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협약' 위반 근거로 손해배상 청구…중동 핵 갈등 법정 공방 비화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속 이란의 '법적 반격'으로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속 이란의 '법적 반격'으로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
이미지 확대보기중동의 지정학적 위기가 군사적 충돌을 넘어 국제 법정에서의 정면 승부로 번지고 있다. 이란 정부는 미국의 핵시설 공격과 경제 제재가 국제법 위반이라며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소송을 냈다.
이란 사법부 공식 매체인 미잔(Mizan) 통신과 신화통신의 지난 12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이란 정부는 미국을 상대로 PCA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25년 6월 미국이 이란 내 핵시설을 폭격한 행위와 장기간 이어진 경제 제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취지다. 이란 측은 1981년 양국이 체결한 '알제리 협약' 위반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미국 핵시설 3곳 정밀 타격…이란 "주권 침해와 경제적 손실 보상하라"
이란 측이 문제로 삼은 핵심 사건은 지난해 6월 발생한 12일간의 군사 충돌이다.
당시 미국은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갈등이 격화하자 이란의 주요 핵시설인 포르도(Fordow), 나탄즈(Natanz), 이스파한(Isfahan) 등 세 곳에 정밀 폭격을 감행했다.
특히 맥사 테크놀로지(Maxar Technologies)가 공개한 위성 사진에는 이스파한 농축 시설이 큰 타격을 입은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국제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이란 정부는 이번 소송을 통해 미국의 내정 간섭 중단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직접적인 군사 행동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의 모든 개입 행위를 즉각 멈춰야 한다는 처지다.
아울러 향후 유사한 군사 공격이나 위협을 가하지 않겠다는 재발 방지 보장을 확약할 것을 미국에 요구했다. 특히 핵시설 파괴에 따른 물리적 피해는 물론, 다년간 이어진 경제 제재로 인해 발생한 국가적 실손액에 대해서도 전액 배상하라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란의 행보는 단순히 피해 복구를 넘어 미국의 대이란 정책 기조 자체를 국제법의 틀 안에서 저지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란은 미국이 2018년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뒤 제재를 복원한 것이 국제적 약속을 저버린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2021년 4월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합의 복원을 위한 협상이 이어졌으나, 2022년 8월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 상황이다.
알제리 협약 카드로 압박…법적 실효성보다는 정치적 '명분 쌓기' 분석 우세
전문가들은 이란이 굳이 45년 전 체결된 '알제리 협약'을 소환한 점에 주목한다. 이 협약은 1979년 미 대사관 인질 사건 해결을 위해 체결된 것으로, 미국이 이란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
이란은 이를 근거로 미국의 폭격을 명백한 협정 위반으로 규정하며 국제 사회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중동 관계 전문가들은 이번 소송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우선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침략 행위'로 공식화하여 국제 여론전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는 포석이다.
또한 교착 상태인 핵 협상에서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새로운 법적 카드를 확보함으로써 향후 협상 지대(Leverage)를 넓히려는 의도로 보인다.
동시에 강도 높은 제재로 피폐해진 내부 민심을 다독이고 외부의 적에 맞서는 국가적 결속을 꾀하려는 정치적 셈법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실제 미국이 PCA의 결정에 따를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제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PCA 판결은 강제 집행력이 부족하며,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재판 관할권을 부정할 경우 실질적인 배상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소송은 법적 실효성보다는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정책적 모순을 부각하려는 외교적 수단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 및 지정학적 전망: "리스크 상시화 국면"
이번 소송으로 인해 중동의 긴장은 더욱 장기화할 전망이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는 가운데, 법적 공방까지 가세하며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란의 법적 반격이 미국의 추가 제재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단순한 국지적 충돌을 넘어 법과 외교, 경제가 뒤섞인 복합 위기 단계로 진입했다"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으로 재판부의 관할권 수용 여부와 미국의 공식 대응이 중동 정세와 국제 유가의 흐름을 결정지을 새로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