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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제러미 그랜섬 "비트코인 무서운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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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제러미 그랜섬 "비트코인 무서운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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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그랜섬/사진= 로이터
금융의 역사에서 대중의 광기와 탐욕이 정점에 달했을 때, 홀로 고독하게 파국을 경고하고 이를 정확히 맞힌 인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미국 보스턴에 본사를 둔 글로벌 자산운용사 GMO(Grantham, Mayo, Van Otterloo & Co.)의 공동 창업자이자 수석 투자 전략가인 제러미 그랜섬(Jeremy Grantham)은 그 극소수의 정점에 서 있는 전설적인 투자자다.그는 1980년대 일본의 자산 버블, 2000년 닷컴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세계 경제의 3대 대폭락을 고스란히 예측해 내며 시장에서 '버블 예언가'라는 독보적인 명성을 굳혔다. 최근 비트코인을 향해 "폭락보다 소멸에 가까운 길을 갈 것"이라며 독설을 내뿜은 그의 배후에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축적된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와 철저한 가치투자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제러미 그랜섬은 1938년 10월 6일 영국 허트포드셔주 웨어(Ware)에서 태어나 돈카스터에서 성장했다. 영국의 전형적인 지성적 토양에서 자란 그는 셰필드 대학교(University of Sheffield)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수치와 통계가 가진 힘을 깨달았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66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arvard Business School)에서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그가 미국 금융계에 발을 들인 1970년대는 정량적 데이터 분석과 지수 연동형 투자가 태동하던 시기였다. 1971년 그랜섬은 배터리마치 파이낸셜 매니지먼트(Batterymarch Financial Management) 설립에 참여하여 세계 최초의 인덱스펀드 중 하나를 개발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로서는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자금의 개념이 지나치게 혁신적이었던 탓에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이 시기의 경험은 그에게 시장 전체의 추세와 평균 가격을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거대한 안목을 선물했다.1977년, 그는 동료인 리차드 메이요(Richard Mayo), 에일케 반 오터루(Eilke van Otterloo)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자산운용사 GMO를 보스턴에 설립하며 본격적인 거장의 길로 진입했다.

제러미 그랜섬의 반세기 투자 인생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원칙은 바로 '평균 회귀(Reversion to the Mean)'다. 자산의 가격은 단기적으로 인간의 탐욕과 공포에 의해 적정 가치로부터 무한히 멀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역사적 평균치(추세선)로 돌아온다는 법칙이다. 그랜섬이 이끄는 GMO는 단순한 감이나 기술적 차트 분석을 철저히 배제한다. 대신 최소 7년 이상의 장기 예측 모델을 기반으로, 과거 수백 년간의 금융사 데이터와 현재 자산 가격의 괴리율을 측정한다. 통계적 정상 범위를 벗어난 고평가 자산은 아무리 시장에서 환호할지라도 과감히 매도하고, 소외된 저평가 자산을 매입하는 것이 그의 확고한 스타일이다.그는 평소 "역사책을 충분히 읽은 투자자만이 광기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인류 역사상 발생한 30여 개 이상의 주요 버블과 붕괴 과정을 전수 조사하여 자신만의 버블 판별 공식을 정립했다.

