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지주사 '서울' 설치
시민반발에 포스코 사면초가
시민반발에 포스코 사면초가

15일 다수의 재계 관계자 의견을 종합해 보면 기업의 논리와 법적인 문제, 세수 측면에서 봤을 때도 포스코의 결정이 잘못된 것은 없다. 하지만 보다 원초적인 문제, 즉 포항시민들에 내재하고 있는 피해의식을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채 원칙론으로만 접근하려고 한 포스코 최고경영진들의 판단 착오가 사태를 키웠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포스코의 옛 사명인 포항종합제철은 ‘포항’이라는 도시 이름을 사명으로 딴 유일한 대기업이다. 한때 포항시 세입(지방세 기준)의 20%를 넘은 적도 있었고 포항시 인구의 절반 가량이 포스코 경제 활동에 직접 관련되어 있으며, 나머지 인구도 어떤 형태로든 포스코 생태계와 연관을 맺고 생활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의 서울 설치가 이뤄지더라도 이런 생태계가 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포스코는 여전히 포항시민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고, 큰 반발에 직면해 있다. 포항시장과 경북도지사 등 지자체 단체장과 국회의원, 시민단체의 반대 유세와 범시민 반대 서명 운동은 물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도 모두 서울 설립에 반대한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코너에 몰린 포스코는 ‘포스코 본사는 여전히 포항’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어떤 입장을 내놓아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다.
포항시민의 반 포스코 여론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는 청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별세 이듬해인 2012년 발간된 청암 박태준 연구총서에 실린 전상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의 논문 ‘박태준과 지방, 기업 도시 : 포철과 포항의 병존과 융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논문에 따르면, 포스코 설립 초창기 박 명예회장은 포스코라는 기업을 중심으로 포항을 보았지, 포항이라는 도시를 통해 포스코를 구상한 것이 아니었다. 포스코는 처음부터 포항에 적극적으로 동화하고 융화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파생된 현상이 바로 ‘빗장 도시(Gated City)’ 혹은 ‘분단 도시(Devited City)’ 논쟁이다. 형산강을 기준으로 포항이 포스코와 비(非)포스코 지역으로 나뉘고, 포스코가 입지한 형산강 이남은 이른바 ‘강남’으로, 이북은 ‘강북’으로 회자됐다.
포항 사람은 ‘자본이 그어 놓은 분단선’에 따라 이른바 ‘포철인(포스코인)과 포항인’으로 구분되기도 하고 포스코 주택단지는 ‘특별사’ 혹은 ‘포철 왕국 안의 포철 황국’으로 부르기도 했다. 포스코의 효율적 경영을 위해 소위 강남 지역은 크게 발전했지만, 포항 구도심에 사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많이 늘어난 결과였다. 이에 따라 포스코에 대한 지역 사회의 불만도 크게 증대했다.
‘그들만의 도시’…반포스코 세력도 커져
무엇보다도 포스코가 서울 등 외지에서 온 직원들을 위해 건설한 사원 주택단지는 포항 사람들의 눈에 ‘그들만의 도시’로 보였다. 효자, 지곡, 인곡 단지에는 일반 포항주민의 입주가 금지되었고 포스코 부설 사립 초등학교는 특수 학군으로서 추첨 과정 없이 전원 포항제철중학교에 입학했다. 사립학교를 기반으로 포스코 종업원 자녀들의 학연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포스코 지역의 내부적 연줄망은 강화되었고 자신들만의 엘리트층 부촌을 형성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포스코 출신 신흥 외지 엘리트는 지역 사회문제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했다.
이에 맞선 토착 포항 사람들의 반 포스코 의식도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토착 엘리트는 외지 엘리트를 배제하고 포항 지역 내에서 포스코를 견제하고 반대하는 무리를 끌어들이며 세를 키웠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성장에 집중해 지역 사회와의 공존 노력이 부족했음을 뒤늦게 깨달은 포스코는 1980년대 들어 ‘포항 속의 포스코’라는 명제를 제시하고 포항시에 대대적인 투자를 시행하는 등 화해의 제스처를 던졌다. 덕분에 포항시민들의 포스코에 대한 반감도 어느 정도 희석됐다. 하지만 이미 결성한 반 포스코 세력을 포용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시설까지 서울로…‘미래의 포항’ 버린 것
포항시에는 대구광역시를 포함한 경상북도와 마찬가지로 외지인에 대한 배척이 존재한다. 이에 과거 포항 지역 국회의원들은 포항이 발전하려면 대구가 아닌 서울과 부산처럼 해야 한다면서 외지인이 객지 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외지인 배척은 반대로 말하면 ‘포항’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이 높다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포항시민들로서는 자신의 도시명을 딴 기업 본사가 외지에 설치된다는 점을 용납할 수 없다. 앞서 인천 송도로 본사를 이전한 포스코건설에 이어 이번엔 지주사 포스코홀딩스가 서울에 설치된다는 것은 포항시민의 자부심에 상처를 남긴 것이라고 여긴다.
여기에 미래기술연구원도 서울에 두기로 한 것은 ‘미래의 포항’을 버린 것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박 명예회장 시절의 포스코는 ‘미래의 포항’을 중시하며 학교와 연구시설 등을 대거 포항시에 설립했다. 자본 집약적 내지 기술 집약적 중산층 또는 엘리트 도시를 만들어 ‘현재의 포항’이 아닌 ‘미래의 포항’을 중시했다. 그런 핵심 조직인 미래기술연구원이 포항이 아닌 서울에 생긴다는 것은 포스코가 추구해온 포항시와의 공존 관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본다.
비철강 사업 성공 위해 지주사 전환 불가피
포스코는 기업이다. 기업이 생존과 성장을 위해 내리는 사업적 판단은 존중받아야 한다. 포스코 홀딩스는 철강을 넘어 수소와 2차전지 소재, 친환경 등 신사업의 성장을 위해 내놓은 최적의 방안이다.
포스코의 결정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며, 지역사회 논리에 굴복해 포항 설립으로 번복하면 발생할 투자자들의 반응도 회사로선 부담이다.
지주사 체제 전환을 결정할 때부터 포스코 경영진들이 과거의 교훈을 한 번이라도 검토하고 배려책을 마련했다면 지금과 같은 반대에 부딪히지 않을 수 있었다. 남은 기간 포항시민의 실망감을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가 관건이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