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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하늘 위 오피스' 개인 전용기…억만장자에겐 '사치' 아닌 '생존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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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하늘 위 오피스' 개인 전용기…억만장자에겐 '사치' 아닌 '생존 도구'

포브스 설문서 '절대 필수품' 1위…상업 항공편 없는 곳까지 '시간'을 지배
수십억에서 수천억까지 가격 천차만별…최근엔 '지분 공유·구독' 모델로 진화
2012년 7월 7일 영국 남부에서 열린 '판버러 에어쇼'를 앞두고 비즈니스 제트기의 대명사인 걸프스트림 G550(뒤)이 봄바디어 CRJ900의 뒤를 이어 착륙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2012년 7월 7일 영국 남부에서 열린 '판버러 에어쇼'를 앞두고 비즈니스 제트기의 대명사인 걸프스트림 G550(뒤)이 봄바디어 CRJ900의 뒤를 이어 착륙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자산 10억 달러(약 1조 3626억 원) 이상의 억만장자들이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단 한 가지’로 꼽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40명의 억만장자에게 물은 결과, 가장 많은 12명이 '개인 전용기'를 지목했다. 이들은 개인 전용기를 단순한 사치품을 넘어, 시간을 지배하고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필수적인 '사업 도구'이자 '핵심 기반 시설'로 여긴다.

가장 큰 이유는 압도적인 '시간 절약'이다. 일반 항공편은 공항 이동부터 보안 검색, 탑승, 대기까지 수 시간이 걸리지만, 개인 전용기는 공항 도착 즉시 이륙할 수 있다. 이용 가능한 공항의 수도 비교가 안 된다. 예를 들어 미국 텍사스주에는 민간용 공항이 389곳이나 있지만, 정기 상업 항공편이 취항하는 곳은 단 25곳(6%)에 불과하다. 개인 전용기를 이용하면 나머지 364곳의 공항을 자유롭게 오가며 이동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 "하루가 20분으로"…사치 아닌 '시간을 사는' 도구

부동산과 운송 등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는 억만장자 데이비드 호프먼은 "사업 거점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개인 전용기 없이는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동유럽 알바니아 최초의 억만장자인 사미르 마네 역시 "사업을 하는 국가들 사이에 좋은 항공편이 없어 자가용 제트기를 구매했다"고 밝혔다.
그는 "수도 티라나에서 사라예보 매장까지 전용기로는 20분이면 가지만, 일반 항공편으로는 하루가 꼬박 걸린다"며 "런던이나 프랑크푸르트에 있었다면 필요 없었겠지만, 알바니아에 있는 한 개인 전용기는 필수"라고 덧붙였다. 부동산 투자가 래리 코너 또한 "이것은 사치품이 아닌 사업 도구"라고 강조했다.

물론 '시간을 사는 비용'은 막대하다. 설문에 참여한 억만장자 4명은 '지금까지 산 가장 비싼 물건'으로 개인 전용기를 꼽았다. 항공기 중개 회사 CFS 제츠에 따르면, 중고 소형기는 100만 달러(약 13억 6260만 원)부터 시작하지만, 봄바디어의 최상위 모델 '글로벌 7500'은 7500만 달러(약 1021억 원)에 이른다. UFC 투자로 성공한 프랭크, 로렌조 퍼티타 형제는 2020년 이 모델을 각자 한 대씩 사들였다.

일부 부호들은 아예 대형 여객기를 개조해 쓰기도 한다. 러시아의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를, 알리셰르 우스마노프는 에어버스 A340을 자가용으로 구매했는데, 그 비용은 개조비를 포함해 최대 5억 달러(약 6812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들의 항공기는 우크라이나 침공 뒤 서방 제재로 발이 묶였다.

◇ '소유'에서 '공유'로…달라지는 전용기 시장의 풍경

하지만 최근 개인 전용기 시장의 흐름도 바뀌고 있다. CFS 제츠의 휴 채텀 영업 담당 부사장은 "개인 전용기 여행이 항상 호화로운 것만은 아니다"라며 "많은 부호들은 시간과 경비를 아끼기 위해 작은 비행기에 여러 명이 타고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소유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플라이트어웨어' 같은 비행 추적 앱으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커지자, 여러 개의 유한책임회사(LLC)를 통해 소유주를 숨기는 것은 기본이 됐다. 나아가 유지·관리 비용을 줄이려고 연간 이용 시간만큼 비용을 내고 지분을 공유하는 '지분 소유제'나 월 구독료를 내고 항공기단을 이용하는 구독 모델이 인기를 끈다. 앞서 소개된 사미르 마네 역시 최근 1180만 달러(약 160억 원)에 자신의 제트기를 매각한 뒤, "지금은 비스타(Vista)나 넷제츠(NetJets) 같은 임대 서비스를 이용한다"며 달라진 흐름을 전했다. 개인 전용기가 단순한 부의 상징을 넘어 이동의 자유와 효율, 사생활을 보장하는 필수 기반 시설로 진화하면서 소유 방식 또한 빠르게 다양해지는 모습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