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원 6대3 판결 일주일 만에 반발
재심리 가능성 낮지만 이민정책 입법전 예고
재심리 가능성 낮지만 이민정책 입법전 예고
이미지 확대보기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출생시민권을 인정한 연방대법원 판결에 재심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원칙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해온 150년 넘은 헌법 관행을 대법원이 다시 확인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뒤집기 위한 절차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이 이미 선고한 사건을 다시 심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실제 재심리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BBC는 트럼프 대통령이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을 위헌으로 본 연방대법원 판결에 대해 “즉각” 재심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고 9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법원 결정을 “정의의 오심”이라고 비판하며 판결이 바뀌지 않으면 미국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같이 언급했다.
◇ 6월 30일 대법원, 출생시민권 유지
쟁점은 미국 수정헌법 14조다.
미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30일 판결에서 미국에서 태어난 아동은 부모가 불법 체류자이거나 일시 체류자라도 출생과 동시에 시민권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6대3 의견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헌법상 출생시민권 원칙과 충돌한다고 봤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수 의견에서 미국에 불법 또는 일시적으로 체류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도 수정헌법 14조에 따라 출생 시 시민권자가 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직후 행정명령을 통해 불법 체류자와 일부 임시 체류자의 자녀는 미국에서 태어나도 시민권을 받을 수 없도록 하려 했다. 그는 이들이 수정헌법 14조의 표현인 “미국의 관할권에 속하는” 사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재심리 신청은 가능하지만 허들은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재심리는 절차상 가능하다.
연방대법원 규칙에 따르면 패소한 당사자는 판결 후 25일 안에 재심리 신청서를 낼 수 있다. 다만 대법관 9명 가운데 과반이 재심리 허용에 동의해야 사건이 다시 열릴 수 있다.
문제는 전례다. 연방대법원이 이미 판단을 끝낸 사건을 다시 심리하는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결정된 사건이 다시 재심리된 마지막 사례는 약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심리는 통상 명백한 법률 오류나 중대한 사실 변화, 판결의 핵심 전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검토된다. 단순히 패소한 쪽이 판결에 불복한다는 이유만으로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심리 요청은 법적 실현 가능성보다 정치적 메시지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보수층에 강경 이민정책 추진 의지를 다시 보여주고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출생시민권 제한 의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 150년 넘은 원칙에 도전
미국은 1868년 수정헌법 14조 채택 이후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시민권을 인정해왔다.
이 조항은 남북전쟁 이후 해방 노예와 그 후손에게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연방대법원 판례를 거치며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사람은 부모의 체류 신분과 관계없이 시민권자가 된다는 원칙으로 굳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원칙이 불법 이민과 이른바 ‘원정 출산’을 부추긴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미국 시민권이 자동으로 주어지는 제도가 국경 통제와 이민질서를 약화시킨다고 본다.
반면 시민권 단체와 이민자 권익 단체는 출생시민권이 미국 헌법의 핵심 원칙이라고 반박한다. 부모의 신분을 이유로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시민권을 제한하면 대규모 무국적자와 계층 분리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법원의 판결은 이 논쟁에서 현행 헌법 해석을 재확인한 의미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대통령 권한만으로 출생시민권의 범위를 줄일 수 없다는 판단을 받은 셈이다.
◇ 이민정책 상징 의제로 부상
출생시민권 제한은 트럼프 2기 이민정책의 상징적 의제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통제, 불법 체류자 단속, 난민·망명 제한과 함께 출생시민권 제한을 강경 이민정책의 핵심 축으로 제시해왔다. 행정명령이 대법원에서 제동이 걸리자 그는 의회를 통한 입법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입법 역시 쉽지 않다. 출생시민권은 헌법 조항에 근거한 권리로 해석돼왔기 때문에 단순 법률로 제한할 수 있는지부터 논란이 크다. 의회가 관련 법을 통과시키더라도 다시 헌법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헌법 자체를 고치려면 절차는 훨씬 더 어렵다. 미국 헌법 개정은 의회 양원 3분의 2 찬성과 주 4분의 3의 비준을 필요로 한다. 현재 미국 정치 지형에서 출생시민권 폐지를 위한 헌법 개정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많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안을 계속 정치 쟁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민 문제는 트럼프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대표 의제이고 출생시민권은 헌법과 국경, 국가 정체성 논쟁이 겹치는 상징성이 큰 사안이기 때문이다.
◇ 대법원 보수 우위 속에서도 제동
이번 판결은 대법원의 이념 지형과도 맞물려 주목된다.
현재 미 대법원은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인 구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 보수 대법관 3명을 지명해 대법원의 보수 우위를 굳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런 대법원에서조차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보수 다수 대법원도 행정부 권한이 헌법 문언과 오랜 판례의 경계를 넘는다고 판단한 사안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동을 걸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시민권 옹호 단체들에는 중요한 승리다. 출생시민권이 단순한 정책 선택이 아니라 헌법상 권리라는 점을 대법원이 다시 확인했기 때문이다.
◇ 법정 싸움에서 정치 싸움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재심리 요청 예고는 출생시민권 논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뜻한다.
법적으로는 재심리 가능성이 낮지만 정치적으로는 이 사안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며 의회 입법과 여론전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내부 강경파도 출생시민권 제한 법안을 다시 밀어붙일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분명한 기준선을 남겼다는 평가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시민권을 인정하는 원칙은 수정헌법 14조에 뿌리를 둔 헌법적 권리이며 대통령 행정명령만으로 이를 제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