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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채 820억 달러 대량 매도… 오일쇼크가 흔든 '달러 패권'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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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채 820억 달러 대량 매도… 오일쇼크가 흔든 '달러 패권'의 균열

유가 상승→달러 수요 폭증→신흥국 통화 약세→외환 방어→美 국채 투매→글로벌 금리 급등
연쇄 충격에 뉴욕 연준 수탁액 2조 7000억 달러로 급감… 14년 만에 최저
튀르키예 220억 달러·인도·태국도 외환보유액 감소… 한국도 직격탄
미 국채 시장 30조 달러 규모에도 2012년 수준 매도세… "비공식 글로벌 긴축" 경고
 외국 공식 기관의 미 국채 수탁 잔액이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달 25일 이후 한 달 만에 820억 달러(약 124조 원)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잔액은 2조 7000억 달러(약 4109조 원) 수준으로, 2012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외국 공식 기관의 미 국채 수탁 잔액이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달 25일 이후 한 달 만에 820억 달러(약 124조 원)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잔액은 2조 7000억 달러(약 4109조 원) 수준으로, 2012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미지=제미나이3
'전쟁 비용 청구서'가 미 국채 시장으로 날아들다

한국 수입 원유의 90%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지 한 달. 에너지 쇼크의 불길은 이제 글로벌 채권 시장의 심장부를 겨누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31(현지시각)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준) 자료를 인용해 외국 공식 기관의 미 국채 수탁 잔액이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달 25일 이후 한 달 만에 820억 달러(124조 원)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잔액은 27000억 달러(4109조 원) 수준으로, 2012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숫자는 단순한 시장 통계가 아니다. 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비상금 금고'를 열어 전쟁이 촉발한 경제 위기에 맞서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메커니즘, "유가가 오르면 왜 미 국채를 팔아야 하나"


작동 원리는 명확하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자, 원유를 달러로 수입하는 신흥국들의 달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자국 통화 가치는 급락했고, 수입 물가는 더 올랐다. 중앙은행들은 이를 방어하기 위한 달러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유동성이 높은 자산, 즉 미 국채를 현금화하는 환율 개입에 나섰다.

미국 외교협회(CFR) 브래드 세서 선임연구원은 튀르키예, 인도, 태국을 주요 매도 주체로 지목했다. 그는 "이들 국가는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이 수입 원유 가격을 더 끌어올려 민생 고통을 키우는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튀르뤼키예 중앙은행의 경우, 전쟁 개시 이후 외화 보유액 내 외국 정부 유가증권을 220억 달러(33조 원)어치 처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서 연구원은 이 중 상당 부분이 美 국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인도와 태국 역시 전쟁 이후 외환보유액이 감소했으나, 미 국채 직접 매도인지 달러 예금 인출인지는 아직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진짜 문제, "美 국채를 누가 받아내느냐"


애건 자산운용의 스티븐 존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번 매도세를 "외국 공식 기관들이 美 국채를 현금화해 전쟁 금고를 채우고 있다"고 규정했다. 비 오는 날을 대비해 모아둔 저축을 한꺼번에 꺼내 쓰는 셈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깊어진다. 외국 중앙은행들의 美 국채 매도는 단순히 특정 자산이 시장에 나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글로벌 달러 유동성을 회수하는 효과, 즉 연준의 금리 인상과 유사한 '비공식 글로벌 긴축(shadow tightening)'으로 작용한다. 연준이 양적 긴축(QT)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외국 중앙은행들까지 물량을 쏟아내면, 이를 흡수할 주체가 지극히 제한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메건 스와이버 미국 금리 전략가는 "美 국채 시장 규모가 2012년보다 세 배 이상 커진 30조 달러(45700조 원)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수준의 매도세가 나타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동 산유국들도 유가 수익 감소를 메우기 위해 보유 자산을 추가 처분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은행들은 규제 부담으로 국채 추가 매입 여력이 제한적이고, 연준은 현재 양적 긴축 기조를 유지하며 사실상 시장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 민간 투자자만이 남은 흡수 주체인데, 이들은 금리 상승을 감수해야만 시장에 뛰어들 유인이 생긴다. 외국 중앙은행 매도 물량이 민간으로 넘어가는 한, 금리 상승 압력은 구조적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다.