그랜섬을 '전설'의 반열에 올린 것은 주류 경제학자들과 월가의 낙관론자들이 "이번엔 다르다(New Era)"고 외칠 때 단행했던 세 번의 역사적 경고였다.1980년대 후반, 일본의 주식 시장과 도쿄 부동산은 지구 전체를 살 수 있을 것처럼 치솟았다. 월가의 자금들이 일본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들 때, 그랜섬은 일본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과 부동산 가격이 역사적 평균을 압도적으로 초과했다는 데이터에 주목했다. 그는 GMO 포트폴리오에서 일본 주식과 부동산 자산을 전량에 가깝게 청산했다. 1989년 12월 일케이 지수가 정점을 찍고 주저앉으며 일본이 '잃어버린 수십 년'의 장기 침체로 진입하자, 그의 자산 방어 능력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실적이 없는 IT 기업들의 주가가 수십 배씩 폭등했다. 그랜섬은 1997년부터 기술주 중심의 시장 과열을 강하게 비포장 도로에 비유하며 경고했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의 시가총액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현상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2000년 3월을 기점으로 나스닥이 폭락하고 고점 대비 80% 이상 추락하면서 그의 통계적 경고는 완벽한 사실로 증명되었다.
2006년과 2007년,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저신용자 주택담보대출)의 호황에 도취해 있었다. 그랜섬은 2007년 가을, 저명한 경제지 <포춘(Fortune)> 기고 등을 통해 "미국 주택 시장은 명백한 진성 버블 영역에 진입했으며, 정교하게 짜인 금융 시스템이라는 현수교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위험 자산을 회수하고 현금 비중을 극대화하여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리스크를 완벽하게 회피했다.그랜섬은 가상자산 시장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회의론을 고수하고 있다. 그랜섬은 미국 CNBC 방송에 출연하여 비트코인을 "실물 경제에서 어떠한 쓰임새도 입증하지 못한 무가치하고 투기적인 자산"으로 규정했다. 그의 예언이 흥미로운 점은 대다수 폭락론자가 주장하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대폭발(Bang)'의 형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그는 영국의 거장 시인 T.S. 엘리엇의 시 '텅 빈 사람들(The Hollow Men)'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여 비트코인의 종말을 묘사했다."비트코인은 앞으로 수년, 수십 년에 걸쳐 시장과 대중의 관심에서 조용히 밀려나며 사라질 것이다. 그 종말은 '펑' 하고 터지는 거대한 굉음이 아니라, 나지막한 신음소리(Whimper)에 가까울 것이다."

그랜섬은 경제가 견조한 상황에서도 뚜렷한 이유 없이 자산 가치가 반토막 나는 변동성을 지적하며, 비트코인이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Store of value)이 될 수 없음을 피력했다. 사람들이 비트코인으로 저녁 식사를 사거나 슈퍼마켓에서 결제하는 등의 실질적인 거래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실질적인 유일한 용도는 범죄자들의 자금 세탁 통로뿐이라는 점이 그가 꼽은 '소멸 예언'의 핵심 근거다. 이는 내재 가치가 없는 자산은 결국 시간의 시험을 버티지 못하고 역사적 평균인 '제로(0)'로 수렴한다는 그의 평론을 다시 한번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역사적 대폭락을 모두 맞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랜섬에게는 늘 '퍼마베어(Permabear, 영구 약세론자)'라는 비판적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자산 가격이 평균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확신이 너무 강한 나머지, 거품의 '생성 초기'부터 경고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닷컴버블 당시 그는 1997년부터 기술주 매도를 외쳤으나, 거품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길게 연장되어 2000년까지 치솟았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상승 랠리를 따라가지 못한 GMO는 수많은 고객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고, 천문학적인 자금 유출과 고객 이탈을 겪어야 했다. 거품이 터진 후 결국 그가 옳았음이 증명되었지만, 이미 떠나간 고객들은 돌아오지 않았다.제러미 그랜섬은 단순한 돈벌이로서의 투자를 넘어, 인류와 지구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거시적 거품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는 인류가 지난 250년 동안 저렴한 화석연료에 의존해 경제 성장을 가짜로 부풀려온 '탄소 버블(Carbon Bubble)' 속에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1997년 부인 하넬로레(Hannelore)와 함께 '환경 보호를 위한 그랜섬 재단(The Grantham Foundation)'을 설립했다. 런던정경대(LSE)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등에 수천만 달러를 기부해 기후변화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시에라 클럽, 그린피스, 세계자연기금(WWF) 등을 후원해 왔다.그랜섬은 특히 미국의 인공지능(AI) 열풍을 두고 과거 철도 산업과 인터넷 도입 초기의 광기와 닮아 있는 '슈퍼버블의 최종장'이라 규정하며 엔비디아(Nvidia)의 주가 조정이 그 신호탄이 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