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는 '순 석유 수출국' 방패막으로 버티는데, 한국은 구조적 에너지 취약국
유가 배럴당 130달러 넘으면 세계 경기침체…스태그플레이션 경보 현실화
유가 배럴당 130달러 넘으면 세계 경기침체…스태그플레이션 경보 현실화
이미지 확대보기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달 28일 이란에 대한 합동 군사작전을 개시한 뒤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해협 봉쇄에 나서면서, 에너지 '목줄'이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부각되고 있다.
미 경제전문 매체 액시오스(Axios)는 15일(현지시각) 이번 이란전쟁이 미국의 '경제 초강대국' 지위에 대한 새로운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한국에게 이 전쟁의 무게는 차원이 다르다.
43% 폭등한 유가, 美경제는 방어…30년 만의 최대 에너지 충격
국제 유가는 이달 들어서만 43% 폭등하며 배럴당 103달러(약 15만 원)를 웃돌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미국·이스라엘 또는 그 동맹과 연관된 선박은 "모두 합법적 표적"이라고 선언하며,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약 29만 원)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Al Jazeera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전쟁으로 3월 한 달간 하루 약 800만 배럴의 세계 원유 공급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에너지 공급 충격이다.
그럼에도 미국 경제가 이 충격을 버텨내는 데는 분명한 구조적 이유가 있다. 액시오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순 석유 수출국이다.
과거 중동전쟁 때와 달리, 에너지 가격이 오를수록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되레 올라가는 역설적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달 미국 실업률은 4.4%를 유지했는데, 이 수치는 1940년대 이후 72%의 기간보다 낮은 수준이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GDP 성장률은 2.7% 수준으로 유지될 전망이다.
미국 채권시장 역시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15일 기준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연 4.28%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이 미국 경제 체제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고 판단했다면 나올 수 없는 수치다.
브루킹스연구소 경제연구 책임자이자 전 재무부 관리인 벤 해리스(Ben Harris)는 액시오스에 "이처럼 거대하고 다각화된 경제를 뒤흔들기란 쉽지 않다"면서 "진정한 에너지 독립이란 세계 시장의 변동성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왜 더 취약한가…'우회로도 없다'는 냉혹한 현실
미국이 에너지 수출로 이득을 보는 동안, 한국 산업계는 정반대 방향의 충격파를 맞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봉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원유와 가스는 물론 석유 제품, 비료 가격이 단기간 급등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회로를 찾아도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경우 해상운임은 기존보다 최대 50~80% 뛰고, 운송 기간도 최대 5일 늘어난다.
과거 해당 지역에서는 보험료가 최대 7배까지 치솟은 사례도 있다. Herald Corp 여기에 더해 HMM 관계자는 "유가 상승은 중동 항로뿐 아니라 전 항로에 영향을 미쳐 파급력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비료 공급망도 흔들린다. 무기질 비료 원료인 염화칼륨의 경우 이스라엘이 세계 생산의 약 5%를 차지하고, 글로벌 요소 시장에서 이란 생산 비중은 4.5%에 달한다.
이는 단순히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식량 생산과 연결된 복합 공급망 리스크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2021년 요소수 대란에 버금가는 원자재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약 1억 배럴, 약 117일분에 달하는 정부 비축유에 민간 재고를 더해 총 200일 이상 버틸 수 있는 공급 능력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100조 원 규모의 시장 안정화 프로그램 가동도 준비 중이다.
장기화 시나리오가 최대 변수…'스태그플레이션 함정' 경고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세계 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캐피털그룹의 미국 경제분석가 재러드 프란츠(Jared Franz)는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약 17만 4000원)까지 오르면 미국의 GDP 성장률이 1.5%포인트 깎여 1% 이하로 추락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세계 경제의 에너지발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채텀하우스는 분쟁이 수개월 지속되면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으며, 유로존 경제는 2분기에 역성장하고 하반기에도 정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에너지 수입국들에게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는 스태그플레이션, 즉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동시에 치솟는 상황이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심화시켜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를 막고, 반대로 성장 둔화에 대응해 금리를 내리면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하는 진퇴양난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런 공급 충격이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가장 강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해 2027년까지 고물가 기조를 고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JP모건자산운용의 수석 글로벌 전략가 데이비드 켈리(David Kelly)는 일자리 감소와 유가 급등이 경제에 가하는 이중 타격이 "매우 불길한 조합"이라고 밝혔다.
다만 프란츠는 "다가오는 미국 중간선거와 경기 하방 위험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장기화 의지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는 한국에게 익숙한 교훈을 다시 들이밀고 있다. 원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세계 5위권 제조 강국을 유지하는 동안, 에너지 공급망의 취약성은 단 한 번도 근본적으로 해소된 적이 없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총성이 언제 멎을지 모르는 지금, 그 취약성의 대가를 어느 범위까지 치러야 할지가 한국 경제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