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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곳에 집어 넣고 "의도 없었다"?…영상 제작사 '혐오 표현' 논란에 게임계 '발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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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곳에 집어 넣고 "의도 없었다"?…영상 제작사 '혐오 표현' 논란에 게임계 '발칵'

애니메이션사 스튜디오 뿌리, '메갈 손' 논란에 사과문 게재
업력 8년차 기업…넥슨·스마게·카카오 등 파트너사 다수 피해

게임 프로모션 영상을 전문 제작해오던 스튜디오 뿌리가 남성 혐오적 표현을 애니메이션에 다수 삽입했다는 논란에 휩사였다. 이미지는 스튜디오 뿌리가 2016년 지스타에 냈던 전시 부스. 사진=스튜디오 뿌리이미지 확대보기
게임 프로모션 영상을 전문 제작해오던 스튜디오 뿌리가 남성 혐오적 표현을 애니메이션에 다수 삽입했다는 논란에 휩사였다. 이미지는 스튜디오 뿌리가 2016년 지스타에 냈던 전시 부스. 사진=스튜디오 뿌리
국내 중견급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의 '성 차별적 표현' 논란에 게임업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해당 업체와 계약한 기업들이 공식적으로 이용자들에게 사과한 가운데 콘텐츠 수정·폐기, 재발 방지 조치 등 추가 대응에 나섰다.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카카오게임즈, 네오위즈 등 게임사의 운영진은 이달 26일 새벽부터 줄줄이 자사 주요 게임 공식 포럼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게임 공식 프로모션 영상(PV)에 혐오 표현, 혹은 논란이 되는 장면이 있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건의 시작은 넥슨이 23일 공개한 '메이플스토리' 업데이트 프로모션 영상이었다. 당시 넥슨은 인기 캐릭터 '엔젤릭버스터'를 리마스터하는 업데이트를 적용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엔젤릭버스터가 노래를 부르는 콘셉트의 영상을 공개했다.

그런데 25일 저녁 들어 해당 영상에 엄지와 검지를 구부린 동작, 이른바 '메갈손' 포즈를 취한 것이 발견돼 논란이 점화됐다. 메갈손이란 지금은 폐쇄된 여성우월주의적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로고를 따라하는 동작을 일컫는다. 해당 손동작은 '한국 남성은 성기가 작다'는 조롱의 뜻을 담고 있어 대표적인 남성 혐오 표현으로 꼽힌다.

스튜디오 뿌리가 작업한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홍보 영상과 원화 속 집게손을 캡처한 것. 여성우월주의적 커뮤니티 메갈리아(왼쪽 아래)의 로고를 따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진=넥슨, 스튜디오 뿌리·메갈리아 X(트위터), 이원용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스튜디오 뿌리가 작업한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홍보 영상과 원화 속 집게손을 캡처한 것. 여성우월주의적 커뮤니티 메갈리아(왼쪽 아래)의 로고를 따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진=넥슨, 스튜디오 뿌리·메갈리아 X(트위터), 이원용 기자

영상의 제작을 맡은 업체는 업계 경력 8년의 중견급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다. 앞서 언급한 게임사들의 하청을 받아 애니메이션형 PV를 전문 제작하던 곳으로, 해당 업체가 참여한 영상 중 상당수에 앞서 언급한 '메갈손'과 같은 포즈가 곳곳에 표현된 것이 확인됐다.

'메갈손'은 본질적으로 엄지와 검지를 집게 모양으로 구부린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것이 정말 '혐오 표현'인지 의도를 파악하긴 어렵다. 실제로 사태 초반에는 "정말 메갈손인지 그냥 집게손인지 지켜봐야 한다"며 사건의 과열을 경계하는 게이머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스튜디오 뿌리의 경우 논란이 제기된 영상들에 참여했던 팀장급 직원 'D(가칭)'가 소셜 미디어 상에서 수차례 남성 혐오적 발언을 했다는 점이 밝혀져 문제가 커졌다. 인터넷 상에 관련 논란이 확산되자, D와 스튜디오 뿌리가 소셜 미디어에 게재한 게시물, 이미지들이 삭제 처리되기 시작해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스튜디오 뿌리의 팀장으로 알려진 네티즌 'D'의 X(트위터) 게시물. 현재는 삭제 조치돼 확인할 수 없다. 사진=X 캡처이미지 확대보기
스튜디오 뿌리의 팀장으로 알려진 네티즌 'D'의 X(트위터) 게시물. 현재는 삭제 조치돼 확인할 수 없다. 사진=X 캡처

원청 게임사들은 앞서 거론했듯 일요일인 26일 새벽부터 연이어 입장문을 내놓고 문제가 되는 콘텐츠에 대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스튜디오 뿌리 측도 26일 오후 4시 경 "게이머들이 불쾌감을 느낀 점에 대해 잘못을 통감한다"며 "향후 해당 스태프가 PV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주의하겠다"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다만 해당 사과문에서 "동작과 동작 사이에 이어지는 손동작은 의도하고 넣은 것이 아니다", '해당 스태프는 원화 애니메이터로 동작을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의도성을 부인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언급한 메이플스토리 외에도 넥슨의 '메이플스토리M', '던전 앤 파이터(던파)', '던파 모바일'과 '블루 아카이브', 스마일게이트 '에픽세븐'과 '아우터플레인', 카카오게임즈 '이터널 리턴', 네오위즈 '브라운더스트2', 스튜디오비사이드 '카운터사이드' 등 피해를 입은 게임만 10개로 확인됐다. 게임별로 비공개 처리된 영상이 여럿임을 감안하면 수십 개 영상에 '메갈손' 표현이 이뤄진 셈이다.

스튜디오 뿌리 직원 카드 인증 사진과 함께 자신이 전직 뿌리 직원이라 밝힌 한 네티즌은 "동화 하나 하나 연결 과정에서 손가락이 있었다면 우연일 수 있다"면서도 "원화부터 손짓이 표현돼 있던 것을 보면 빼도 박도 못할 정도로 의도적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이러한 표현이 과거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합성물과 같이 "감독이나 파이널 체크 등 여러 과정이 있다 해도 모르면 걸러내기 어려운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일베는 극우·남성우월주의 성향 커뮤니티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이나 일베 로고 등을 교묘하게 합성한 이미지들을 유통해 수차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공식 사이트. '엔젤릭버스터'의 리마스터 업데이트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사진=넥슨 사이트 캡처이미지 확대보기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공식 사이트. '엔젤릭버스터'의 리마스터 업데이트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사진=넥슨 사이트 캡처

게임사들은 이번 논란으로 인해 적지 않은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논란이 된 콘텐츠에 대한 전수조사와 수정 조치 등 추가 업무가 발생했고, 이것이 게임 개발 등 주요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태의 시작점이 된 넥슨의 '메이플스토리'는 회사에서 간판으로 내세운 캐릭터의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돼 더욱 큰 타격을 입었다. 롯데월드와 협업을 통해 오는 12월 15일 선보일 예정인 메이플스토리 현장 행사 '루시드 드림 페스타'에도 적지 않은 여파가 있을 전망이다.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총괄 디렉터는 일요일인 26일 저녁 긴급 라이브 방송을 켜고 시청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이례적 조치를 취했다. 별다른 예고가 없었음에도 불구, 해당 방송에는 5만명에 가까운 동시 시청자가 모일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김창섭 디렉터는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고 그것을 몰래 드러내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문화에 반대한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며 "공공연한 혐오를 향유하는 이들이 게임 문화를 유린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고 단호히 조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