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에너지기구 32개국 만장일치, 비축유 4억 배럴 긴급 방출 결정
한국 수입 원유 70% 이상 중동산…"봉쇄 장기화 시 석유화학·반도체 직격"
한국 수입 원유 70% 이상 중동산…"봉쇄 장기화 시 석유화학·반도체 직격"
이미지 확대보기국제에너지기구(IEA)는 11일(현지시간) 32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비상 비축유 4억 배럴을 긴급 방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비축유 방출만으로는 전선이 확대 일로에 있는 미-이란 전쟁의 충격을 흡수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알자지라·AP·로이터가 이날 보도했다.
"미·이스라엘 선박은 표적"…해협서 하루 세 척 포탄에 맞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하탐 알-안비야 본부 대변인은 11일 성명을 내고 "미국과 이스라엘, 또는 그 동맹국과 연계된 선박은 모두 정당한 표적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석유 가격은 지역 안보에 달려 있다. 배럴당 200달러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경고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같은 날 해양 보안 기관들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세 척의 선박이 포탄을 맞았다고 확인했다. 오만 북쪽 약 18킬로미터(km) 해상에서는 태국 국적 화물선 '마유리 나리'가 공격을 받아 선체에서 연기가 치솟았다. 태국 해군이 공개한 사진에는 불길이 뱃전을 삼키는 장면이 담겼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열흘 넘게 이어지면서, 해협 통행량은 평시 대비 80% 넘게 쪼그라들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대형 원유 운반선(VLCC)의 중동~중국 노선 운임이 전쟁 발발 이전보다 약 3.3배 뛰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선박들이 해협을 계속 통과해야 한다"며 "매우 안전한 상황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상보험사 대부분이 보험 인수를 사실상 철회한 상태여서, 실제로 해협에 진입하는 상선은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유엔 구호조정실 톰 플레처 사무차장은 이날 모든 당사자에 인도주의 물자 수송에 '면제'를 보장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핵심 지역에 구호물자가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은 심각한 위험의 순간"이라고 경고했다.
IEA 4억 배럴 방출해도 "해협 재개통이 급선무"
IEA 파티흐 비롤 사무총장은 파리 본부에서 직접 나서 "32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비상 비축유 4억 배럴 방출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비롤 총장은 "이는 시장 혼란의 즉각적인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면서도 "석유와 가스 흐름의 안정을 되찾으려면 무엇보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재개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IEA는 각국이 '적절한 기간' 안에 물량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각국의 국내 사정에 맞는 기간 동안 순차적으로 방출될 예정이다.
각 회원국의 석유 소비량 비중에 따라 방출량이 할당되어 있다. 한국은 전체의 약 5.6%인 2246만 배럴을 방출할 계획이며, 일본(약 8,000만 배럴), 미국(국별 상세 할당 협의 중), 영국(1350만 배럴), 독일(1950만 배럴) 등이 동참한다. 각국 정부가 비축유를 시장에 직접 매각하거나 차입(Exchange)하는 방식으로 공급하여 유가 급등을 억제하게 된다.
코펜하겐대학교 크리스티안 뷰거 국제관계학 교수(해양 안보 전문)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해운 업계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해협 재개통 신호가 없다면 대규모 해운 위기가 몇 주, 어쩌면 몇 달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유럽의 '심각한 에너지 공급 위기'를 경고했다.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도 충격을 최소화할 방안을 긴급 논의 중이다.
한국도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수입 원유의 70% 이상이 중동산이며,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한국무역협회는 유가가 10% 오를 경우 국내 수출이 0.39% 줄고 수입은 2.68% 늘어 무역수지가 빠르게 나빠진다고 분석했다. 하나증권 윤재성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봉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크다"며 "원유·가스는 물론 석유 제품과 비료 가격도 단기간에 급등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회 항로를 택할 경우 해상운임은 기존보다 50~80% 뛰고, 과거 분쟁 때는 보험료가 최대 7배까지 치솟은 전례도 있다.
전쟁이 얼마나 이어지느냐가 결국 관건이다. 이란이 해협에 기뢰를 설치하고 있다는 정황까지 포착된 지금, 국제사회가 기대는 비축유는 단기 방파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