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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가스 황금시대, ‘고망간강’ 무장한 K-조선이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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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가스 황금시대, ‘고망간강’ 무장한 K-조선이 주도한다

2018년 신소재로는 최초로 IMO 국제표준 승인, 상용화 길 열어
2030년까지 전세계 최대 3000척 건조, 이중 60% LNG선 전망
포스코‧대우조선, 중소기업에 기술 제공 ‘소부장 생태계’ 완성
지난 10월25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고망간강 LNG 연료탱크가 세계 최초로 건조 중인 2만4000TEU급 컨테이너 운반선에 탑재되고 있다. 사진=대우조선해양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10월25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고망간강 LNG 연료탱크가 세계 최초로 건조 중인 2만4000TEU급 컨테이너 운반선에 탑재되고 있다. 사진=대우조선해양
“K-조선산업의 미래가 이곳에 있습니다.”

지난 3일 찾아간 대우조선해양 직원은 옥포조선소 A 안벽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는 올해 가장 눈에 띄는 두 척의 선박이 정박되어 있었다.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극저온용 고망간강’(이하 고망간강)으로 만든 액화천연가스(LNG) 연료탱크를 세계 최초로 탑재한 선박들이었다.

첫 번째는 지난 6월 가스통 모양의 고망간강 LNG 연료탱크를 선박 위에 얹은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이고, 두 번째는 선체 내에 박스 모양의 고망간강 LNG 연료탱크를 집어넣은 2만4000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급 초대형 컨테이너 운반선이었다.

드라이 도크에서 건조 중인, 건조를 마치고 바다 위에 떠 있는 LNG운반선도 많아 LNG선 수주 풍년을 실감했지만, A 안벽에서 본 두 척의 선박은 향후 30년간 한국 조선산업이 바다 위에서 펼쳐질 ‘천연가스 황금시대(Golden Age of Gas)’를 주도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상징으로 비춰졌다. 그 중심에는 포스코와 대우조선해양이 있다.

LNG 선박에 이어 육상 터미널 등 적용 범위 넓어


LNG 추진 선박의 연료탱크로 시작했지만 ‘고망간강’은 LNG와 관련한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고망간강을 개발한 포스코 측은 “LNG 추진 선박뿐만 아니라 LNG 운반선 등 관련 선박과 해양 플랜트는 물론 육상 터미널 저장탱크, LNG 차량, 파이프라인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활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풍부하고 니켈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망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경제성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NG용 소재 중 가장 저렴한 9% 니켈강에 비해 약 30% 저렴해 기존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고망간강의 상용화를 위해 포스코가 개발한 직후인 2003년부터 지금까지 공동 연구를 이어왔고, 이번에 LNG 추진선용 연료탱크 세계 최초 적용이라는 결실을 보았다.

포스코가 대우조선해양을 파트너로 낙점한 데에는 LNG와 관련해 가장 많은 기술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LNG와 관련한 모든 선박과 플랜트를 설계하고 건조한 경험이 있다”면서 “고망간강 덕분에 대우조선해양은 LNG 부문에서 획기적인 경쟁력을 더했으며, 향후 대규모 수주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라고 말했다.

소재로는 처음으로 ISO 국제표준 등재

극저온용 고망간강은 2000년대 들어 선진국의 견제로 진입이 어려웠던 국제표준에 등재된 첫 신소재이기도 하다.

176여 국가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국제해사기구(IMO,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의 가스연료 추진 선박기준 규정에 따르면, 극저온 LNG 탱크 소재는 니켈합금강, 스테인리스강, 9% 니켈강, 알루미늄합금 등 네 종류만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순수 한국기술인 극저온용 고망간강이 LNG 탱크 소재로 사용되려면 새롭게 국제기술표준에 등재되어야만 했다. IMO 규격 등재는 4년을 주기로 승인이 이뤄지기 때문에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회원국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하는 높은 관문이 존재했다.

포스코와 해양수산부는 지난 2015년부터 한국선급(KR), 안규백 조선대학교 교수 및 대우조선해양 등과 극저온용 고망간강의 IMO 규격 등재를 위해 노력해왔다. 검증 단계를 거치지 않은 신소재에 대한 회원국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이에 포스코 연구원들은 부정적인 시각을 보인 국가를 찾아가 설득하는 일을 되풀이했다.

결국, 극저온용 고망간강 소재 적합성과 안전성에 대한 많은 실험과 연구 결과를 통해 고망간강에 관심을 보인 국가들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2018년 12월 영국 런던 IMO 본부에서 열린 ‘제100차 해사안전위원회’에서 극저온용 고망간강이 국제기술표준 승인을 받았다. 해사안전국(MSC, Maritime Safety Committee)의 승인을 통해 극저온용 고망간강은 그동안 적용하지 못했던 LNG 선박 및 LNG를 원료로 운영하는 선박에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19년부터 IMO 각 회원국에서 극저온용 고망간강을 LNG 탱크용 소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IMO 국제기술표준 승인은 고망간강 같은 새로운 소재가 해사안전국을 통해 승인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되었다.

LNG추진선, 향후 30년간 주력 선박 될 것


자동차 업종에서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가 각광 받듯, 조선업에서도 LNG 추진선과 같은 친환경 선박이 주목받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이 지난 2020년 8월 발표한 ‘新造(신조) 발주 집중될 친환경 선박분야 경쟁현황과 향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LNG 추진선 건조 규모는 2020년 20조원에서 5년 만에 6배 이상인 13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9년까지 발주될 선박은 2500~3000척으로, 2030년이 되면 국내 건조되는 선박의 60%가 LNG 추진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이에 따라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이 뛰어난 고망간강의 잠재수요는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며, 현재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사가 수주하고 있는 선박 대부분이 LNG를 연료로 한 친환경 선박이다.

특히, 포스코와 대우조선해양은 중소기업과 ‘상생협력’의 일환으로 고망간강을 이용한 제조기술 등을 중견‧중소기업들에 개방하고 있다. 이번에 선내에 탑재한 박스 모양의 고망간강 LNG 연료탱크는 상상인더스트리가 제작해 대우조선해양에 납품했다. 양사는 고망간강을 종심으로 대한민국 고유의 LNG 연료탱크 생태계를 구축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물론 LNG를 과도기적 연료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2020년부터 시작된 ‘IMO 2020’, 즉 배출가스의 황산화물 양을 기존 3.5%에서 0.5%로 낮춰야 하는 규정 △2008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을 40% 줄여야 하는 ‘IMO 2030’을 거쳐 70% 줄이는 ‘IMO 2050’까지 가게 되면 수소가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탄소 제로화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가 오기까지 최소한 향후 10년, 최장 30년 이상 걸리므로 이 기간을 대표할 친환경 선박은 LNG 추진선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모든 전문가가 이견을 달지 않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철강사‧조선사‧탱크 제작사를 포함하는 대한민국 선박용 고망간강 LNG 저장탱크의 공급망이 완성됨에 따라 미리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