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달러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기축통화 신뢰의 균열... 한국 경제 덮친 70%의 ‘저주’

글로벌이코노믹

“달러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기축통화 신뢰의 균열... 한국 경제 덮친 70%의 ‘저주’

미국 재무부의 달러 무기화가 불러온 역풍과 브릭스 결제망의 습격... 흔들리는 달러 패권의 실체
외환보유고 70%가 달러 자산인 한국의 비상... 기축통화 종말이 던진 최후통첩과 생존 시나리오
지난해 7월 7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해 7월 7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세계 경제의 심장부인 워싱턴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 등 적대국을 제재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활용해온 달러 금융망이 오히려 달러 패권을 갉아먹는 독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 내부에서조차 달러 무기화 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등 신흥 5개국 협의체)를 중심으로 한 비달러 결제 체제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달러의 빈자리를 파고들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금융 지표의 변화를 넘어 한국과 같은 달러 의존국들에게는 국가 존망이 걸린 거대한 지각변동의 시작이다.

최근 이 같은 지각변동을 알린 대표적인 매체는 역시 영국의 글로벌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다. FT는 4월 2일 '흔들리는 달러의 성벽: 중앙은행들이 금과 대체 자산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Cracks in the Dollar's Fortress: Why Central Banks are Pivoting to Gold and Alternative Assets)'라는 제하의 아티클을 통해 전 세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구성 변화를 정밀 분석한 뒤 달러 비중이 역사적 저점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동 보도는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교역국들이 달러 자산의 70퍼센트 집중도를 해소하기 위해 전략적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을 비중 있게 다뤘다.

주목할 점은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 매체인 포린어페어즈가 약 2년 전인 2024년 2월 23일 보도했던 '달러 지배력의 무기화와 제재가 미치는 영향'이라는 의제가 지금 큰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까닭은 당시 경고했던 달러 기피 현상이 2년이 지난 지금 브릭스 통합 결제 시스템인 브릭스 페이의 실질적 가동으로 이어지며 글로벌 달러 패권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포린어페어즈는 당시 미국이 금융 제재를 남발할수록 동맹국조차 대안을 찾게 될 것이라 분석했으며, 최근 한국의 주요 수출국들이 위안화나 현지 통화 결제를 요구하는 빈도가 급증하면서 해당 기사의 전략적 통찰이 한국 경제의 생존 과제로 부상했다.

기축통화의 무기화가 불러온 거대한 역설과 신뢰의 붕괴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자산을 동결하고 국제은행간통행협정인 스위프트망에서 축출하는 강력한 금융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이 조치는 전 세계 국가들에게 달러가 언제든 정치적 목적에 의해 차단될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주었다. 신뢰를 먹고 사는 기축통화가 스스로 신뢰를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신흥국들은 미국에 예치한 자산을 회수하거나 금과 같은 실물 자산, 혹은 자국 통화 결제 비중을 높이며 달러로부터의 독립을 서두르고 있다.

브릭스 페이의 가동과 스위프트 체제의 실질적 균열


브릭스 국가들이 추진해온 독자 결제망인 브릭스 페이는 더 이상 구상 단계에 머물지 않는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이 시스템은 달러를 거치지 않고도 국가 간 무역 대금을 실시간으로 정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다. 특히 원유와 천연가스 등 주요 원자재 결제에 이 망이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달러의 가장 강력한 지지대였던 페트로 달러 체제는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달러를 통하지 않고도 세계 경제가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현실로 입증된 셈이다.

달러에 올인한 한국 외환보유고의 구조적 취약성


한국은 전 세계에서 달러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외환보유고의 상당 부분이 달러화 자산과 미국 국채로 채워져 있는 상황에서 달러 가치의 하락이나 패권 약화는 국가 자산의 실질적 가치 폭락을 의미한다. 만약 글로벌 결제 비중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영역이 현재의 40퍼센트대에서 급격히 축소될 경우, 한국이 보유한 수천억 달러의 가치는 종잇조각에 불과한 위험 자산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환율 변동의 문제가 아닌 국가 신용등급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뇌관이다.

공급망 다변화가 강제하는 다통화 결제 전략의 시대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인 동남아시아와 중동 국가들이 브릭스 체제에 동조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기업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상대국이 달러 대신 자국 통화나 위안화 결제를 요구할 때 이를 거부할 명분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 금융권과 기업들은 단일 통화 결제 관행에서 벗어나 여러 통화를 혼합해 결제하는 다통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환리스크 관리의 난이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 다극화 통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포스트 달러 시대를 대비한 한국 금융 안보의 재설계


달러 패권의 균열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한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외환보유고 내 달러 비중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금과 같은 안전 자산이나 주요국 통화 바스켓을 재구성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 화폐 시대에 발맞춰 한국형 디지털 화폐와 글로벌 비달러 결제망 사이의 호환성을 확보하는 기술적 대응도 서둘러야 한다. 기축통화의 성벽이 무너지는 지금, 새로운 안보 지형에 맞는 금융 방어막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는 달러와 함께 침몰할 위험이 크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aeda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