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HBM 과점' 한국, 미·중 AI 군비경쟁의 핵심 병목 지점 부상

글로벌이코노믹

'HBM 과점' 한국, 미·중 AI 군비경쟁의 핵심 병목 지점 부상

英 FT "컴퓨팅 파워, 무기 성능 결정할 안보 자산"… 국가 안보 자산으로의 전환 가속
삼성·SK하이닉스 중심 HBM 공급망, '소버린 AI' 기반 인프라의 필수 요충지
전장 관리 소프트웨어 포함한 AI 워크로드 전반, 한국 메모리 생태계와 긴밀히 연결
인공지능(AI) 컴퓨팅 인프라가 과거 석유나 원자력처럼 국가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자산 지위를 획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인공지능(AI) 컴퓨팅 인프라가 과거 석유나 원자력처럼 국가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자산 지위를 획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미지=제미나이3

인공지능(AI) 컴퓨팅 인프라가 과거 석유나 원자력처럼 국가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자산 지위를 획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23(현지시각) 첨단 군사 무기의 지휘통제(C2) 및 킬체인 시스템 연산 능력이 데이터 센터 역량에 종속되면서 미·중 중심의 조() 달러 규모 AI 인프라 경쟁이 가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첨단 연산 자원이 미·중 양국에 집중된 구조에서, 반도체 제조 역량과 방위산업 기술을 동시에 보유한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컴퓨팅 스택 종속 우려와 동맹국의 독자 노선


FT는 현대 전장에서 군사 무기가 생성하는 데이터 규모가 급증함에 따라 각국 정부가 컴퓨팅 자원을 경제·군사적 독립의 기반 시설로 취급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최신형 F-35 전투기가 비행 시간당 테라바이트급 센서 데이터를 쏟아내는 상황에서 고성능 연산 능력은 군사 무기의 효율성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과거에는 인간이 직접 수행하던 음향 데이터 기반 잠수함 탐지 영역까지 알고리즘 해양 이상 징후 탐지 기술로 대체되면서 무기 체계 자체의 성능이 인공지능 모델과 연산 속도에 결부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22년 중국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접근을 차단하는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이에 대응해 중국은 컴퓨팅 자원을 덜 소모하는 인공지능 모델 설계로 우회하며 독자적인 인프라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서부 빅테크 기업에 데이터 센터를 의존하는 영국 등 중견국들은 원격 제어로 인프라가 마비될 수 있다는 안보 위협을 체감하는 처지다. 유럽 국가들이 양자 컴퓨팅과 뉴로모픽 칩 같은 대안 기술에 수십억 달러의 독자 자금을 투입하며 '소버린 AI' 구축에 사활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급망 상호의존성과 한국 반도체의 지정학적 가치


전문가들은 하이퍼스케일러의 독점 구도 속에서도 특정 국가가 인공지능 생태계 전체를 복제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네덜란드 디지털 보안기업 포르타에지스의 보우데윈 와이난즈 최고경영자는 국가 간 상호의존성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병목 현상을 지적했다. 대만 TSMC가 첨단 위탁생산을 독점하고 네덜란드 ASML이 노광장비를 독점하듯, 한국은 핵심 메모리 반도체 공급을 통제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실제로 인공지능 데이터 센터 확장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심의 양강 과점(Duopoly) 구조다. 특히 고성능 AI 워크로드는 HBM 기반 GPU 의존도가 매우 높으며, 글로벌 HBM 공급망에서 한국 기업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한국이 단순한 하드웨어 생산자가 아니라 글로벌 인공지능 인프라 생태계의 핵심 축이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전장 관리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글로벌 방산 기업들의 AI 워크로드 전반이 한국의 메모리 생태계와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구조적 제약 요인과 차세대 기술 대응 전략

다만 한국 반도체 산업의 레버리지가 무조건적인 수혜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첨단 HBM 패키징 공정에서 대만 TSMC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엔비디아 중심 독점 생태계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은 명확한 한계다. 아울러 미국의 강화되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국내 기업들이 상시 직면한 리스크 요인이다.

이에 대응해 국내 산업계는 반도체 수급 다변화와 차세대 AI 기반 전장 인프라 시장 선점에 주력해야 한다. 엔비디아 중심의 독점 구조를 깨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전환 국면은 국내 메모리 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가전과 모바일 분야에서 축적한 저전력 기술을 방산 무기체계에 이식하는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데이터 센터 구동을 위한 소형모듈원전(SMR) 연계 사업 등 전력 인프라와 반도체 공급망을 패키지로 묶어 중동 및 유럽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유효하다.

투자자 체크포인트


인공지능 거품론과 안보 자산화 기로에서 국내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네 가지 지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설비투자(CAPEX) 지속 여부다. 고성능 데이터 센터 인프라 확충 속도가 국내 HBM 및 반도체 후공정 업체의 물량 수주 규모를 결정짓는 핵심 선행 지표이기 때문이다.

둘째, 핵심 HBM 제품의 분기별 단가와 가동률 추이다. ·중 군비경쟁 속에서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망 과점력과 실질적인 영업이익률 수준을 증명하는 펀더멘털 지표다.

셋째, 국내 메모리 업계의 HBM 생산능력(CAPA) 증설 속도와 제조 수율이다. 공급 과잉 우려를 불식시키고 프리미엄 시장 내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실질적 공급 역량 지표다.

넷째, 글로벌 차세대 전투기 및 함정 정비(MRO) 사업의 AI 소프트웨어 탑재 비율이다. 방산 밸류체인에 고성능 연산 인프라가 통합되는 속도를 측정하여 국내 방산 수출 기업의 중장기 수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중 중심의 독점적 기술 패권 구도 속에서 한국은 대체 불가능한 핵심 하드웨어 제조 역량을 방산 안보 밸류체인과 결합해 독자적인 지정학적 레버리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