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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 대전환] 엔비디아 주가 급락·TSMC 마진 경고…'AI 거품론' 현실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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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 대전환] 엔비디아 주가 급락·TSMC 마진 경고…'AI 거품론' 현실이 됐나

역대 최대 순이익에도 5.5% 폭락한 이유, 950억 달러 '구매 폭탄'이 도화선
TSMC의 애리조나 공장. 사진=TSMC에서 제공이미지 확대보기
TSMC의 애리조나 공장. 사진=TSMC에서 제공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2월 마지막 주 동반 하락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생태계의 최정점에 있는 엔비디아가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고도 폭락하는 장면이 연출되자, 이에 국내 메모리 반도체 투자자들 사이에서 그간 빠르게 달려온 반도체 위주 코스피 상승세가 "AI 수요 정점론"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화려한 숫자 뒤에 숨겨진 균열은 무엇인가.

"두 배 순이익"도 못 막은 5.5% 급락


엔비디아는 지난달 25(현지시간) 장 마감 후 2024 회계연도 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불어났고 매출도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그러나 이튿날 뉴욕 증시에서 주가는 5.5% 급격한 하방 압력을 받으며 시장에 냉물을 끼얹었다. CNN 비즈니스는 이 현상을 두고 "단순 조정이 아니라 AI 산업 전반의 구조적 경고등"이라는 월가 분석가들의 진단을 전했다.

투자자들이 실적 대신 집중한 숫자는 따로 있었다. 엔비디아의 '구매 의무' 잔액이 1년 새 160억 달러(23조 원)에서 950억 달러(137조 원)6배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인 마이클 버리는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서 이 수치를 정조준하며 "재앙적 숫자가 될 수 있다"고 날을 세웠다.

구매 의무란 엔비디아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와 맺은 비취소성 주문 계약 총액이다. 수요가 꺾이는 순간 이 거대한 주문량은 재고 부담과 직결된다. 마이크 오로크 존스트레이딩 수석 시장 전략가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빅테크의 잉여현금흐름이 줄거나 정체되는 상황에서 엔비디아 홀로 낙관론을 유지하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불안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TSMC '기술 역설'… 흑자 전환했지만 마진이 깎인다


공급망의 핵심인 TSMC는 표면상 순항 중이다. 대만 매체 넥스트애플(Nextapple)이 지난달 27일 보도한 TSMC 재무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애리조나 공장은 2025년에 1614000만 대만달러(7420억 원)의 이익을 기록하며 투자 발표(2021) 이후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수익성 방어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TSMC20261분기 매출 가이던스를 최대 358억 달러(516400억 원)로 제시하면서도, 해외 공장 가동 및 2나노미터(nm) 공정 양산 비용으로 인해 전체 영업이익률이 2~3%포인트(p) 희석될 것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투입되는 막대한 선행 투자가 오히려 수익성을 갉아먹는 '기술 역설'에 진입한 셈이다. 일본 구마모토 공장은 여전히 976000만 대만달러(14조 원)의 적자를 내고 있어, 해외 제조 확장의 높은 벽을 재확인시켜 줬다.

TSMC20261분기 총이익률을 63~65%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2나노 전환 비용과 미국·독일 등 복수의 해외 생산기지 운영비가 장기 마진을 지속적으로 압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조건 우상향의 시대는 끝났다"


월가에서는 엔비디아 실적 발표 직후 옵션을 통한 헤지 거래와 공매도 포지션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지난달 26일자 보도에서 "엔비디아의 칩 판매량이 정점을 찍고 내려올 것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애플은 AI 인프라에 대한 과도한 지출을 자제한 덕분에 상대적 안전자산으로 부각되며 2월 중순 기준 한 달 새 주가가 7% 상승했다. 시장 안팎에서는 앞으로의 AI 반도체 투자가 '장밋빛 미래'를 파는 시대에서 '누가 실제로 현금을 벌고 있는가'를 검증하는 생존 게임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제 반도체 밸류체인 투자는 '묻지마 매수'가 통하던 시대를 지나, 각 기업의 잉여현금흐름과 마진 방어 능력을 정밀하게 따져야 하는 고도화된 영역으로 진입했다.

삼성·SK하이닉스, 충격파 제한적…HBM 수요는 구조적 성장


엔비디아발() 불확실성이 국내 메모리 기업에 즉각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제한적이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엔비디아가 블랙웰(Blackwell) 아키텍처 기반 차세대 GPU에 탑재되는 HBM3E(고대역폭메모리) 수요를 여전히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공급 계약에는 단기 영향이 없다는 분석이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주요 HBM 공급사로서 수혜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베라 루빈'2026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 가운데, 베라 루빈부터는 HBM4(6세대)가 본격 채택되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은 긍정적이다.

다만 엔비디아의 구매 의무 급증이 향후 재고 조정으로 이어질 경우, DRAM 및 낸드 범용 제품 가격 하락 압력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경계론도 제기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은 수요가 구조적으로 성장하는 품목이지만, 범용 메모리 사이클은 AI 지출 속도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