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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봉쇄, 중국·인도 직격…한국 원유 95% 차단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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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봉쇄, 중국·인도 직격…한국 원유 95% 차단 위기

미·중 정상회담 앞 베이징 강경 선회…"위험·무책임" 맞대응
인도 LPG 재고 2~3주치 한계…중국은 120일 버텨도 한국은 사각지대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란 압박을 넘어 중국·인도와의 외교·경제 관계를 동시에 뒤흔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란 압박을 넘어 중국·인도와의 외교·경제 관계를 동시에 뒤흔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입 원유 95%를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는 한국에 경보등이 켜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역봉쇄 선언 하루 만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역사상 최악의 에너지 공급 차질"이라고 규정했고, 미국·중국·인도 3대 강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이 해협의 긴장이 한국 경제를 향한 복합 충격으로 전이되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14일(현지시각)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란 압박을 넘어 아시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인도와의 외교·경제 관계를 동시에 뒤흔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중부사령부는 13일(현지시각) 오전 10시부터 이란 항구를 출입하는 모든 선박에 대한 봉쇄 조치를 발동했다.

트럼프·시진핑 회담 앞 미·중 마찰…"선박 나포 시 관계 근본 변화"
이번 봉쇄의 핵심 변수는 중국이다. 해양 정보 분석 업체 윈드워드(Windward)에 따르면, 14일 현재 해상에 떠 있는 이란산 원유 약 1억 5770만 배럴의 98%가량이 중국행이다. 이란 원유 수출의 사실상 전량을 중국이 받아가는 구조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5월 중순 중국 방문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이번 봉쇄는 정상회담 일정을 흔들 뇌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소장이자 전직 미국 무역 협상가인 웬디 커틀러(Wendy Cutler)는 14일 "이란 갈등, 특히 봉쇄 조치가 미·중 관계 안정화 노력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은 강경 대응으로 방향을 틀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궈자쿤(郭嘉昆)은 14일 미국의 봉쇄 조치를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규정하며 "긴장을 더욱 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이란 무기 공급 시 50% 추가 관세를 위협하자, 궈 대변인은 "이를 빌미로 한 관세 부과에는 단호히 맞대응 하겠다"고 못 박았다.
유라시아그룹(Eurasia Group) 중국 담당 수장 데이비드 밀(David Meale)은 "미국이 중국 선박을 나포한다면 심각한 사건으로 비화할 것"이라며 "양국 관계가 지금과 근본적으로 다른 국면으로 바뀌게 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14일 미국 제재 대상에 오른 중국 연계 유조선 한 척이 봉쇄 발효 직후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와 오만만으로 진입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인도·중국 에너지 내성 비교…한국은 어디에 서 있나


중국과 인도는 같은 봉쇄를 맞고 있지만 버티는 체력이 다르다. 유라시아그룹 중국 담당 이사 댄 왕(Dan Wang)은 "중국의 전략·상업용 비축유와 운송 중인 물량을 합산하면 120일치 이상 순수입을 감당할 수 있다"며 "수입처를 다각화하고 석탄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의 사정은 다르다.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 선임 이코노미스트 수메다 다스굽타(Sumedha Dasgupta)는 "인도의 석유 순수입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3.5%에 달하고 비축량은 60일치에 불과해 추가 공급 차질 시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LPG 재고는 수입이 막히면 2~3주 수요도 못 버티는 수준이며, 수요의 66%를 중동 수입에 기댄다.

컨설팅 업체 테네오(Teneo)의 아르핏 차투르베디(Arpit Chaturvedi)는 "뉴델리가 워싱턴과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끌고 갈 유인이 없다"며 인도가 러시아·미국·호주로 수입처를 돌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에 서 있나.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7%와 LNG의 20.4%가 중동에서 오고, 수입 원유의 95%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구조다.

중국의 120일 비축 여력과 비교하면 현격히 취약한 처지다. 관세청이 발표한 4월 1~10일 수출입 현황에서 원유 수입액은 28억 4200만 달러(약 4조 1880억 원)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8.7% 늘었으며, 에너지 전반 수입액도 13.1% 올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해협 안에 발이 묶인 유조선 7척은 국내 항구 도착까지 최소 22~23일이 걸린다. 카타르산 헬륨 공급망이 차단될 경우 국내 반도체 생산 라인의 냉각 공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증권업계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봉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원유와 가스는 물론 석유 제품·비료 가격이 단기간 급등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카자흐스탄 원유 확보 속도…"대체 경로도 쉽지 않다"


정부도 공급처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 "카자흐스탄 원유 도입 논의에 진전이 있어 다음 주 초에는 구체적인 물량이나 내용을 발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미국산 원유 확대도 검토 중이다.

다만 대체 경로가 만능열쇠는 아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우회 항로를 이용할 경우 해상운임이 기존보다 최대 50~80% 뛰고, 통관 절차 기간도 최대 5일 늘어날 수 있다. 과거 이 지역 분쟁 당시 보험료가 최대 7배까지 할증된 사례도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고유가 장기화로 미국 경제의 성장률 하방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자동차·철강·화학 등 수출 주력 산업의 해외 수요 위축 가능성도 함께 언급했다.

IEA 사무총장 파티 비롤은 13일 IMF·세계은행 춘계 회의에서 "3월까지는 제한적으로나마 화물이 운송됐으나 4월 들어서는 사실상 중단 상태"라며 "어떤 나라도 이 파장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수입과 수출 모두 중동 에너지에 연결된 한국 산업 구조 특성상, 이번 봉쇄의 충격은 단순 유가 상승을 넘어 반도체·정유·수출 물류 전반을 관통하는 복합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카자흐스탄발 원유 확보와 미국산 도입 확대가 얼마나 빠르게 현실화되느냐가 향후 수 주간 한국 경제의 급소가 될 전망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