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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만 받으면 솟구치는 0.3g ‘로봇 메뚜기’... 전자칩 없이 188회 자가 도약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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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만 받으면 솟구치는 0.3g ‘로봇 메뚜기’... 전자칩 없이 188회 자가 도약 성공

전자 회로·배터리 탈피한 ‘순수 물리형 로봇’ 등장... 188회 무한 도약 성공
소재 자체가 센서·엔진·뇌 역할... 반도체 중심 로봇 공학의 패러다임 파괴
전력난 겪는 한국형 재난 구조·군사 탐찰 로봇의 새로운 돌파구 부상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UC Davis) 연구팀이 전자 부품이나 모터 없이 빛 에너지만으로 스스로 움직이는 소프트 로봇 기술을 공개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UC Davis) 연구팀이 전자 부품이나 모터 없이 빛 에너지만으로 스스로 움직이는 소프트 로봇 기술을 공개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로봇 공학의 상식이었던 ‘전자 칩과 배터리’의 공식이 깨지고 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UC Davis) 연구팀이 공개한 초소형 소프트 로봇은 그 흔한 반도체 하나 없이 오직 빛 에너지와 소재의 물리적 성질만으로 자율 기동을 구현하며 세계 로봇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과학 기술 전문 매체인 인터레스팅 엔지니어링은 지난 2일(현지시각), 원중 얀(Wenzhong Yan) 교수팀이 개발한 이 로봇이 188회의 연속 점프를 기록하며 기계적 지능의 정점을 보여주었다고 보도했다.

소재가 곧 두뇌... ‘빛-그림자 순환’으로 전력 한계 극복


이 로봇의 핵심은 ‘액정 엘라스토머(LCE)’라는 스마트 소재다. 연구팀은 소재의 분자 구조와 기하학적 형상을 정교하게 설계해, 빛을 받으면 에너지를 응축했다가 한순간에 터뜨리는 ‘스냅 스루(Snap-through)’ 현상을 유도했다.

로봇은 무게가 300mg(밀리그램)에 불과한 초경량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성능은 압도적이다. 빛이 소재를 비추면 엘라스토머가 수축하며 빔 구조에 탄성 에너지를 저장하는데, 이 에너지가 한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로봇은 공중으로 힘차게 튀어 오른다.

이때 로봇이 도약하며 스스로 만든 그림자가 빛을 차단하고, 소재가 다시 냉각되며 원래 형태로 복원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외부 명령이나 전선 없이도 ‘빛과 그림자’라는 자연의 대비를 구동 동력으로 삼아 188회에 이르는 무정지 연속 점프를 성공시킨 것이다.

특히 실험 과정에서 자기 몸무게의 1700배에 이르는 하중을 싣고도 도약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소재 중심 로봇의 강력한 힘을 입증했다.

얀 교수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를 통해 “처음에는 몇 번의 도약에 그칠 줄 알았으나, 소재의 물리적 자가 조절 기능 덕분에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반도체 의존증 벗어난 ‘기계 지능’... 극한 환경의 게임 체인저


국내 로봇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한국 로봇 산업이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배터리 무게와 전력 효율’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로봇 공학 전문가는 “기존 소프트 로봇은 유연하지만 제어가 어렵고 힘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이번 모델은 소재 공학이 전자 공학의 영역을 대체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기계적 지능’은 로봇이 복잡한 환경에서 별도의 연산 없이도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만든다. 얀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실용적인 ‘산불 감시망’ 구축을 제안했다.

태양광만 있으면 스스로 튀어 오르며 이동하는 수만 개의 로봇이 산악 지형을 누비며 화재를 실시간으로 탐지하는 시나리오다. 이는 고가의 드론이나 전력 유지가 어려운 고정식 센서를 보완할 혁신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한국형 재난 로봇에의 시사점... “소재 주도권 확보가 관건”


국내 방산 및 로봇 업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물리 지능형 로봇이 원전 사고 현장이나 붕괴된 건물 내부 등 전자 기기가 작동하기 어려운 강한 방사능·전자기 간섭 구역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전력 공급이 차단된 재난 현장에서 배터리 없이 태양광이나 열원만으로 무한히 기동할 수 있다는 점은 강력한 강점이다.

다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빛의 강도에 따른 도약 거리 조절과 신호 송수신 장치의 초경량화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기업들도 소재 기반의 자율 구동 기술을 연구 중이나, 구조적 설계만으로 완전한 자율성을 확보한 사례는 드물다"며 "앞으로 로봇 경쟁력은 칩 설계뿐만 아니라 소재의 ‘물리적 지능’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미래 로봇 공학은 ‘얼마나 똑똑한 칩을 쓰느냐’에서 ‘얼마나 영리한 소재를 쓰느냐’로 전장이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얀 교수가 제시한 ‘강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스마트 의류’처럼,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 로봇 기술의 본질은 무거운 기계가 아닌 가볍고 유연한 ‘지능형 소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