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경영 대물림 없을 것” 천명…20여년 후 오너 없는 삼성 출현
이르면 내년 자산 1천조 기업 등극 전망, 오너 1인 체제 더 이상 무의미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이재용 부회장이 만들삼성 지배구조의 핵심 문제
이르면 내년 자산 1천조 기업 등극 전망, 오너 1인 체제 더 이상 무의미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이재용 부회장이 만들삼성 지배구조의 핵심 문제

지난 2020년 5월 6일 오후 서울 삼성서초타운에서 가진 대국민사과 자리에 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자신을 끝으로 더 이상 삼성은 ‘오너’가 중심이 되는 경영체제는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확고히 했다.
이에 따라 삼성의 오너경영체제는 3대로 마무리한다. 1968년생으로 지난달 23일 만 54세 생일을 맞이한 이 부회장이 삼성에서 활약할 시기는 약 20년 정도로 예상된다. 사실, 이 부회장의 선언은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이미 삼성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착된 기업이라는 점은 다수의 언론들을 통해 수도 없이 강조되어 왔다.
이병철 창업회장이 회사를 일으켰을 때부터 전문경영인이 경영 실무를 도맡았고, 이건희 선대회장 때에는 전문경영인들의 경영 권한을 더 많이 내려줬다. 세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의 2021년말 기준 자산총액은 약 915조원에 달했다.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이면 꿈의 숫자인 ‘천조(자산 1000조원) 기업’에 올라선다. 또한 2021년 매출액은 약 379조원, 영업이익은 약 43조원을 기록했다. 연간 평균 근무일수(299일)를 적용하면, 매일 약 1조2400억원 규모의 물건과 서비스를 판매하고, 약 1440억원을 이익으로 벌어들인다. 이러한 거대 조직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이 부회장이 혼자서 관리할 수 없다. 전문경영인 중심의 시스템 경영이 아니었다면 삼성은 이렇게 큰 조직이 될 수 없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는 ICT 기업들 가운데 가장 많은 경쟁자들을 추격, 경쟁하거나 따라잡았다. 가전과 TV, 반도체·디스플레이·소자, 휴대전화, 통신장비, 의료기기, 광학장비, 콘텐츠 서비스 등 ICT 전 분야를 영위하면서 해당 사업 모두 글로벌 1위, 최소한 10위권 이내의 시장 점유율을 갖춘 유일한 기업이 됐다.
이런 삼성전자 내부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 이 부회장이라고 한다. 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모두를 떠안을 수 없어서다. 지난 수년 전 삼성전자 반도체 책임자(부사장급)가 자기 전권으로 결제하는 금액 규모가 한 계약당 최대 3000억원이라고 했다. CEO(최고경영자)에게도 보고를 안 하는 책임자가 사장이 알아서 전결하는 규모가 이 정도다.
삼성 관계자들은 “모든 계열사 사장들이 이 회장에게 매일 사업 내용을 보고하면, 이 부회장은 결제만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야 한다. 세세한 일까지 이 부회장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며, 이 부회장도 원하지 않는다. 책임자의 전결 금액인 3000억원은 큰 돈이지만 연간 300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삼성에서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회장의 역할은 이러한 전문경영인들의 역량을 발견하고 키워주고, 그들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측면지원하는 것이다. 또한 전문경영인들간 경쟁 때문에 사업부문별간 발생하는 소통 부재와 사업 중복을 관리한다.
삼성 관계자는 “각 사업부 책임자들은 경주마처럼 서로 경쟁하면 앞만 보며 달린다. 자기 일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고, 다른 부서 사업이 어떻게 되는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모바일 사업부는 애플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데, 반도체 사업부는 반도체를 공급하는 애플과 싸우면 싫어한다. 이걸 조율하고 조정하는 게 이 부회장 역할이다”고 설명했다.
애플과 구글, 퀄컴 등 최고의 파트너이자 경쟁사의 CEO들과 만나 사업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중간자’도 이 부회장의 주요 업무들 가운데 하나다. 과거에 그가 최고소통책임자(CCO)라는 타이틀을 단 이유다.
앞으로 이 부회장에게 남은 중요한 과제들 가운데 하나도 자신이 맡고 있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경영인을 키워내는 것이다. 나아가 이 부회장이 자임하고 있는 ‘중간자’에 해당하는 최고위 리더 양성 체제도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 진다면 이 부회장의 ‘뉴 삼성’은 앞으로 20년 후 진정한 의미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