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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리더십-1] “이건 어떨까요?”…대화 통해 ‘합의’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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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리더십-1] “이건 어떨까요?”…대화 통해 ‘합의’ 구한다

삼성 회장 이재용의 ’뉴 삼성 리더십‘ ①
구성원간 결속력은 영속적 기업 필요 요건
소통은 통일된 목표를 지향‧실청하는 수단
이병철·이건희 회장 이어 JY식 소통 구사
‘의견 구하고, 빠르게 결론 내리며, 직접 행동’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 회장 승진’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재게에서는 다음달 1일 삼성전자 창립기념일에 승진할 것이 유력하다고 내다 보고 있지만 아직까지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내 승진은 확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본인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하지만, 이로써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 입문 31년, 경영 참여 21년 만에 삼성의 최고 자리에 오른다. 삼성은 이건희 선대회장이 별세한 지 2년여 만에 오너 총수 회장 체제로 복귀한다. 동시에 이재용 부회장을 상징하는 ‘뉴 삼성’ 작업도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재계 차원에서도 오너 3‧4세 총수 체제를 완성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창업회장, 선대회장과는 다른 새로운 리더십으로 뉴 삼성을 이끌어왔고, 그럴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용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례를 들어 9회로 정리해 보고, 뉴 삼성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9회에 걸쳐 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2011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CES 2011’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당시, 왼쪽)이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당시)과 참관자들과 함께 최근 IT 기술 동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삼성전자이미지 확대보기
2011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CES 2011’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당시, 왼쪽)이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당시)과 참관자들과 함께 최근 IT 기술 동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미전실장 만난 지 두 달 더 돼지 않았나요?”


지난 2016년 12월 6일.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청문회에 다른 총수들과 함께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한 의원이 “최지성 부회장(당시 미래전략실장)을 얼마나 자주 보냐?”는 질문에 “두 달 즘 됐다”고 답하자, 청문회 참석 의원들 전원이 믿지 못하겠다며, 왜 안 만나냐고 따지고 거짓말 한다고 호통을 쳤다.

점심을 같이 한 삼성의 한 임원에게 이 부회장은 “두 달 더 되지 않았나요?”라며, 그게 왜 잘못된 건지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억울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삼성 관계자는 이러한 이야기는 삼성의 경영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 사례라고 설명한다. 삼성 임원은 “그게(이 부회장이 잘 안 만나는 게) 맞다. 정말 잘 안 만난다. 삼성은 그렇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여는 ‘뉴 삼성’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반드시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삼성은 ‘상명하달’의 기업인가라는 것이다. 상명하달 체제의 최정점은 창업주와 그를 잇는 오너 경영인들이다. 작은 규모의 기업은 오너가 모든 것을 관리하고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이러한 구조가 가능하다. 하지만 수백명이 넘는 큰 조직은 대표 한 사람이 모든 구성원을 관리하기는 어렵다. 상명하달의 대표 조직인 군대조차도 500명 이상인 대대 급부터 인사·정보·작전·군수 등의 참모 조직이 갖춰진다. 이들 참모는 지휘관이 올바른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측면에서 지원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성장이 이뤄지면 더 이상 오너의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끌어 나가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물론 상명하달식 조직체계가 필요한 산업도 존재하며 지금까지 생존한 기업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으며 수많은 기업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삼성 경영진들은 “기업은 망할 수 있기 때문에 강해진다”는 말을 신봉한다. 언제든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서 지금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과 긴장감은 삼성이 생존을 갈망하는 가장 큰 이유다.

영속적 기업을 넘어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나아가려면 모든 임직원들의 강력한 결속력이 필요하다. 이러려면 최고경영자(CEO)로부터 말단직원까지, 또는 반대로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의 목표를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이 중요하다.

삼성의 오너들은 이러한 소통을 가장 고민했고, 방법을 3대에 걸쳐 진화시켜왔다. 각각의 사례를 살펴보면, 삼성의 문화가 상명하달식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호암 “얘기해 보라”→“와 그렇노”→“우짤라 그러노?”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독특한 질문법을 구사했다. 회의를 하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얘기해 보라”는게 전부다. ‘얘기해 보라’는 건 그 사람이 맡은 조직에 대해 현재 상황, 가장 중요한 이슈·원인·대책·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말하라는 뜻이다. 조직의 장으로서 모든 일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알기 위한 질문이 바로 “얘기해 보라”다.

