리스크' 현실화

경고음은 이미 울렸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1(현지시간)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가 한국 법인을 경유해 중국에 장비를 우회 수출한 혐의에 대해 25,200만 달러(3,390억 원)의 벌금 부과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단일 수출 통제 위반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큰 규모다. 미국 하원 내 '·중 전략경쟁 특별위원회'ASML·KLA 등 주요 장비사들이 중국 시장에서 과도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며 추가 규제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특정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장비 산업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AI발 슈퍼사이클이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가장 큰 불확실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 장비 슈퍼사이클 기회로 잡아야


이번 반도체 장비 슈퍼사이클은 한국에도 직접적인 기회로 작용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 증설에 속도를 높일수록 국내 생산 현장에 글로벌 장비 투자가 집중되고, 이는 국내 소재·부품·장비 생태계 전반의 동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호황의 이면에는 한국 기업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제재 사례가 바로 그 경고등이다. 미국의 수출 통제망이 한국 법인을 경유한 우회 수출까지 정조준하고 있음이 이번에 명백히 드러난 만큼, 국내 반도체 장비 유통·서비스 기업들은 공급망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즉각 재점검해야 한다. 동시에 글로벌 장비사들의 공백이 커질수록 국산 장비 업체들에게는 시장을 파고들 전략적 기회가 열린다.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국산화 로드맵을 가속화하지 않으면 이 슈퍼사이클의 과실은 고스란히 해외 업체들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