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돌파에 태국은 석탄발전 재가동·필리핀은 ‘에너지 비상사태’ 선포
라오스 수력부터 인도네시아 지열까지… 11개국 잇는 ‘거대 그리드’가 유일한 탈출구
라오스 수력부터 인도네시아 지열까지… 11개국 잇는 ‘거대 그리드’가 유일한 탈출구
이미지 확대보기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고 석유화학 원료비가 70% 폭등하는 등 실물 경제가 마비되자, 외풍에 취약한 화석 연료 의존형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위기감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28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아세안 각국 정부는 이제 전력망 통합을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국가 안보’ 차원의 실존적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 “폭탄은 이란에 떨어졌는데 공장은 말레이시아에서 멈췄다”
테헤란 공격 직후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중동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시아의 공급망은 즉시 파열음을 냈다.
말레이시아의 플라스틱 포장 공장들은 원료인 수지 가격이 톤당 70% 급등하며 고사 위기에 처했다. 6,000km 떨어진 해협의 위기가 곧바로 현지 공장의 가동 중단으로 이어진 것이다.
태국과 필리핀 등은 유가 폭등을 막기 위해 매일 수천만 달러의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으나, 재정적 한계에 부딪혔다. 태국은 결국 보조금을 철회하며 주유소 가격이 급등했고, 고육책으로 폐쇄했던 석탄 화력 발전소까지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국가 연료의 거의 전량을 수입하는 필리핀은 지난주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심각한 전력 부족 위험을 경고했다.
◇ 아세안 전력망(APG): 11개국의 청정 에너지를 하나로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아세안 전력망 구축의 ‘임계점(Turning Point)’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APG는 라오스·미얀마의 풍부한 수력, 인도네시아·필리핀의 지열과 태양광 등 지역 내 재생 가능 에너지를 육상 및 해저 케이블로 연결해 공동 사용하는 비전이다.
이미 라오스-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를 잇는 1,000km 구간의 송전선이 성공적으로 가동되며 재생 에너지를 실시간 거래하고 있다. 캄보디아 케오 로타낙 에너지부 장관은 "이것이 우리가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11개국이 단일 구매자(Single Buyer)로서 에너지 협상에 나설 경우, 세계 시장에서 가격 협상력을 높이고 취약 국가의 소외를 막을 수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 수천억 달러의 비용과 ‘합의제’의 벽… 남은 과제
하지만 전력망 통합을 현실화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해저 케이블 네트워크 구축에는 수천억 달러의 자본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모든 결정을 만장일치로 내리는 아세안 특유의 합의제 시스템과 국가별로 상이한 기술 기준 및 규제 체계도 걸림돌이다. 1.5조 달러 규모의 인도네시아와 22억 달러 규모의 동티모르 간 경제 격차를 메울 재원 분담 모델도 시급하다.
◇ 한국 에너지·건설 업계에 주는 시사점
아세안 전력망 계획의 부활은 ‘K-인프라’에 거대한 기회다.
해저 케이블 및 국가 간 전력망 연결에 필수적인 HVDC 기술력을 보유한 LS전선, 현대일렉트릭 등 국내 기업들에게 수조 원 규모의 시장이 열릴 수 있다.
라오스의 수력이나 베트남의 해상 풍력 등 대규모 재생 에너지 단지 조성 사업에 한국 건설사와 엔지니어링사들의 참여 기회가 확대될 것이다.
국가별로 제각각인 전력망을 통합 제어할 수 있는 에너지 관리 시스템(EMS) 및 스마트 그리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한국 IT 기술의 우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