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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봉쇄發 에너지 쇼크…유럽 스태그플레이션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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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봉쇄發 에너지 쇼크…유럽 스태그플레이션 덮쳤다

ECB·잉글랜드은행 나란히 금리 동결…브렌트유 126달러 치솟자 여름 인상 채비
물가 3%·성장 0.9% 엇박자…최악 시나리오서 내년 초 英 물가 6.2% 경고도
런던의 도로.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런던의 도로. 사진=연합뉴스.


중동 전쟁이 유럽 경제 회복의 불씨를 꺼뜨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유로존을 사실상 정체 상태로 몰아넣은 가운데,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엄습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유럽 통화당국을 옥죄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유로존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1%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유로존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1%에 그쳤다. 시장 예상치(0.2%)의 절반 수준으로 사실상 성장이 멈춘 것이나 다름없다. 유럽연합(EU) 통계청 유로스타트(Eurostat)가 같은 날 발표한 이 성장률은 연초 번진 유럽 경기 낙관론이 중동 전쟁 앞에서 얼마나 빠르게 무너졌는지를 보여준다.

에너지 물가 11% 폭등…회복 기대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로


올해 초까지만 해도 유럽 경제의 전망은 밝아 보였다. 유럽중앙은행(ECB)의 2% 물가 목표가 달성됐고, 소비 심리도 회복세를 보였으며, 독일의 국방·인프라 부양책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올해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합동 공습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전 세계 일일 원유 공급량의 약 20%와 상당량의 액화천연가스(LNG)가 통과하는 이 해협이 막히자 브렌트유는 초기 거래에서 10~13% 급등했으며, 공급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 수 있다는 우려가 퍼졌다.

5월 1일 현재 브렌트유는 배럴당 126달러(약 18만 6102원),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는 106달러(약 15만 6562원)까지 치솟아 미·이란 협상 결렬 소식과 맞물려 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로스타트는 유로존의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잠정치)이 전년 대비 3.0%로 올랐다고 밝혔다. 전달인 3월의 2.6%보다 0.4%포인트 높아졌으며, 전문가 예상치 2.9%도 웃돌았다. 이는 2023년 9월 4.3%를 기록한 이후 2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로존 에너지 물가는 4월 한 해 전보다 11% 뛰었다.

프랑스는 1분기 성장이 완전히 멈췄고, 아일랜드는 미국 기술·제약 기업의 유럽 거점 특성상 변동성이 작용하며 역성장을 기록했다.

독일은 소폭 반등했으나, 경제 전문가들은 에너지 비용 상승이 제조업 중심의 독일 경제를 짓누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LNG 물류 차질로 유럽 에너지 시장이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 유럽 국가들이 여전히 천연가스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취약성이 다시 드러났다.

ECB·잉글랜드은행 동결했지만 여름 인상 초읽기


ECB는 지난 30일(현지시각)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예금금리 연 2.00%, 기준금리 2.15%, 한계대출금리 2.40%를 모두 유지하기로 했다. 같은 날 잉글랜드은행도 기준금리를 연 3.75%로 묶었으며, 통화정책위원 9명 가운데 8명이 동결을 지지했다.

두 중앙은행 모두 에너지 가격 충격이 더 광범위한 물가 상승으로 번질 경우 올여름 금리를 올릴 채비를 갖추고 있다.

ECB는 성명에서 "전쟁이 길어지고 에너지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수록 물가와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우리는 분명 기존 시나리오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에너지 가격 향방이 핵심 변수라고 강조했다.

잉글랜드은행은 에너지 가격 충격의 강도에 따라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최악의 경우 물가 상승률이 내년 초 6.2%까지 오를 수 있으며 이 경우 강력한 통화 긴축이 필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CB는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을 0.9%로 낮춰 잡았으며, 호르무즈 봉쇄가 연말까지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0.4%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시장에서는 ECB가 높아지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올해 세 차례에 걸쳐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인상해 2.75%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첫 번째 인상은 오는 6월 회의에서 단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 쟁점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임금 협상에 불을 붙여 이른바 '임금-물가 악순환'을 초래할지 여부다.

잉글랜드은행은 "가격과 임금 설정에서 심각한 2차 효과가 나타날 위험이 있으며, 통화정책이 이를 억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다만 ECB가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는 기업들이 향후 임금 인상 속도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해, 당장의 임금-물가 악순환 우려는 다소 가라앉았다.

스위스계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호르무즈 운송 차질이 두 달 더 지속될 경우 세계 경제가 2028년 말에야 이전 성장 궤도를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으며,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세계 성장률이 기존 전망보다 1%포인트 낮아지고 미국도 얕은 경기 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BNP파리바의 폴 홀링스워스 이코노미스트는 "시스템 안으로 충분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유입됐고, 중앙은행들이 충격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졌다"며 "앞으로 몇 분기에 걸쳐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