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수입 EV에 가격·성능 하한선 도입… 저가 공세 차단
보호무역 강화로 현지 생산(CKD) 유도 및 자국 자동차 생태계 육성 가속화
보호무역 강화로 현지 생산(CKD) 유도 및 자국 자동차 생태계 육성 가속화
이미지 확대보기말레이시아 정부가 오는 7월 1일부터 수입 전기자동차(EV)에 대한 엄격한 새로운 규제를 시행하면서,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추지 못한 외국계 완성차 기업들이 시장에서 도태될 위기에 처했다.
11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투자통상산업부(MITI) 발표와 베르나마 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수입 허가(AP) 시스템을 통해 들여오는 모든 완제품(CBU) 전기차에 대해 최소 수입 가격(CIF) 200,000링깃(약 7520만 원)과 모터 출력 180킬로와트(kW) 또는 245마력(PS) 이상의 사양을 갖추도록 강제했다.
이번 조치는 그간 중국산 저가 전기차에 개방적이었던 말레이시아 시장이 현지 생산 위주의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말레이시아 증권사인 BIMB 시큐리티스는 최근 분석 보고서에서 이번 신규 규제가 말레이시아 전기차 시장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핵심은 세금과 유통 마진이 붙기 전 단계인 수입 원가(CIF)를 기준으로 가격 하한선을 설정했다는 점이다.
BIMB 시큐리티스 측은 "CIF 200,000링깃이라는 기준은 각종 세금과 딜러 마진 등을 포함할 경우 실제 소비자가 구매하는 도로 주행 가격(OTR)을 약 300,000~360,000링깃(약 1억 1280만~1억 3530만 원)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사실상 1억 원 이하의 보급형 또는 매스 프리미엄급 수입 전기차의 판매를 원천 차단하는 조치다. 앞으로 말레이시아 시장에서 수입이 허용되는 전기차는 ▲BYD 실리온(Sealion) 7 ▲덴자(Denza) D9 AWD ▲BMW iX xDrive50 등 고가의 고성능 모델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현재 시장 성장을 주도하는 150,000~250,000링깃(약 5640만~9400만 원) 사이의 인기 모델들은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는 한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중국산 저가 공세 차단… 현지 생산(CKD) 전환 압박
말레이시아 정부의 이러한 행보는 3단계로 구성된 전기차 로드맵의 정점에 해당한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시행된 1단계에서는 수입 전기차에 대한 전면적인 세금 면제로 시장 인지도를 높였고, 2단계에서는 현지 부품 조달을 장려했다.
BIMB 시큐리티스는 "정부가 2026년부터 시작되는 3단계를 통해 훨씬 공격적인 태세로 전환했다"라며 "특히 중국 브랜드들이 무관세 혜택에 의존해 수입 판매에만 열을 올리던 관행을 멈추고 강제로 현지 공장을 세우게 만드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번 규제의 수혜는 이미 현지 생산(CKD) 설비를 갖추었거나 국산화율이 높은 기업에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최대 자동차 그룹인 DRB-하이콤(DRB-HICOM)과 같은 현지 기반 기업들은 상대적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보이나, 단순 수입 판매에 의존하던 딜러사들은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BIMB 시큐리티스는 이와 관련해 현지 판매사인 베르마즈 오토(Bermaz Auto)에 대해 '매도' 의견을 제시하며 신중한 접근을 권고했다.
인프라 투자 위축 및 소비자 선택권 제한 우려
정부의 강경한 보호책이 시장 전체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갑작스러운 가격 상승이 전기차 보급 속도를 늦추고, 결국 충전 인프라 생태계 전반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BIMB 시큐리티스는 "전기차 가격 상승으로 수요가 둔화하면 겐타리(Gentari), 차지EV(ChargEV) 등 충전소 운영 사업자들의 투자 회수 기간이 길어질 것"이라며 "이는 국가 차원의 전기차 생태계 발전을 가로막는 병목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지나치게 높은 가격 장벽은 소비자들이 공식 수입 경로가 아닌 중고 수입차(그레이 마켓)로 눈을 돌리게 하거나, 아예 기존 내연기관(ICE) 차량을 계속 사용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 전문가들은 말레이시아의 이번 조치가 동남아시아 내 제조 허브로서의 매력을 높일지, 아니면 과도한 규제로 시장 활력을 떨어뜨릴지 지켜봐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지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정책은 외국계 완성차 업체들에 '현지에서 직접 만들고 고용을 창출하든가, 아니면 시장을 포기하라'는 최후통첩과 같다"라며 "글로벌 브랜드들의 말레이시아 내 공장 설립 결정이 향후 1~2년 내 줄을 이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