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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원유 수입 63% 인질로 잡힌 '33km 병목'…걸프 산유국, 대체 물류망 속속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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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원유 수입 63% 인질로 잡힌 '33km 병목'…걸프 산유국, 대체 물류망 속속 가동

호르무즈 해협 위기가 뒤흔드는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 50년 무역 구조가 '주 단위'로 재편
사우디·UAE·오만, 우회 송유관·심수항 총동원…한국 해운업계도 긴급 대응 태세
오만 앞바다에 정박한 유조선들.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오만 앞바다에 정박한 유조선들. 사진=연합뉴스
중동 원유의 관문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지면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에너지 수입국들이 비상에 걸렸다.

걸프 산유국들은 수십 년간 방치해 온 대체 물류 인프라를 전속력으로 가동하기 시작했고, 이 흐름이 전후 글로벌 무역 판도를 항구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UAE 기업·자선 특사 바드르 자파르(Badr Jafar)는 7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를 통해 "50년 묵은 무역·인프라 모델이 단 몇 주 만에 다시 그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33km 수로'에 걸린 세계 에너지 — 한국은 직격탄 맞았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력은 숫자로 읽어야 제대로 보인다. 전체 너비는 약 33~50km지만 대형 유조선이 실제 통항할 수 있는 수로는 방향당 3km에 불과하다. 항로의 절반이 이란 영해를 지나야 하는 구조 탓에, 이란이 사실상 이 수로를 통제하는 형국 이다.

이 좁은 길목에 세계 경제가 얼마나 깊이 얽혀 있는지는 FT 기고에 명시된 수치들이 말해준다. 전 세계 해상 석유 물동량의 30%, 액화천연가스(LNG) 교역량의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해상으로 거래되는 비료의 3분의 1, 황(硫黄) 수출량의 절반 가까이, 반도체 제조와 인공지능(AI) 공급망에 필수적인 헬륨까지 이 통로에 의존한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피해 당사국이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63%를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이라크 등 중동 4개국에 의존하고 있어 직접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LNG도 카타르·UAE 등 중동 의존도가 30%를 웃돌아 에너지 수급에 심각한 차질이 예상된다.

한국해운협회에서는 최근 긴급 간담회에서 "해협 봉쇄로 국적 선박 26척과 선원 600여 명이 현지에 묶여 있다"며 "전쟁보험료는 1100% 폭등하고, 저유황유 가격은 227% 치솟아 선사들의 재무 부담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밝혔다. 하루 손실액만 143만 달러(약 21억 4900만 원)에 달한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걸프 산유국의 반격 — 방치된 인프라가 깨어난다

위기는 동시에 재편의 방아쇠를 당겼다. 바드르 자파르 특사는 "지금 세계의 시선은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가에 쏠려 있지만,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는가에 같은 무게의 눈길을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체 루트들은 이미 가동 단계로 진입했다. UAE는 아부다비 유전에서 오만만 쪽 푸자이라(Fujairah)항으로 이어지는 육상 송유관을 해협 우회 통로로 활용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동부 유전에서 홍해 제다항으로 이어지는 동-서 송유관(ESTP)을 통해 홍해 출하량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오만의 두쿰(Duqm)·소하르(Sohar) 항만은 해협 밖에 위치한 전략 거점으로 급부상했다.

다만 사우디 페트로라인의 처리 용량은 하루 200만~250만 배럴로, 호르무즈 해협 일일 물동량인 약 2000만 배럴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최대한 끌어올려도 전체 물량의 4분의 1 처리가 한계라는 분석이 나온다.

카타르·쿠웨이트·이라크는 이 파이프라인이나 여타 송유관과 연결조차 돼 있지 않아 사실상 수출 통로가 완전히 막힌 상태다.

자파르 특사는 이전 위기 때 건설됐다가 수십 년간 방치된 송유관, 도로·철도 회랑, 국가 간 전력망·수자원 시스템도 재가동 검토 대상에 올랐다고 밝혔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형태의 국경 간 육상 운송 노선이 실제로 가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루트 이론상 가능, 현실 가동은 불확실" — 한국의 냉정한 셈법


걸프 산유국들의 인프라 재편이 가속화된다 해도, 한국이 즉각적인 수혜를 누릴 수 있을지는 별개 문제다.

한국무역협회는 오만 살랄라·두쿰 항만을 경유한 우회 경로 활용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진단하면서도, 이란의 미사일 공격이 인접국 내 미군 기지를 겨냥하는 전면전 확산 국면에서는 육로와 영공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며 실질적 가동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 브렌다 섀퍼 선임 연구원은 "이란이 해협을 차단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수년간 유가에 위험 프리미엄으로 반영돼 왔다"며 "이번 사태는 예상치 못한 충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을 포함한 주요 원유 수입국들이 중동산 의존도를 더욱 낮추고 공급원을 다각화하는 흐름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은 과거 90%를 웃돌던 중동산 원유 비중을 현재 70% 수준으로 낮추는 과정에서 미국산 원유로 일부 대체해왔는데, 이것이 이번 위기에서 일정한 완충재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위기가 종전으로 마무리되든 확전으로 치닫든, 자파르 특사의 진단은 하나로 수렴된다. "어떤 정부도 예측 불가능한 이웃이 통제하는 좁은 해협에 전략적으로 의존하는 태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걸프 산유국들이 지금 깔고 있는 파이프라인과 항만 인프라는, 한반도가 에너지를 어디서 어떻게 공급받을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