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식료품·주거비 3각 압박에 이란 전쟁發 공급망 충격까지 겹쳐
OECD 미국 인플레이션 전망 4.2%로 1.2%p 대폭 상향… 연준 금리 인하 기대 '안개 속으로'
OECD 미국 인플레이션 전망 4.2%로 1.2%p 대폭 상향… 연준 금리 인하 기대 '안개 속으로'
이미지 확대보기이란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미국 가계에 청구서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선제타격으로 촉발된 전쟁은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했고, 에너지·식료품·주거 비용이 동시에 치솟는 '3중 고통(Triple Stack of Pain)'을 일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3%에서 4.2%로 1.2%포인트나 올려 잡으면서, 인플레이션이 4%대로 재진입하는 시나리오가 현실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이미지 확대보기OECD, 전망치 1.2%p 급상향… "에너지 충격이 촉매"]
OECD는 지난 26일(현지시각) 발표한 경제전망 업데이트에서 올해 미국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4.2%로 대폭 상향했다. 작년 12월 전망 대비 1.2%포인트 높인 수치다.
블룸버그와 악시오스(Axios) 등 미국 주요 언론이 이 보고서를 지난 28일(현지시각) 집중 보도하며 '경고등'이 켜졌다고 전했다. OECD는 보고서에서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급등과 예측 불가능한 분쟁 전개 양상이 비용을 높이고 수요를 억제하면서, 강한 기술 투자와 2025년 관세 완화의 긍정적 흐름을 상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OECD는 "에너지 가격이 금융시장 기대에 맞게 연중 하반기에 안정된다는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라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추가 상방 압력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가스값·전기료·식품값… 생활물가의 '삼각파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곧장 주유소 간판에 숫자를 바꿔놓았다. 전쟁 발발 전까지 갤런당 3달러대를 유지하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4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태평양 연안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6달러(약 9050원)를 넘어서기도 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항공료와 물류 비용에 빠르게 전이된다. 무디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크 잔디(Mark Zandi)는 CNBC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약 15만 원) 수준을 유지한다면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가속하면서 소비자 구매력을 갉아먹고, 소비 지출·GDP·고용에 타격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탠퍼드대 경제학자들은 "현재 수준의 휘발유 가격 상승분만으로도 지난해 의회를 통과한 'One Big, Beautiful Bill Act'에 따른 세금 환급 혜택이 사실상 상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모기지·국채금리 동반 상승… '내 집 마련의 꿈' 다시 멀어져
물가 충격에 금융 환경까지 악화하면서 가계는 이중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국채 금리는 이란 전쟁 개전 이후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오르면 모기지 금리도 함께 뛰는 구조다. CNN 보도에 따르면 2022년 이후 처음으로 30년 만기 고정 모기지 금리가 6% 아래로 내려갔던 것도 잠시, 전쟁 발발 이후 다시 6%대로 반등했다. 인플레이션 위기가 '집 사기 어려운 나라'라는 현실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셈이다.
증시도 짐을 더했다. S&P 500 지수는 연초 대비 약 7% 하락했다. 주식 자산을 바탕으로 소비를 지탱해 온 고소득층의 지출 여력도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의 톰 바킨(Tom Barkin) 총재는 지난 27일 이스트 테네시 주립대 경제포럼에서 "소비자들은 높은 가격에 지쳐 구매를 미루거나 유통업체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이 멈출 위험이 감지되는 상황이었는데, 이제 유가 급등까지 겹쳤다"며 금리 동결 기조의 유지를 시사했다.
연착륙인가, 스태그플레이션인가… 두 갈래 길
현시점의 가장 큰 위험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즉 물가상승과 성장 둔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나리오다.
과거 1973년 중동 오일 쇼크나 1979년 이란 혁명 당시에는 에너지 가격 급등이 전 산업으로 파급되며 심각한 경기 침체를 초래했다. 다만 현재 미국은 당시와 달리 셰일 혁명 이후 순(純) 에너지 수출국 지위를 갖추고 있어, 충격의 폭과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OECD는 "전쟁이 예상보다 빨리 해소되거나 원유·가스·비료 가격이 하반기에 안정된다면, 인플레이션 압력도 점차 완화될 수 있다"며 기저 시나리오에 낙관적 완충 가능성도 포함시켰다.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3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추가 인상 대신 '관망'을 택했다.
하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파시픽 리서치 인스티튜트의 경제학자 웨인 와인가든(Wayne Winegarden)은 "전쟁이 휘발유·전기·식료품 가격에 동시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이는 이미 높은 생활 비용으로 힘겨워하는 가계의 체감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시장도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월 실업률은 4.4%로 소폭 상승했다. 2022년과 달리 구인 규모가 줄고 임금 상승 폭도 둔화해, 가격 상승분을 임금으로 상쇄하는 과거의 구조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이번 위기의 핵심이다.
한국 수출·환율에도 불똥 튀나… '인플레 안개' 언제 걷히나
미국의 인플레이션 4%대 재진입 우려는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이다. 미국 연준이 금리 인하를 더 늦출수록, 원·달러 환율의 상방 압력은 지속된다. 달러 강세 환경에서 수입 물가가 덩달아 오르는 '수입 인플레이션' 위험이 한국 내에서도 현실화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중동산 원유에 의존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면 국내 정유·화학 업체의 원가 부담이 커지고, 이는 경유·LPG 등 산업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정유 업계는 현재 대체 공급선 확보와 재고 운용 전략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연준의 첫 번째 금리 인하 시점이 당초 기대했던 상반기에서 하반기 또는 그 이후로 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확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추가 인상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020년 12월 이후 누적 25%에 달하는 가격 상승의 충격을 고스란히 감내해 온 미국 가계가 이번 에너지 충격까지 더해질 경우 소비 심리를 급격히 닫아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소비가 GDP의 70% 가까이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에서, 가계의 '지갑 잠그기'는 연착륙을 경착륙으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변수다.
이란 전쟁의 종착점과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통 여부가 2026년 미국 경제의 향방을 가를 최대 변수가 됐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