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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란 항구 봉쇄 전격 단행…유가는 협상 기대에 숨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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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란 항구 봉쇄 전격 단행…유가는 협상 기대에 숨 고르기

봉쇄 시행 첫날, 중국 유조선 단독 돌파·나토 불참…실효성 논란 즉각 점화
트럼프 "이란이 먼저 접촉"…21시간 담판 결렬 뒤에도 협상 불씨 살아있어
장기화 시 유가 배럴당 140달러 전망…한국 원유 수입 95% 통과 해협, 석화·반도체·항공 동시 충격
미 해군 함정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미 해군 함정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이 14일(현지시각) 이란 항구에 대한 해상 봉쇄를 전격 발동했다.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놓고 미국과 이란이 정면 대치한 가운데, 일주일 남은 휴전 기한과 맞물려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봉쇄 첫날, 균열부터 드러났다


로이터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부사령부는 이날 항해 통보문을 통해 "봉쇄가 모든 국가 선박에 차별 없이 적용된다"면서 "이란의 페르시아만·오만만 항구를 드나드는 선박이 대상"이라고 밝혔다. 제3국을 오가는 선박의 무해통항권은 보장한다고 덧붙였다.

선언이 나온 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봉쇄의 허점이 노출됐다. 금융정보업체 엘에스이지(LSEG) 선박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 소유 유조선 '리치 스타리(Rich Starry)'호가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 정박지를 출발해 해협을 통과했다.

봉쇄 시행 이후 최초의 통과 사례다. 이 선박은 진입을 시도하다 잠시 회항했으나 이내 중국행 항로를 재개했다. 중국이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국이라는 점에서 이 장면은 단순한 선박 한 척의 움직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국·프랑스를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도 봉쇄 참여를 거부했다. 동맹국들은 해협 재개방 필요성을 강조하며 선을 그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군함의 해협 접근 자체를 휴전 위반으로 규정하고, 군 대변인은 미국의 봉쇄를 "해적 행위"로 규정하며 이란 항구가 위협 받을 경우 페르시아만·오만만의 어떤 항구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해군이 전쟁 중 "완전히 궤멸됐다"며 고속함정 접근 시 즉각 제거하겠다고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동시에 이란이 전날 협상 의사를 전달해왔다고 밝히면서 "핵무기 보유를 허용하는 합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제이디 밴스 부통령도 지난 11~12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회담에서 "이란이 우리 방향으로 움직였으나 충분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파키스탄 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중재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경제, 유가 오름세보다 무서운 '3중 충격'

봉쇄가 에너지를 넘어 공급망 전반을 옥죄는 구조는 한국 경제를 위협한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7%, 액화천연가스(LNG)의 20.4%가 중동산이며, 수입 원유의 95%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에너지 안보 취약도가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나라로 꼽히는 이유다.

석유화학 업계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아시아 해상 납사 수입의 60% 이상이 중동에 의존하는데, 동북아 납사 현물 가격은 지난달 19일 기준 1톤당 1351달러로 월 초 696달러 대비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실적 부진에 빠져 있는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원재료 가격 급등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반도체 업계도 안심할 수 없다. 카타르의 헬륨 공급이 봉쇄로 차단될 경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의 반도체 생산 라인 냉각 공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헬륨은 대체재가 마땅치 않은 핵심 공정 소재다.

항공업계도 이미 충격파를 실감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유가 영업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고정비 중 달러 지출이 약 30%에 달해 사태 장기화 시 재무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두바이 노선을 일시 중단했다.

증권가는 "호르무즈해협의 실질적 봉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면서 "원유·가스는 물론 석유 제품·비료 가격이 단기간 급등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진단했다.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시나리오는 더 가혹하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통행 중단이 장기화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약 20만 860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라이언 스위트 경제학자는 "유가가 이 수준에 달하면 금융시장 조건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경제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한다"고 지적했다.

우회 항로 여력도 제한돼 있다.사우디아라비아·UAE 파이프라인이 하루 약 350만 배럴을 소화할 수 있지만 이는 완전 봉쇄 시 해협 통과 물동량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우회 시 수송 비용은 50~80% 뛴다.

휴전 D-7, 협상이 유일한 출구


레바논 전선도 동시에 달아오르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로부터 레바논 남부 주요 거점을 빼앗기 위한 공세를 재개했고, 병사 1명이 전사·예비군 3명이 다쳤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헤즈볼라 작전이 휴전 범위 밖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란은 정면 반박한다.

6주간의 포격이 멈춘 휴전 기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이번 위기로 아시아 신흥국 경제 성장률이 1%포인트 이상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동의 협상 테이블이 다시 열리느냐 여부가 올 하반기 한국 경기를 좌우할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