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재 가격 11~13% 급등·화물비 16%↑…메모리·전자부품은 공급난까지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제조업이 원자재와 에너지, 운송비가 동시에 오르는 새로운 공급망 인플레이션에 직면했다.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과 수입품 관세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이 촉발한 전자부품 부족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제조업체들이 원자재와 에너지, 화물 운송에 이전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며 일부 투입비용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5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비용 상승을 견디지 못한 일부 기업은 이미 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어 제조 단계의 원가 상승이 소비자물가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FT에 따르면 오하이오주에서 기타 이펙터 페달을 생산하는 어스퀘이커 디바이시스는 올해만 두 차례 제품 가격을 올렸다.
줄리 로빈스 어스퀘이커 최고경영자(CEO)는 “같은 제품을 확보하기 위해 갈수록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 23개월째 상승…중간재 11~13% 급등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의 8월 제조업 조사에서도 비용 압력이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15개 제조업종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보고했으며 가격이 하락했다고 답한 업종은 하나도 없었다.
ISM의 제조업 가격지수는 71.1로 원자재 가격이 23개월 연속 상승했음을 나타냈다.
석유 기반 제품과 철강, 알루미늄 등의 가격 상승이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미 노동통계국(BLS)의 생산자물가 지표에서도 제조 과정의 앞단으로 갈수록 비용 상승이 두드러졌다.
완제품 생산자 가격은 8월 전년 동월보다 6.6% 상승했다.
반면 생산에 사용되는 가공 중간재 가격은 같은 기간 11.5%, 고철 등 미가공 중간재는 12.8% 각각 뛰었다.
가공 중간재 가격 상승에는 디젤이 큰 영향을 미쳤다. BLS에 따르면 디젤 생산자 가격은 8월 한 달 동안 24.1% 급등했다. 이후 연료비 상승세는 계속됐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디젤 소매가격은 15일 갤런당 사상 최고인 6.27달러(약 8500원)에 도달했다.
FT는 “미국의 디젤 도매가격도 15일 다시 큰 폭으로 올라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물류비도 16%↑…“부족보다 비용이 문제”
물류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FT가 카스인포메이션시스템 자료를 토대로 계산한 결과 8월 미국의 화물 한 건당 평균 운송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6% 상승했다.
카스 자료에서 전체 화물 지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8.7% 증가한 반면 물동량은 2.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일부 제조업체는 원자재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네소타주 인근 금속가공업체 와이오밍머신의 트레이시 타파니 공동대표는 원자재 조달에 차질이 생기고 있으며 특히 철강에서 뚜렷한 공급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제조업체들은 현재 상황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당시 공급망 위기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당시에는 필요한 제품 자체를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원자재와 부품은 구매할 수 있다. 문제는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점이다.
농기계에서 트럭까지 생산하는 기업들을 회원사로 둔 미국장비제조업협회의 킵 아이드버그 수석부회장은 공급망의 핵심 문제가 ‘부족’에서 ‘비용’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AI 데이터센터가 메모리·프로세서 빨아들여
전자산업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AI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늘면서 메모리 반도체부터 프로세서까지 전문 전자부품 수요가 급증해 가격뿐 아니라 물량 확보 자체도 어려워지고 있다.
ISM의 8월 조사에서 전자산업 관계자는 현재 공급망 상황이 코로나19 당시와 그 직후보다 더 크고 복잡한 위기를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전자협회의 숀 듀브라백은 “수요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며 “그 배경에 거대한 AI 인프라 투자가 있다”고 설명했다.
부품에 따라서는 주문한 뒤 납품받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전자협회가 지난달 실시한 조사에서는 전 세계 전자제품 제조업체의 약 3분의 2가 부품 공급 제한이나 납품기간 장기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다.
듀브라백은 공급망 압력이 해소되려면 관련 산업 전반에서 생산능력이 확대되거나 AI 인프라 수요 자체가 둔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확실성 커 증설도 주저
문제는 가격이 급등하고 부품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기업들이 생산능력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란 전쟁과 관세 정책 등 향후 시장 환경을 예측하기 어려워 대규모 설비투자를 결정하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공급망관리 전문가인 잭 로저스 콜로라도주립대 교수는 “기업들이 1년 뒤 시장 상황이 지금과 비슷할 것이라는 확신 없이 대규모 자본지출을 결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어스퀘이커의 로빈스 CEO도 계속되는 정책과 시장 변화 때문에 장기 사업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FT는 “공급망 비용 상승이 미국 전반의 물가 압력을 키우고 있으며 높은 유가와 수입관세, AI 인프라 투자라는 세 가지 요인이 동시에 제조업 원가를 밀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높은 물가는 채권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15일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를 2007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시장에서는 연방준비제도가 16일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FT는 물가상승이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도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