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50주년 맞아 최초 참여했던 정태조 전무 기증
인력‧지반‧사람‧자금 등 건설 기밀 빼곡이 기록되어
인력‧지반‧사람‧자금 등 건설 기밀 빼곡이 기록되어
이미지 확대보기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의 설립을 위해 작성한 최초 사업계획서에 언급된 건설 목표다.
6일 회사측에 따르면, 올해 현대중공업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현대중공업의 시작인 ‘울산조선소’ 건설에 관한 내용을 알 수 있는 책자인 ‘울산조선소 사업계획서’가 회사에 전달됐다.
책자를 보낸 이는 정태조 전 전무(전 엔진사업부 총괄, 1969~1997년 재직)다. 정 전 전무는 196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1971년 현대건설 기획실 소속 40여명의 직원들이 포함된 조선사업부로 자리를 옮겨 울산조선소 건설에 관한 초창기 사업계획서 작성에 참여했다.
책자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17만5000평(약 57만8513㎡)의 부지에 드라이도크 1기, 골리앗 크레인 2기를 갖추고 25만9000DWT 크기의 선박을 연간 5척 건조할 계획을 세웠다. 선박은 협력회사들과의 협약에 따라 외국조선소에서 사용하는 초대형 유조선 설계에 따라 건조될 예정이었으며, 이를 위해 기술직 250명, 사무직 190명, 공원(工員) 3460명 등 총 3900명을 고용하고자 했다.
또한 조선소 건설을 위한 자본과 대출금, 각종 원자재 및 기자재의 조달 계획 뿐만 아니라 선박 건조 비용에 따른 예상 손익 계산서 등도 연간으로 작성돼 있다.
아울러 1950년도부터 1970년도까지 해상 무역량 및 선복량을 비교하고 다가올 1980년도의 국가별 신조 수요를 예측하는 한편, 석유 유동량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세계 모든 조선소가 향후 수년간 수주가 꽉 차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조선사업의 시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책자에는 필요한 기술 인력 및 교육 계획과 철강 생산능력 등 조선업 관련 산업 현황에 대한 예측 자료가 포함돼 있다. 그리고 말미에는 울산조선소의 공장배치도와 함께 1973년 3월부터의 선박 건조 계획표, 공정 계통도, 사업 추진 일정표, 1971년의 미포만 수심도 및 해저 기반암 심도 등이 담겼다.
다시 한번 지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외항의 전하만이 발견됐다. 남쪽으로 미포만, 일산만이 연접해 있으면서 백사장이 고운 해수욕장이었다. 주택은 300호 정도였다. 지형이 좋았고, 무엇보다 튼튼한 암반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파도가 약간 있었으나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됐다. 보고를 받고 내려온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바로 기초조사를 지시했다.
6곳의 지반조사 결과는 아주 좋았다. 문제는 기후와 해상 여건이었다. 현대는 국립건설연구소(현 국토지리정보원)와 중앙관상대(현 기상청)에 조사분석을 의뢰했다. 국립건설연구소는 ‘방파제를 건설하면 파도가 1m 이하로 가라앉을 수 있다’, 중앙관상대는 ‘초속 20m 바람이 부는 날은 연중 극히 짧은 기간’이라는 보고서를 보내왔다. 긍정적 결과를 받아 든 조선사업부는 1971년 중반부터 토지를 매입하는 등 부지 조성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즈음 또 하나의 중대한 결정이 뒤따랐다. 세계 조선‧해운시장에서는 선박의 대형화 추세가 뚜렷해지자 15만~20만DWT급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를 건설하려던 계획을 전면 수정해 50만t급 이상의 초대형 유조선을 건조하는 조선소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의 조선소는 이미 100만DWT급 이상의 설비를 갖추기 시작했고,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도 나카사키조선소에 100만DWT 규모의 도크 건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대는 10만~20만DWT급 규모의 조선시설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1971년 7월 척당 최대 건조능력을 50만DWT급으로 하고, 26만~30만DWT급 VLCC(초대형원유운반선)를 연간 5척 건조한다는 내용의 ‘조선사업계획서’를 확정했다. 또한 차관 도입으로 조달한 막대한 투자비를 감당하기 위해 조선소 건설과 VLCC 건조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이후에도 조선사업계획은 여러 차례 수정됐다. 1972년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하면서 최대 건조능력을 70만DWT급으로 확대했다. 원래 1기로 잡혀 있던 드라이도크를 둘로 나누어 건설하기로 했다. 부지 198만3471㎡(매입 토지 99만1735.5㎡, 매립지 99만1735.5㎡), 건물 면적 14만1547㎡로 크게 확충했다. 그리고 1년 후 1973년 당시 최대 건조능력 100만DWT급 규모로 사업계획을 확대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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