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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카 "유럽 AI 낙후됐다" 로봇 투자 미국·아시아로 급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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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카 "유럽 AI 낙후됐다" 로봇 투자 미국·아시아로 급선회

쉘 CEO "독일 등 유럽 기업 파괴적 혁신 거부해 경쟁력 상실"
2023년 중국 로봇 도입량 독일의 10배 압도… 산업 패권 이동
전통 제조사에서 'AI 중심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사업 구조 전면 재편
독일 쿠카(KUKA SE & Co)가 자본과 기술 투자의 무게중심을 미국과 아시아로 옮기겠다는 파격적인 전략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독일 쿠카(KUKA SE & Co)가 자본과 기술 투자의 무게중심을 미국과 아시아로 옮기겠다는 파격적인 전략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세계 4대 산업용 로봇 제조사인 독일 쿠카(KUKA SE & Co)가 유럽 제조업의 인공지능(AI) 도입 지연을 경고하며 자본과 기술 투자의 무게중심을 미국과 아시아로 옮기겠다는 파격적인 전략을 발표했다. 독일의 전통적 엔지니어링 사고방식이 오히려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냉정한 진단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8일(현지시각) 크리스토프 쉘(Christoph Schell) 쿠카 최고경영자(CEO)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럽 산업계가 AI 전환에 실패할 경우 글로벌 경쟁사들에 시장을 완전히 내줄 위험이 크다"고 보도했다.

쉘 CEO는 유럽 기업들이 과거의 성공 방식인 '레거시 시스템'과 보수적인 문화에 안주하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독일 로봇 설치량 중국의 10% 불과… "데이터가 끊긴 공장들"


쉘 CEO는 인터뷰에서 특히 독일의 자동차 및 제조기업들의 안일함을 꼬집었다. 그는 "많은 기업이 현재의 위기를 일시적인 것으로 보지만, 경쟁국 제품은 이제 가격이 쌀 뿐만 아니라 성능 면에서도 유럽을 앞질렀다"고 진단했다.

국제로봇연맹(IFR)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산업용 로봇 설치량은 독일보다 10배나 많았다. 중국이 인프라와 기술 수용력을 바탕으로 '로봇 굴기'를 가속화하는 동안, 유럽 공장들은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단절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이다.

쉘 CEO는 이를 "유럽의 엔지니어링 사고방식이 '점진적 개선'에만 머물러 '파괴적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아시아로 향하는 자본… "유럽은 출혈 경쟁 중"


쿠카는 앞으로 미국과 아시아 시장에 투자를 집중할 계획이다. 미국은 수입 관세 정책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영향으로 자국 내 제조업 설비 투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아시아는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기술 도입이 가장 활발하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 시장은 경기 침체와 고에너지·고임금 비용 탓에 기업들이 수익성을 깎아먹으며 버티는 '데스매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쉘 CEO는 "미국과 아시아 기업들은 스스로를 파괴할 만큼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지만, 유럽은 줄어든 기회를 놓고 누가 더 절망적인지를 겨루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하드웨어 제조 넘어 'AI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대변신


2016년 중국 메이디(Midea) 그룹에 인수된 쿠카는 연 매출 39억 유로(약 6조 7400억 원) 규모의 글로벌 강자다. 쿠카는 최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AI가 융합된 새로운 제조 플랫폼을 출시하며 'AI 정의 제조(AI-defined manufacturing)' 시대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단순히 로봇 팔을 만드는 것을 넘어 공정 전체를 AI가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쿠카의 이번 행보가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제조업 전반에 경종을 울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국 로봇 산업에 던지는 'AI 전환'의 숙제


쿠카의 이번 결정은 로봇 밀도 세계 1위를 다투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로봇 업계 한 관계자는 "쿠카의 비판은 단순히 유럽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기존 하드웨어 공정 효율화에만 집착하는 모든 제조국에 던지는 경고"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로봇 시장의 패권은 '얼마나 많은 로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똑똑한 AI 소프트웨어로 공정을 지배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 역시 단순 로봇 보급을 넘어 AI와 결합된 '피지컬 AI'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유럽과 같은 성장의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쿠카가 독일 본토를 넘어 미국과 아시아로 눈을 돌린 것은, 혁신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시장은 기술 선도 기업에게조차 외면받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