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규제 피해 홍콩을 '데이터 세탁소'로 활용... 지난해 본토 기업 76개사 상장
中 'AI·반도체 국산화 90%' 목표에 한국 중간재 수출 '비상'... 수평적 경쟁 시대 돌입
'차이나 리스크' 우회 기지 된 홍콩,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한국 기업의 대응 과제는?
中 'AI·반도체 국산화 90%' 목표에 한국 중간재 수출 '비상'... 수평적 경쟁 시대 돌입
'차이나 리스크' 우회 기지 된 홍콩,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한국 기업의 대응 과제는?
이미지 확대보기미국과 유럽의 강력한 '차이나 리스크' 견제망을 뚫기 위해 중국 첨단 기술 기업들이 홍콩을 글로벌 시장 진출의 '전략적 요충지'로 재정의하며 집결하고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지난 12일(현지시각) 폐막한 양회에서 확정한 '제1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5·5 계획, 2026~2030)'의 핵심인 '기술 자립' 전략과 맞물려, 그동안 중국을 주요 수출처로 삼아온 한국 테크 산업에 구조적 위협이 될 전망이다.
영국 BBC 방송이 30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중국 본토 테크 기업들은 서방의 엄격해진 감시를 피해 자금을 조달하고 국제적 신뢰도를 쌓는 '중간 기착지'로 홍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방 규제 뚫는 ‘데이터 완충지대’… 홍콩의 전략적 변신
최근 중국 본토 테크 기업들의 홍콩행은 단순한 지역 이전을 넘어 지정학적 생존 전략으로 풀이된다.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증시에 상장한 본토 기업은 76개사로, 전년(30개사) 대비 153%나 급증했다.
이는 미·중 갈등 심화로 뉴욕 증시 상장이 사실상 막힌 상황에서 홍콩을 국제 자본 조달의 '유일한 창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다.
단순 자금 조달을 넘어 '신뢰 구축'이 핵심이다. AI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닝램프 테크놀로지의 우밍후이 회장은 홍콩을“데이터 준수 전달역”이라 정의했다.
본토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기 전, 홍콩에서 국제표준에 맞는 데이터 보안 체계를 검증받아 '중국산 기술'에 대한 서방의 거부감을 희석하겠다는 포석이다.
배달 로봇 기업 '윤지(Yunji)'가 홍콩 내 국제 호텔에서 실증 실험을 반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홍콩에서의 성공 사례를 '글로벌 통행증'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中 ‘15·5 계획’의 야심… 기술 주권 확보와 ‘중간재 특수’의 종말
이러한 홍콩발 우회 전략의 배후에는 중국의 강력한 국산화 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번 15·5 계획의 핵심은 오는 2030년까지 산업 전반의 인공지능(AI) 도입률을 90%까지 끌어올리고, 이를 자국 기술로 채우는 '지능형 경제 성장'이다.
특히 미세 공정 장비 수입 제한을 타개하기 위해 '칩렛(Chiplet)' 설계와 첨단 패키징 기술을 국가 전략 과제로 격상하며 기술적 '차선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한국 테크 수출의 근간을 흔드는 요인이다. 한국의 대중 수출 중 반도체 등 중간재 비중은 약 80%에 달하지만, 중국의 자국산 대체(Domestic Substitution)가 가속화되면서 한국의 설 자리는 급격히 좁아지고 있다.
지난 1월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기업들은 5년 내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가전,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대부분의 ICT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의 경쟁력을 추월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제로섬’ 경쟁 돌입… 한·중 관계 ‘수평적 생존 게임’으로
전문가들은 이제 한·중 관계가 과거 한국이 기술을 제공하고 중국이 노동력을 제공하던 '수직적 보완'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놓고 다투는 '수평적 적대 경쟁'으로 완전히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홍콩을 통해 '차이나 리스크'를 희석한 중국 기업들이 동남아, 중동, 유럽 등 한국의 주력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전기차, 배터리, 서비스 로봇으로 우리 기업의 파이를 직접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티시스 은행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홍콩은 본토 기업들이 국제표준을 충족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글로벌 투자자의 신뢰를 쌓는 무대"라고 평가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양국의 수출 품목이 겹치는 경쟁적 구조가 고착화됐다"며 "단순한 시장 방어를 넘어 신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분업 모델'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콩은 중국 테크 기업들에게 서방의 규제를 우회하는 '전략적 완충지대'이자 글로벌 진출의 '시험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의 15·5 계획이 본격화되는 향후 5년은 한국 테크 산업에 있어 기술 우위를 지켜낼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와 같은 핵심 분야에서 독보적인 '초격차'를 유지하는 동시에, 포스트 차이나 시장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중국의 거대한 AI 생태계와 공존할 수 있는 유연한 전략적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