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보안 시대의 종언... 칩 내부 회로에 ‘양자 방패’ 삽입 의무화하는 신규 지침
삼성·TSMC 비상, 설계부터 다시 그려야 하는 반도체 보안의 ‘디지털 족쇄’이자 기회
삼성·TSMC 비상, 설계부터 다시 그려야 하는 반도체 보안의 ‘디지털 족쇄’이자 기회
이미지 확대보기슈퍼컴퓨터로 수만 년 걸릴 암호를 단 몇 초 만에 풀어버리는 양자 컴퓨터의 등장은 현대 금융과 군사 시스템을 지탱하는 암호 체계를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이에 미국 정부가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 장벽을 넘어, 아예 반도체 칩을 만드는 설계 단계부터 양자 해킹을 원천 차단하는 물리적 회로를 박아 넣으라는 전례 없는 강제 지침을 꺼내 들었다.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설계도가 통째로 바뀌어야 하는 거대한 전환점이 시작된 것이다.
최근 미국의 반도체 공정 및 설계 전문 매체인 세미컨덕터 엔지니어링(Semiconductor Engineering)이 ‘양자 AI와 자동차 분야에서 급증하는 IC 보안 위협(IC Security Threats Spike With Quantum, AI, And Automotive)’이라는 제목의 아티클을 통해 전한 바에 의하면, 미국 상무부는 최근 포스트 양자 암호(PQC) 기술을 반도체 하드웨어 아키텍처 내에 직접 통합할 것을 요구하는 신규 설계 지침을 마련했다. 이는 기존의 보안 방식이 양자 컴퓨터의 압도적인 연산 능력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판단 아래, 칩의 하드웨어 단계에서부터 암호화 알고리즘을 물리적으로 고정하라는 강력한 압박이다.
지금 탈취하고 나중에 해독하는 공격에 대한 선제 타격
양자 컴퓨터가 아직 완벽히 상용화되지 않았음에도 미 정부가 서두르는 이유는 이른바 에스앤디엘(SNDL, Store Now, Decipher Later) 공격 때문이다. 적대 국가나 해커들이 지금 당장은 풀 수 없는 암호화된 국가 기밀 데이터를 일단 대량으로 수집해 저장해둔 뒤, 몇 년 후 양자 컴퓨터가 완성되는 즉시 해독해버리는 전략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하드웨어 수준에서 양자 내성 암호를 강제하는 것은 미래의 해킹 위협을 현재의 제조 단계에서 미리 차단하겠다는 배수진이다.
칩 설계도를 다시 그려야 하는 삼성과 TSMC의 고심
이번 지침은 단순히 보안 패치를 업데이트하는 수준이 아니다. 반도체 칩 내부의 한정된 공간에 양자 암호를 처리하기 위한 별도의 전용 회로를 추가해야 하며, 이는 전체적인 전력 소비와 발열, 성능 효율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삼성전자와 TSMC 같은 파운드리 거인들은 물론이고, 애플이나 엔비디아 같은 칩 설계 기업들 역시 미 상무부의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미국 시장 진입이나 공공 조달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설계 최적화 전쟁에 돌입했다.
자율주행차와 금융 인프라를 겨냥한 보안의 디지털 족쇄
특히 이번 규제가 가장 민감하게 작용하는 분야는 자율주행차와 국가 금융망이다. 움직이는 컴퓨터라 불리는 현대의 자동차가 양자 해킹에 노출될 경우 단순한 정보 유출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원격 조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는 차량용 반도체에 대해 더욱 엄격한 하드웨어 보안 표준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제조사들에게는 엄청난 비용 상승을 초래하는 디지털 족쇄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기술적 해자가 될 기회이기도 하다.
보안이 성능을 압도하는 반도체 서열 재편의 시작
그동안 반도체 시장은 누가 더 빠르고 작게 만드느냐는 성능 경쟁에만 매몰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더 완벽한 양자 방패를 칩 내부에 구현하느냐가 제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보안 회로를 넣으면서도 칩의 크기를 유지하고 성능 저하를 최소화하는 설계 능력이 향후 반도체 기업들의 실력을 가르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성능 제일주의 시대가 가고 보안 주권의 시대가 반도체 산업을 덮치고 있다.
실리콘 기판 위에 새겨지는 국가 안보의 새로운 문법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aedang@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