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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200억 달러 핵담판…트럼프 "돈 안준다" 공약 뒤집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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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200억 달러 핵담판…트럼프 "돈 안준다" 공약 뒤집나

농축우라늄 2t 맞교환 조건, 20일 파키스탄서 2차협상
오바마 핵합의 재연 우려…공화당 "최악 거래" 비판 고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200억 달러(약 29조 3560억 원) 규모의 동결자산 해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200억 달러(약 29조 3560억 원) 규모의 동결자산 해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 완화를 기대했던 국제사회에 예상 밖 변수가 등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를 "역사상 최악의 거래"라며 맹비난하고 "단 한 푼도 안 준다"던 공약을 사실상 번복, 이란과 200억 달러(약 29조 3560억 원) 규모의 동결자산 해제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17일(현지시각) 확인됐다.

액시오스는 17일(현지시각) 미국 측 협상 당사자 2명과 중재국 소식통 2명을 인용해 양국이 3쪽짜리 양해각서(MOU)를 놓고 막판 조율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핵심 구조는 명확하다. 이란이 지하 핵시설에 비축한 농축우라늄 2000kg, 특히 핵무기 제조에 직접 전용 가능한 농축도 60% 우라늄 450kg을 미국에 넘기면,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묶어뒀던 이란 자산 200억 달러의 자물쇠를 푼다는 내용이다.
양측은 오는 20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2차 회담을 열어 최종 합의문 도출을 시도한다. 협상이 타결될 경우 중동 정세는 물론 국제 에너지 시장과 글로벌 안보 구도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60억→270억 달러 공방 끝 200억 선 타협


트럼프 행정부가 처음 테이블에 올린 금액은 60억 달러(약 8조 8068억 원)였다. 용도도 식품과 의약품 같은 인도적 물자 구매로 엄격히 제한했다. 하지만 이란은 즉각 270억 달러(약 39조 6306억 원)를 역제안하며 맞받아쳤다. 수차례 줄다리기 끝에 양측이 조율한 타협점이 200억 달러 수준이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200억 달러는 우리 측이 먼저 제시한 숫자"라고 인정했다. 다만 또 다른 당국자는 "현금과 우라늄 맞교환 구상은 여러 협상안 중 하나일 뿐"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보도가 나간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돈은 한 푼도 오가지 않을 것"이라고 썼지만, 동결자산 해제 문제는 직접 언급하지 않아 해석 논란을 키웠다.

공화당 내부에선 벌써 반발 조짐이 감지된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당시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JCPOA) 체결 대가로 수백억 달러를 풀어준 것을 "미국 역사상 최악의 거래"라고 맹공했다.

2018년 집권 후에는 곧바로 합의를 파기하고 제재를 되살렸다. 그런 트럼프가 이번엔 오바마보다 더 많은 돈을 쥐여주는 형국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핵무기 18발 분량 우라늄 처리가 핵심 변수


돈보다 더 첨예한 쟁점은 농축우라늄 처리 방식이다. 미국은 이란이 보유한 모든 핵물질을 미국 본토로 이송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이란은 자국 내에서 농축도를 낮추는 '다운블렌딩' 방식만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검토 중인 절충안은 고농축 우라늄 일부는 미국이 아닌 제3국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아래 이란 국내에서 농축도를 희석하는 방안이다. 어느 나라가 제3국 역할을 맡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농축도 60% 우라늄 450kg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다. 핵무기 1발 제조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은 통상 25kg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450kg이면 이론상 핵탄두 18발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미국 정보당국은 이란이 결심만 하면 수개월 내 핵무기 제조에 돌입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제 핵 전문가들은 이란의 농축우라늄 비축량이 2015년 핵합의 당시보다 오히려 대폭 늘어난 점에 주목한다. 당시 이란은 300kg 이하로 비축량을 제한하고 농축도도 3.67% 이하로 묶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2018년 합의를 파기한 뒤 이란은 보복 차원에서 농축 활동을 대폭 확대했고, 결과적으로 핵무기 제조 능력은 합의 이전보다 훨씬 강화됐다.

