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해협을 '위안화 통행료 징수소'로 전환… 하루 138척이 한 달 140척으로, 통항 사실상 중단
산업연구원 "3개월 지속 시 전 산업 생산비 9.4% 급등"… 헬륨 끊기면 반도체 공정도 멈춘다
산업연구원 "3개월 지속 시 전 산업 생산비 9.4% 급등"… 헬륨 끊기면 반도체 공정도 멈춘다
이미지 확대보기수입 원유의 95% 이상이 이 해협을 통과하는 한국에서 호르무즈 봉쇄는 추상적인 지정학 뉴스가 아니다. 정유공장 가동률, 반도체 팹(반도체 제조 공장)의 헬륨 공급, 식탁 위 식재료 가격을 동시에 흔드는 현실 변수다.
영국 가디언은 26일(현지시각) 해협의 통항 실태와 이란의 선별 통과 전략을 상세히 보도했고, 미국 버지니아대 비디아 마니 교수는 지난 25일(현지시각) 학술 미디어 더 컨버세이션에 기고한 글에서 이 사태가 전 세계 소비자 물가로 번지는 파급 경로를 따로 분석했다.
이란의 '위안화 통행료' — 해협이 봉쇄가 아닌 '관문'으로 바뀌었다
이란이 택한 전략은 전면 봉쇄가 아니라 '선별 통과'다. 혁명수비대(IRGC)가 자국 영해에 가까운 라라크섬 북쪽 항로를 '안전 통로'로 내세우며 통항 허가권을 쥐고 앉은 구조다.
해양 정보 업체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는 이를 '테헤란의 통행료 징수소'라 명명했다. 실제로 적어도 두 척의 선박이 통행 대가를 지불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그 중 한 건의 금액은 초대형 원유 운반선 기준 200만 달러(약 30억 원)에 달했다.
결제 통화는 중국 위안화였다. IRGC가 미국·유럽연합·영국의 제재 대상인 탓에 달러 결제가 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식 허가가 안전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로이드 리스트 분석가들은 혁명수비대가 단일 지휘 체계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내부 파벌이 허가와 무관하게 선박을 억류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분쟁 발생 후 20척 이상의 선박이 크고 작은 공격을 받았다. 팔라우 선적 유조선 스카이라이트가 오만 무산담 반도 인근에서 피격돼 인도 국적 선장과 선원 1명이 숨졌다.
현재 약 1000척의 유조선과 컨테이너선이 걸프만 내 항구와 정박지에 발이 묶여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만 명의 선원이 열악한 환경에서 보급품조차 바닥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본지 취재에 "이란의 허가를 받아도 리스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종류의 리스크로 전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미국·이스라엘의 5일간 공습 일시 중단이 선언됐지만, 로이드 리스트는 전투 종료 이후에도 정상 해운 패턴 회복까지 수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
반도체 팹의 헬륨이 위험하다 — 에너지 충격이 '산업 원자재 위기'로 번지는 구조
한국에서 이 사태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에너지 충격이 곧바로 제조업 원자재 공급망 붕괴로 이어지는 구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가 3월 1일 긴급 점검회의에서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우회 항로를 이용할 경우 해상운임이 최대 80% 폭등하고 운송 기간은 기존 25일에서 최장 60일까지 늘어난다. 과거 유사 사례에서는 전쟁 보험료가 최대 7배까지 할증된 선례도 있다.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특수 가스인 헬륨은 한국의 중동 의존도가 24.3%다. 카타르의 LNG·헬륨 복합 생산시설에서 동시에 생산되는 구조여서, LNG 공급이 끊기면 웨이퍼 식각·냉각 등 반도체 공정에도 이중 리스크가 발생한다.
나프타는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원료의 최상류 원재료로, 공급이 흔들릴 경우 합성수지·플라스틱 등 후방 제품 전반의 생산비와 수급에 영향이 미친다. 자동차 업계도 원재료 가격 상승과 중동 수요 위축이라는 이중 부담에 놓인다.
산업연구원이 3월 19일 발표한 '미국·이란 충돌과 호르무즈 리스크 공급망 시나리오 분석과 시사점'은 수치로 이를 입증했다.
단기 충격만으로도 제조업 생산비가 5.4% 오르고, 봉쇄가 3개월 이상 장기화돼 대체 경로가 굳어지는 구조적 충격 단계에서는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11.8%, 전 산업 평균은 9.4%까지 뛸 것으로 분석됐다. 화학제품(14.84%), 비금속광물(12.09%), 1차 금속·운송서비스(8.92%) 순으로 피해가 클 것으로 전망됐다.
카타르에너지는 이란 공격으로 라스라판·메사이드 LNG 생산시설 가동을 지난 2일 멈추고, 4일에는 계약 이행 불가를 공식 선언했다. 이 시설들은 요소·폴리머·메탄올을 생산하며 비료·플라스틱·포장재의 원료가 된다.
식탁 물가와 공산품 가격이 동시에 흔들리는 구조다. 미국 내 디젤 가격은 지난 2일부터 16일 사이 갤런(약 3.8리터)당 3.89달러에서 5.37달러로 38% 뛰었다.
디젤은 화물 트럭·농기계·어선을 굴리는 연료다. 미국의 물가 충격이 한국의 수입 완제품 가격에 전이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비축유 200일분의 허상 — '100조 원 방어막'이 막지 못하는 구조적 취약성
정부는 민간 재고를 합쳐 200일분 이상의 공급 능력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기획재정부는 필요시 100조 원 규모의 시장 안정화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수출 타격 중소기업 1000여 곳에 긴급 유동성을 공급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방어막에는 두 가지 구조적 한계가 있다. 첫째, 우회 대안의 절대적 부족이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푸자이라항 송유관, 사우디아라비아 동서 송유관, 오만 살랄라항 환적, 희망봉 대우회 등 4가지 경로를 모두 합쳐도 하루 2000만 배럴에 달하는 호르무즈 물동량의 15% 안팎밖에 소화하지 못한다.
둘째, 봉쇄 해제 후에도 정상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해양관련 전문가는 과거 사례를 근거로 봉쇄 기간의 2배 이상을 정상화 소요 기간으로 추산했다.
30개국 이상이 해협 재개방 공동 성명에 서명했고, 영국은 국제 안보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다. 32개국은 4억 배럴 이상의 비축유를 방출하기로 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의 우회 송유관이 하루 물동량의 최대 40%를 대체할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그러나 마니 교수는 "이 조치들이 해협 봉쇄를 온전히 메울 수 없다"며 "원유 생산·정제·수송 거점이 계속 공격 목표가 된다면 회복에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호르무즈 해협은 2023년 홍해 사태와 본질이 다르다. 홍해가 컨테이너 물류에 주로 충격을 줬다면, 호르무즈는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라는 에너지 동맥 자체를 겨냥한다.
수십 년간 '저렴한 중동 에너지'에 최적화된 산업 구조가 역설적으로 지금의 취약성을 낳았다. 정부의 비축유 방출과 금융 지원이 지금 당장의 불을 끄는 소방 호스라면, 공급선 다변화와 에너지원 전환은 불이 나지 않는 건물을 짓는 일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추진하지 않으면, 이 사태가 끝나도 다음 위기는 더 빠르게 찾아올 것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