회의에 소집된 이들이 각자 조직의 전체적인 상황 분석, 문제 인식, 해결 방안 등을 정리해 두지 않으면 아무 얘기도 꺼낼 수 없었다. 지엽적인 문제를 말하면 경영자로서 자질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러저러한 문제·과제가 있습니다’라고 얘기하면 경상도 사투리로 “와 그렇노”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이에 대해 단편적으로 답해서는 합격점을 받을 수 없다. 적어도 다섯 번 정도는 “와 그렇노” 소리는 들어야 그 질문이 끝났다. 문제의 본질과 심층적인 원인까지 알고자 하는 의도였다.

“와 그렇노”가 끝나면 “우짤라 그러노”가 이어진다. 바로 ‘대책’이다. 의사결정이라는 건 문제의 원인 분석, 거기에 대한 대책 수립이 핵심이다.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러이러하게 언제까지 하려고 합니다’라는 식으로 답하면 “그거만 하면 다 되노”가 따라왔다.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잠재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위험성, 즉 리스크 요인을 미리 설정해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즉 호암의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질문에는 ‘상황 분석→원인 분석→의사 결정→잠재 문제 분석’의 순서가 정리돼 있다.

이건희 회장, 직원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판단’만


이건희 선대회장은 전략의 방향성만 제시하고,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 지, 추진방법과 실행계획 등의 절차는 철저히 사장단 및 실무진에 맡긴다. 실무진들은 이 회장의 뜻을 담아내고 그 방향을 더 확장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기획안에 담아 이건희 회장에게 ‘제안’한다. 이 제안이 생각과 일치하면 이건희 회장은 ‘신호’를 내는데, 신호는 ‘결정’이 아니라 ‘판단’이다. ‘판단’은 실무진들이 놓친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전자 상무로 컴퓨터지원설계·제조(CAD·CAM) 프로그램 개발을 주도하며 삼성의 ‘신경영 혁신’을 지원했던 요시카와 료조 일본 도쿄대 모노즈쿠리경영연구센터 특임연구원은 “이건희 회장은 10년, 100년 후까지 응시하면서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되 구체적이고 세세한 것들은 말하지 않고, 직원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직원들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토록 한 뒤 ‘좋다’ 또는 ‘이런 것을 고쳤으면 한다’고 제안을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오시카와 연구원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글로벌 시장에서 매 순간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 없다. 또한 사원들에게 감내할 수 없는 큰 역할을 담당하게 하면서도 최종 결정은 자신이나 최고경영진이 내리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책임은 이 회장 또는 최고 경영진이 지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이 직원들의 제안을 판단하는 동안 이미 삼성은 그 제안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최고경영자(CEO)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손을 놓고 기다려야 하는 경쟁사들에 비해 일 처리 속도가 훨씬 빨리 이뤄진다.

이재용 부회장, 경청·자문 통해 미래 큰 그림 그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인수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이죠?”

2014년 가을,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채권단이 제안한 KAI 인수 안건이 올라오자 이 부회장은 삼성테크윈 경영진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KAI 인수 불참을 포함한 방위사업 중단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자의반 타의반 발표를 못하고 있었다. 명쾌한 답변을 듣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이 부회장은 이미 머릿속에 구상했던 정리방안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질문을 던졌다.

그해 11월 26일, 삼성그룹은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한화그룹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이 거래는 양 그룹 대표인 이재용 부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간 담판을 통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사업 지속 여부를 두고 장기간 고민해왔던 삼성과, 방위사업을 더 키우고 싶어 한화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묘수였다.

위의 예처럼, 이 부회장의 소통은 ‘의견을 구하고, 빠르게 결론을 내리며, 직접 행동한다’로 진화했다. 복수의 삼성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최고경영진 회의나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이걸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라는 ‘의견’을 제시한다고 한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 부회장은 연륜이나 경력이 모두 선배인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에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의견을 제시하고 자문을 구한다고 한다. 제안을 하기 위해 이 부회장은 전문경영인 말을 많이 받아준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듣고, 객관적인 분석과 고민한 끝에 제안을 한다. 이를 CEO들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면 동의하며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삼성의 CEO들은 이 부회장의 뜻이 이렇고,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생각해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토론 끝에 전문경영인의 생각이 맞는다면 이 부회장은 그 말을 따른다고 한다.

전문경영인들이 이 부회장에게 보고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한번이라도 보고를 하면 수많은 보고 때문에 이 부회장은 본연의 역할, 즉 뉴 삼성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 전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호암과 이건희 회장의 소통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이 부회장은 어떤 업무가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잘 되고 있죠?”라는 식으로 물어보는 것일 뿐 내용이 궁금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일반 국민적인 시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삼성에서는 안착되어 있다. 이 부회장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말은 모든 것을 지시하는 제왕이기 때문이 아니라, 큰 결정을 책임지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