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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전투기의 역설… KF-21도 AMCA도 ‘미국 엔진의 그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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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전투기의 역설… KF-21도 AMCA도 ‘미국 엔진의 그늘’에

기체는 국산, 심장은 GE… KF-21이 넘지 못한 자주국방 마지막 장벽
독자 개발 외쳤지만 안보·수출 통제권은 미국 손에… 한국 차세대 엔진 화두
인도와 튀르키예 등 세계 각국이 독자 기술로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핵심 추진 계통인 제트엔진은 여전히 미국산에 종속되어 전략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인도와 튀르키예 등 세계 각국이 독자 기술로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핵심 추진 계통인 제트엔진은 여전히 미국산에 종속되어 전략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인도와 튀르키예 등 세계 각국이 독자 기술로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핵심 추진 계통인 제트엔진은 여전히 미국산에 종속되어 전략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타임스오브인디아(Times of India)와 유라시안타임스(EurAsian Times) 등 보도를 종합하면 인도의 5세대 스텔스 전투기 ‘AMCA’와 터키의 ‘KAAN’ 모두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 엔진을 탑재하면서 독자 방산의 한계를 노출했다.

이는 한국 항공우주 산업의 자존심인 ‘KF-21 보라매역시 공유하는 과제로, 진정한 자주국방을 위해 독자 엔진 기술 확보가 시급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국산 전투기 엔진 자립의 현주소와 과제

이를 종합하면, 세 가지 핵심 포인트로 요약된다.

첫째, 인도·튀르키예 차세대 전투기의 미국 엔진 종속이다. 인도의 5세대 전투기 AMCA와 튀르키예의 KAAN 모두 기체는 자국산이지만 심장은 미국 GE 제품을 채택했다.

둘째, 비용 폭등과 공급 지연의 공급망 리스크다. GE의 일방적인 가격 인상 요구나 공급망 차질은 전투기 배치 시기와 군 전력 공백으로 직결된다.

셋째, 한국 KF-21의 라이선스 한계와 수출 통제다. 한화가 F414 엔진을 라이선스 생산하는 한국도 미국의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체 설계 끝났는데 3배 폭등… 인도가 마주한 외산 엔진의 덫


인도 항공개발청(ADA)이 주도하는 5세대 스텔스 전투기 AMCA 프로그램은 최근 심각한 예산 위기에 직면했다.

타임스오브인디아는 28(현지시각) 인도 국방연구개발기구(DRDO)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GEAMCA 시제기에 탑재할 F414 엔진 가격을 당초 추정치보다 거의 3배 높게 불렀다고 보도했다.

정확한 계약 조건은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으나, 초기 예상 가격은 1정당 70~80억 루피(1140~1300억 원) 수준이었으나 가격이 폭등하면서 인도 정부의 시제기 개발 예산 1500억 루피(24400억 원)는 크게 부족해질 처지다. 다만 환율 변동, 세부 옵션, 장기 후속 군수지원(ILS) 포함 여부에 따라 실제 단가는 산정 방식별로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엔진 공급처를 바꿀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인도는 이미 F414 엔진의 규격과 중량에 맞춰 AMCA 기체 설계를 마쳤다. 현 단계에서 엔진을 변경하려면 기체 설계 전체를 갈아엎어야 해 사업 무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의존증은 인도의 경전투기 테자스(Tejas) Mk1A 사업에서도 독이 됐다. 구형 GE F404 엔진의 공급이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늦어지면서 인도 공군의 전투기 인도 일정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했다. 독자 무기체계라고 강조해도 핵심 부품을 쥐어짜이면 생산 일정과 안보 스케줄 전체가 흔들린다는 리스크를 증명한다.

성능·리스크 회피의 고육지책… 다국적 컨소시엄이라는 세계적 추세


다만 이러한 미국산 엔진 채택을 단순한 일방적 종속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차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세스에서 엔진까지 동시에 독자 개발하는 것은 천문학적인 비용과 개발 실패 리스크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이 현재 수준의 고성능 전투기 엔진 기술에 도달하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행착오와 막대한 국방 투자가 축적됐다. F414 엔진은 약 98kN급 추력을 내면서도 수천 시간의 수명을 확보한 검증된 균형형 엔진이다.

한국의 KF-21 역시 완전한 5세대가 아닌 4.5세대에서 출발해 단계적으로 개량하는 로드맵을 채택한 만큼, 초기 단계에서 엔진 개발 리스크를 회피하고 기체와 항전장비의 안정성을 먼저 검증하는 속도와 자립성의 트레이드오프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유럽의 선진 방산국들조차 독자 개발 대신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이 참여한 EJ200(유로파이터 타이푼 탑재) 등 다국적 컨소시엄 구조를 통해 비용과 기술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다. 초기 개발 단계에서 외산 엔진의 손을 잡는 것은 글로벌 전투기 시장의 보편적인 흐름이다.