핵농축 중단 기간 5년 vs 20년…여전히 15년 격차


양측이 협의 중인 양해각서에는 이란의 '자발적' 핵농축 유예 조항도 담긴다. 미국은 지난 1차 회담에서 20년 유예를 제시했으나, 이란은 5년을 역제안했다. 파키스탄과 이집트, 터키 등 중재국들이 간극을 좁히려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15년이나 벌어져 있다.

각서 초안에 따르면 이란은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을 위한 연구용 원자로는 유지할 수 있다. 대신 모든 핵시설을 지상에 배치하고, 기존 지하시설은 가동을 멈춰야 한다.

중동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 완화 방안도 각서에 포함됐으나, 이 부분에선 여전히 상당한 이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과 하마스·헤즈볼라 같은 역내 무장단체 지원 문제가 각서에 들어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워싱턴의 공화당 매파들은 그동안 이란과의 어떤 협상에서도 이 사안들을 반드시 다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핵도 갖고 테러자금도 대려는 이란"


미국 정부 당국자는 "이란이 움직이긴 했으나 충분하지 않다"며 "이란을 더 움직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란은 분명히 200억 달러를 원한다. 사실 훨씬 더 많은 액수를 바란다.

제재 없이 석유를 국제 시장가로 팔고 싶어한다. 글로벌 금융망에도 복귀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이란이 동시에 핵무기 개발 계획은 유지하려 든다는 점"이라며 "하마스 같은 테러조직에 돈도 계속 대주고 싶어한다. 우리가 내놓는 혜택을 받으려면 그런 것들을 확실히 포기해야 하는데, 아직 그럴 의지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백악관 대변인 애나 켈리는 협상이 "생산적"이었다고만 밝혔다. 그는 "언론을 통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민감한 외교 논의 내용을 안다고 주장하는 익명 소식통들은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고 선을 그었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당·사우스캐롤라이나)은 폭스뉴스에 나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측과 직접 전화 통화를 했으며, 최근 대화에서 분위기가 "격렬해졌다(sporty)"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기자들에게 이란이 협상 과정에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겠다는 매우 강력한 약속"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란이 미국에 농축우라늄 비축량을 넘기기로 합의했다며 이를 "핵먼지(nuclear dust)"라고 비유했다. "우리는 합의에 매우 가깝다. 합의가 안 되면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고 그는 경고했다. 오는 21일 끝나는 휴전은 필요하면 연장할 수 있다고도 했다.

사우디 가세로 중동 4자 협의체 가동


18일 파키스탄과 이집트, 터키의 중재국 관계자들은 터키에서 열리는 외교 포럼 계기에 사우디아라비아 관계자들과 4자 회담을 연다. 이 회의에서 미국-이란 중재 방안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사우디의 합류는 주목할 대목이다. 사우디는 이란과 오랜 숙적 관계지만, 2023년 3월 중국 중재로 전격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바 있다. 중동 최대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가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을 돕는다면, 역내 세력균형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에너지 시장 전문가들은 이란 제재 해제가 국제 유가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란은 세계 4위 원유 매장국으로 하루 생산능력이 400만 배럴에 달한다.

현재는 미국 제재 탓에 하루 200만 배럴 수준에 그치지만, 제재가 풀리면 즉각 증산에 나설 수 있다. 이는 사우디와 러시아 중심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정책에 정면 배치되며, 국제 유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란산 원유는 중질유 비중이 높아 한국 정유사들의 정제 설비와 궁합이 잘 맞는다. 제재 이전인 2017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이란에서 연간 1500만 배럴 이상을 수입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재 해제 시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정제 마진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트럼프의 이번 협상이 성사될 경우 중동 정세에 미칠 영향을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일각에선 "핵 위협을 제거하고 전쟁을 막는다면 충분히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오바마 합의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만만찮다.

2015년 핵합의 당시에도 이란은 농축 활동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제재 해제를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2018년 합의를 파기하고 제재를 되살리자, 이란은 곧바로 농축 활동을 재개했고 농축도를 오히려 합의 이전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결국 "돈만 주고 시간만 벌어준 꼴"이 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번에도 이란이 자금을 확보한 뒤 다시 핵 개발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20년이 아닌 5년 유예에 합의할 경우, 불과 몇 년 뒤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