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美 초저가 항공 몰락, ‘비싼 항공권’ 부른다… 한국 LCC업계엔 ‘옥석 가리기’ 경고등

글로벌이코노믹

美 초저가 항공 몰락, ‘비싼 항공권’ 부른다… 한국 LCC업계엔 ‘옥석 가리기’ 경고등

스피릿항공 파산, 고유가·인력난에 ‘박리다매’ 한계… 항공료 36% 폭등, 시장 독과점 심화
투자자, 수익성 검증된 ‘블루칩’ 대형사 주목… 한국 시장도 ‘경쟁 심화·구조 개편’ 파고 직면
미국 ‘초저가 항공(ULCC)’의 상징이자 하늘길의 문턱을 낮췄던 스피릿항공(Spirit Airlines)이 결국 무너졌다. 저렴한 운임을 무기로 내세웠던 시대가 저물고, 항공 시장은 수익성이 검증된 대형 항공사(FSC)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초저가 항공(ULCC)’의 상징이자 하늘길의 문턱을 낮췄던 스피릿항공(Spirit Airlines)이 결국 무너졌다. 저렴한 운임을 무기로 내세웠던 시대가 저물고, 항공 시장은 수익성이 검증된 대형 항공사(FSC)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미국 초저가 항공(ULCC)’의 상징이자 하늘길의 문턱을 낮췄던 스피릿항공(Spirit Airlines)이 결국 무너졌다. 저렴한 운임을 무기로 내세웠던 시대가 저물고, 항공 시장은 수익성이 검증된 대형 항공사(FSC)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소비자에게는 비싼 항공권이라는 고지서가, 투자자에게는 우량주 집중이라는 새로운 투자 전략이 날아든 셈이다.

배런스(Barron's)는 지난 8(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스피릿항공의 몰락이 가져올 항공 산업의 지각변동을 집중 분석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단순히 한 기업의 파산이 아니라, 고유가와 인력난이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저가 공세모델이 생존 불가능한 지점에 도달했다는 데 있다.

기름값·인건비에 발목 잡힌 초저가 모델의 한계


스피릿항공을 무너뜨린 결정타는 가파르게 치솟은 비용이다. 올해 제트유 가격은 휘발유 상승 폭을 앞지르며 두 배 이상 폭등했다. 통상 항공사 예산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연료비 부담이 한계치를 넘어선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조종사 부족 사태로 인한 인건비 상승, 엔진 결함에 따른 무더기 운항 중단이 겹치며 자금줄이 말랐다.
여행 데이터 업체 카약(Kayak)에 따르면, 올해 미국 국내선 항공료는 이미 전년 대비 36%나 급등했다. 스피릿항공의 빈자리를 프런티어항공과 제트블루가 메우려 시도 중이지만, 이들 역시 2020년 이후 지속된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생존을 위해 이들이 저가타이틀을 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런티어는 우등 고속 좌석인 퍼스트 시트를 도입했고, 제트블루는 침대형 좌석인 민트서비스를 강화하며 대형 항공사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이는 더 이상 운임만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시장의 냉혹한 결론을 보여준다.

델타·유나이티드, ‘항공업계의 삼성전자로 등극


시장의 혼란 속에서 웃는 쪽은 역설적으로 덩치를 키운 대형사들이다. 델타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은 이제 월가에서 블루칩 항공주로 불린다. 이들의 강력한 무기는 세 가지다. ▲유료 프리미엄 좌석 확대 ▲국제선 노선 장악 ▲신용카드 제휴 및 멤버십을 통한 고마진 비항업 수익이다.

특히 델타와 유나이티드는 올해 각각 약 20억 달러(29200억 원) 규모의 잉여현금흐름(FCF)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유가 국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수익 구조를 증명한 셈이다. 주가수익비율(PER) 측면에서도 델타(13.6)와 유나이티드(10.9)는 향후 3년 내 주당순이익(EPS)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매력적인 구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세이포트 글로벌 파트너스의 다니엘 맥켄지 애널리스트는 초저가 항공사의 공급 축소는 국내선 가격 환경을 더 합리적으로 만들 것이라며 이는 풀서비스 항공사(FSC)의 수익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호재라고 분석했다.

한국 항공 시장, ‘옥석 가리기통합과제 직면


스피릿항공의 파산은 저가 공세 중심의 무리한 외형 성장이 고유가·고금리 시대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한국 LCC 업계에도 강력한 경고등이다. 현재 한국 시장은 코로나19 이후 보복 여행 수요로 일시적 호실적을 기록 중이나, 9개에 달하는 LCC 간의 과당 경쟁과 공급 과잉 구조는 여전하다.

미국 사례처럼 비용 상승 압박을 견디지 못한 부실 LCC의 자연스러운 퇴출이나,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인수와 같은 빅딜을 통한 구조재편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향후 항공 시장은 단순 가격 경쟁력을 넘어, 운임 인상을 정당화할 수 있는 서비스 차별화와 안정적 현금 창출 능력을 확보한 업체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재편 과정은 생존한 LCC들에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경쟁 완화에 따른 수익성 개선과 더불어, 대형 항공사가 포착하기 힘든 틈새 노선 개발 및 유연한 운임 체계 운용을 통해 견고한 성장 기반을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과점 심화와 소비자 부담, 투자자가 챙겨야 할 체크리스트


스피릿항공의 퇴장은 미국 항공 시장의 독과점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전망이다. 알래스카항공이 하와이안항공을 인수하며 5대 강자로 부상했고, 아메리칸항공은 부채 부담 속에서도 대형 항공기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줄어들고 가격 협상력을 잃게 되는 항공권 인플레이션시대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들이 향후 항공 시장의 향방을 가늠하기 위해 주시해야 할 지표는 세 가지다.

첫째, 국제 유가(브렌트유) 추이다. 배럴당 120달러(175700) 선이 유지될 경우, 생존한 중소형 항공사들마저 추가 파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둘째, 프리미엄 좌석 점유율이다. 단순 탑승객 수보다 돈 되는 좌석을 얼마나 채우느냐가 분기 실적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셋째, 지정학적 리스크다. 이란 사태 등 중동 분쟁 해결 여부는 유가 안정과 직결되는 항공업계의 최대 변수다.

항공업계는 이제 누가 더 싸게 태우느냐의 경쟁에서 누가 더 품격 있게 수익을 내느냐의 전쟁으로 전환하고 있다. 하늘길의 가성비 시대가 저무는 지금, 투자자들은 부실한 저가주보다 현금 창출력이 검증된 우량 대형사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