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만에 지난해 연간 기록 돌파… 인프라 자산 '성장+안정' 매력에 사모펀드 가세
투자 확대가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규제 구조 속 지연된 인상 압력 우려
투자 확대가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규제 구조 속 지연된 인상 압력 우려
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AI) 열풍이 미국 전력 산업의 자본 지형을 완전히 바꾸며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 광풍을 몰고 왔다.
급증하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선점하려는 유틸리티 기업들과 '성장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대형 사모펀드의 자금이 맞물린 결과다. 다만 이 거대한 자본 조달 과정은 미국 전력 산업 특유의 요금 규제 구조와 맞물려 소매 요금 인상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정치권과 규제 당국이 대기업의 비용 전가 행위에 대해 현장 조사와 청문회 칼날을 겨누면서, 빅테크발 전력 인프라 전쟁은 규제 리스크라는 새로운 변수를 맞이했다.
5개월 만에 작년 기록 돌파… 속도감 붙은 수요 충격
불과 5개월 만에 지난해 전체 거래 규모인 1417억 달러(약 218조 원)를 40% 이상 웃돌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운 것이다. 이러한 이례적인 자본 집중 속도는 AI가 전력 산업의 영토를 얼마나 급격하게 재편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증명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는 29일(현지시각) 글로벌 자본이 데이터센터 에너지 인프라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M&A 폭발의 표면적 원인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데이터센터 인프라 확보다. 이 기간 데이터센터 부문 투자액은 1515억 달러(약 234조 원)로 전년 동기(687억 달러, 약 106조 원)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오는 2025년까지 누적 투자액은 3210억 달러(약 495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올해 최대 규모 거래는 넥스트에라 에너지가 기업가치 1120억 달러(약 172조 원) 규모의 도미니언 인수를 제안한 건이다. 이어 블랙록의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스(GIP)와 EQT가 AES를 330억 달러(약 50조 원)에 인수한 계약이 뒤를 이었다. 올해 5개월간 성사된 거래만 77건에 달한다.
즉, AI는 전기요금 상승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 이미 압력이 가득 찬 전력 시스템에 '가속 페달'을 밟은 추가적인 수요 충격에 가깝다.
'투자 확대가 곧 수익' 유틸리티 규제 구조와 사모펀드의 계산
주목해야 할 핵심은 미국 유틸리티 기업들의 독특한 수익 모델이다. 이들은 완전한 자유 독점 기업이 아니라 정부의 통제를 받는 '투자수익률 규제(Rate-of-Return Regulation)' 모델 안에서 움직인다.
전력 회사가 송전망과 발전소에 설비투자(CAPEX)를 늘려 규제자산(Rate Base)을 확대하면, 정부는 여기에 일정한 허용 수익률(Allowed Return)을 곱해 최종 전기요금을 책정한다.
중요한 점은 이 요금 인상이 규제 당국의 심사 절차를 거쳐 수년의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부담은 당장 요금 폭탄이라기보다 시차를 두고 밀려오는 지연된 구조적 상승 압력에 가깝다.
초대형 자산운용사와 사모펀드가 유틸리티 지분 인수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금리 기조가 정점을 통과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장기 인프라 자산의 매력이 커진 데다, AI 수요 덕분에 전통적인 방어주였던 유틸리티가 '성장주'로 재평가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규제 산업 특유의 높은 현금흐름 가시성에 AI발 성장 모멘텀이 결합하면서 민간 자본의 진입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라자드의 조지 빌리시치 에너지 부문 글로벌 책임자는 전반적인 재산업화 기조와 전기차 보급 확대로 전력 소비량 자체가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하이퍼스케일러 수요가 얹어진 형국이라 분석했다.
이에 따라 토마스 키프 딜로이트 수석 책임자는 일부 전력 회사가 향후 5년에서 10년 사이 매출이 50%에서 최대 100%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역 집중형 수요가 촉발한 민심 이반과 규제 리스크
인프라 투자 비용이 소매 요금으로 전가되는 방식은 주(州)별 요금 구조와 규제기관에 따라 지형이 갈린다. 일부 주정부는 대형 데이터센터와 같은 대량 수요자에게 별도의 고율 인프라 부담금을 부과하는 반면, 다른 주들은 전체 규제자산에 비용을 산입해 일반 가계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 수요가 특정 지역에 과밀하게 집중되면서 요금 상승이 전국 평균이 아닌 '지역 민심 문제'로 급격히 전환된 점이 정치권의 개입을 촉발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현재 미국 전역의 평균 전기요금은 지난해보다 9% 올랐다. 반면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전초기지인 버지니아주는 15% 폭등했고,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도 각각 8% 상승하며 불균형을 보였다.
이 같은 부담은 즉각 정치적 리스크로 비화했다. 도매 전력과 송전망을 감독하는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차원의 결합 심사가 까다로워진 것은 물론, 실제 소매 요금 승인권을 쥔 각 주정부의 공공유틸리티위원회(PUC)도 여론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을 비롯한 양당 의원들은 공공요금 업체와 빅테크 기업들이 가정에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며 정식 조사에 착수했다. 워런 의원은 블랙록, 블랙스톤, KKR 등 대형 자산운용사에 서한을 발송해 전력 시설 소유권 구조와 요금 책정 개입 여부에 대한 자료 제출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넥스트에라는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로 비용을 줄여 도미니언 서비스 지역 고객에게 22억 5000만 달러(약 3조 4700억 원) 규모 요금 할인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클린 버지니아의 브레넌 길모어 사무총장은 일시적인 할인은 착시일 뿐이며, 대규모 합병에 따른 장기적인 재무 위험과 인프라 청구서는 결국 주민들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라 반박했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향방
글로벌 자본시장과 투자 전문가들은 향후 전력 인프라 대란의 전개를 세 가지 시나리오로 세분화해 진단하고 있다. 현재 시장 가치평가(밸류에이션)는 유틸리티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는 낙관적 시나리오의 일부를 이미 선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기준 시나리오는 대형 M&A 건들이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와 각 주정부 규제기관의 심사를 종국에는 통과하는 방향이다. 다만 일반 가계 보호와 지역 여론 무마를 위해 소매 요금 인상 상한선이 설정되거나, 데이터센터 전용 할증 요금제 도입이 강력한 승인 조건으로 부과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기업들은 규제자산을 안정적으로 늘리면서도 정치적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게 된다. 이번 빅테크발 전력 인프라 대란은 민간 자본을 통한 에너지 혁신이냐, 혹은 독점 구조 고착화에 따른 소매 가계의 부담 전가냐를 가르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정부 정책의 완충 역할과 대기업의 비용 분담률이 어떻게 조율되는지에 따라 향후 유틸리티 시장의 장기 밸류에이션 향방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