충돌하는 두 힘, 인플레이션 VS 경기침체


이달 미국 2년물과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2024년 이후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통상 지정학적 위기 국면에서 '안전자산'으로 부각되는 美 국채가 오히려 팔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번 위기의 구조적 특수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장의 혼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 우려로 이어져 금리 상승 압력을 키우지만, 동시에 기업 원가 부담 증가와 소비 위축을 통해 경기침체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금리 방향성에 대한 시장의 판단이 갈리는 것은 이 두 힘이 동시에 작용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으로 명명하며 경계한다.

완충 요인도 존재한다. 미국과 이란 간 대화 채널이 열리고 있다는 신호, 국제에너지기구(IEA) 비축유 추가 방출 가능성, 그리고 美 연준의 정책 유연성 등이 금리 상승세를 일부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봉쇄가 장기화한다면 이 완충 요인들의 효력은 급격히 줄어든다.

달러 패권의 균열, 역설 속 구조 변화


스와이버 전략가는 "이번 매도세는 외국 외환보유액 관리자들이 美 국채에서 점진적으로 이탈하는 거대한 구조적 흐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과거 美 국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외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그 빈자리를 민간 투자자들이 채우는 구도로 바뀌고 있다.

, 이 해석에는 중요한 단서가 따른다. 달러 자산 비중 축소는 장기적 구조 변화지만, 위기 국면에서는 오히려 달러 수요가 강화되는 역설적 현상이 동시에 나타난다. 신흥국들은 자국 통화를 지키기 위해 달러를 끌어모으면서 美 국채를 팔고 있는 것이다. 이란과의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위기는 이 상반된 두 흐름을 동시에 가속화하는 특수한 조건을 만들고 있다.

한국, '이중 압박'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한국은 이 충격의 직격탄 위치에 있다. 수입 원유의 60% 이상이 중동에서 들어오고, 그 중 9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OECD는 이번 사태로 한국의 2026년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치 2.1%에서 1.7%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하락 폭은 주요국 중 가장 크다.

고유가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은 원화 약세를 부르고, 이를 방어하기 위한 한국은행의 환율 개입은 외환보유액 감소로 이어진다. 실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1월 말 기준 4259억 달러(650조 원)로 전월 대비 215000만 달러(32800억 원) 줄었다. 외환보유액의 상당 부분이 美 국채 등으로 운용되고 있는 만큼, 환율 방어 과정에서 보유 채권 처분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정부는 현재 비축유 208일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실제 일일 소비량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실질 가용 기간은 약 68일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UAE로부터 긴급 확보한 2400만 배럴과 IEA 방출분이 추가 완충 역할을 하지만, 봉쇄 장기화 시 그 한계는 분명하다.

국내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고유가와 고금리라는 이중 압박 환경에서 한국 기업들의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에너지 비용에 직접 노출되는 항공·해운·석유화학·제조업 전반에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당장 봐야 할 지표 3가지


이 상황이 어디로 향하는지 판단하려면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추적해야 한다.

첫째, 호르무즈 봉쇄 해제 시점이다. 이란의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협상 동향과 美 항모전단의 해협 진입 여부가 가장 결정적 변수다. 봉쇄가 4월을 넘기면 스태그플레이션 시나리오가 기준선이 된다.

둘째, 美 국채 10년물 금리다. 외국 중앙은행의 투매가 계속되는 동안 이 금리가 추가 상승하면 글로벌 기업·가계 대출금리를 끌어올리는 연쇄 효과가 본격화된다. 2024년 고점(4.7% 내외) 재도달 여부가 핵심 분수령이다.

셋째, ·달러 환율과 한국 외환보유액의 월간 변화다. 한국은행의 환율 방어 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외환보유액이 빠르게 감소한다면 한국은행도 美 국채 매도 압력에 노출될 수 있다.

투자 관점에서는 이 환경이 장기채보다 단기채, 성장주보다 현금 흐름 기반 자산에 유리한 국면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에너지·달러 강세 자산과 방산 관련 섹터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전쟁이라는 변수가 사라지지 않는 한,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美 국채 던지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흐름이 지속되면 달러 패권의 균열은 더 넓어진다. 문제는 그 균열 위에 서 있는 한국이 얼마나 빨리, 얼마나 두꺼운 방어막을 쌓을 수 있느냐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