튀르키예와 한국도 예외 없다… 글로벌 시장에 부는 미국산 심장의 그늘


전투기 독자 개발을 선언한 다른 국가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유라시안타임스는 튀르키예의 5세대 전투기 KAAN 역시 초기에 미국산 GE F110 엔진을 탑재해 첫 비행을 시작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7억 달러(1조 원) 규모의 엔진 판매를 서두르고 있으나, 튀르키예가 자체 엔진 'TF35000'이나 'Güçhan'을 실전 배치하기 전까지는 수년 동안 미국의 정책적 결정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튀르키예는 러시아산 S-400 도입으로 F-35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한 뒤 기술 주권을 위해 KAAN 개발에 나섰지만, 결국 다시 미국산 엔진을 구걸해야 하는 역설에 가쳤다.

한국의 KF-21 보라매 역시 같은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KF-21GE F414 엔진 2정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라이선스 생산하는 방식으로 탑재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단순 조립을 넘어 핵심 모듈 일부를 직접 생산하고 국산 부품을 적용하는 등 MRO(유지·보수·정비) 역량을 축적해 왔다.

그럼에도 엔진의 핵심이자 최고 난도 부품인 핫섹션(터빈) 기술 이전 제한과 디지털 제어 장치(FADEC)의 불완전한 자립은 뚜렷한 한계다. 추진 기관이 완전히 국산화되지 않아 제3국 수출 시 미국의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ITAR 통제는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특정 국가로의 수출 자체를 차단하거나 사후 유지보수까지 제약할 수 있다.

엔진이 미국산이면 전투기 전체가 사실상 미국산 무기로 간주되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스웨덴의 그리펜 Ecost-effective한 주권적 대안으로 마케팅하면서도 미국산 F414G 엔진을 써서 수출 통제를 받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금속 녹이는 초고온과의 싸움… 5개국만 쥔 최후의 장벽


전투기 제트엔진 개발은 항공우주 공학의 최정점이자 재료과학의 한계를 시험하는 영역이다. 섭씨 1600도가 넘는, 금속의 융점을 초과하는 초고온 환경에서 연비(SFC)와 내구성(MTBO)을 유지하며 추력 대비 중량(T/W ratio)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터빈 블레이드의 열을 견디게 하는 열차폐 코팅(TBC), 미세한 공기를 흘려보내는 냉각 홀 가공 기술, 극도의 압력을 견디는 단결정(Single-crystal) 터빈 블레이드 제조 기술은 극소수 국가의 전유물이다.

현재 전투기용 첨단 독자 엔진을 설계·제조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 등 5개국에 불과하다. 인도가 수년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카베리(Kaveri)' 엔진을 개발하고도 전투기 요구 추력을 맞추지 못해 무인기(UCAV) 동력원으로 격하시킨 사례는 이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준다.

현실적 시나리오와 로드맵… 한국은 국가 기술 주권의 벽을 넘을 수 있나


그렇다면 한국은 현실적으로 엔진 자립이 가능할까. 첨단 항공엔진 개발은 최소 10~15년의 장기 전략과 수조 원 규모의 자본, 높은 실패 확률을 감내해야 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다행히 방위사업청은 202512월 제172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약 33000억 원 규모의 재원을 투입해 첨단 항공엔진을 국내 기술로 연구·개발하는 기본계획을 보고하며 공식 출사표를 던졌다. 오는 2040년 중후반까지 국산화를 완료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 방산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시나리오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리스크가 높지만 장기적 이익이 가장 큰 '완전 독자 개발', 유럽 선진국과의 전략적 '공동 개발', 그리고 현재의 '라이선스 생산 방식을 통한 단계적 국산화율 제고'.

현실적으로는 축적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인프라를 바탕으로 점진적 국산화를 추진하되, KF-21의 향후 블록 III 또는 5세대 이상의 차세대 개량형 전투기 개발 시점에 맞추어 국산 엔진을 단계적으로 통합하는 로드맵이 유력하다.

이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뿐만 아니라 고부가가치 소재·가공·부품 생태계 전반의 중장기 투자 스토리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엔진 개발은 산업 생태계 전체의 업그레이드


무기체계의 외형을 국산화하는 '최고급' 단계는 인도, 튀르키예, 한국 모두 도달했다. 하지만 독자적인 엔진이 없다면 군사적 자립을 뜻하는 '전략적 자율성'은 완성되지 않는다. 공급국의 정치적 변화나 상업적 이익 요구에 따라 언제든 사업 전체가 인질로 잡힐 수 있어서다.

전투기 엔진 개발은 단순히 국방 안보의 과제를 넘어 국가 기술 주권의 최종 시험대다. 초내열 합금 등 첨단 소재 산업, 5축 정밀 가공 및 적층 제조(3D 프린팅) 등 정밀 제조 인프라, 지능형 FADEC을 구현하는 소프트웨어 역량까지 국가 제조업 생태계 전반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강력한 추진력이 되기 때문이다.

외산 기술에 기댄 절반의 자립에서 벗어나 최후의 장벽을 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방산은 결국 수출 가능한 전투기가 아니라 승인받아야 팔 수 있는 전투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