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은행들, 1200조원 화석연료에 쏟아부어…'기후 약속'은 휴지조각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은행들, 1200조원 화석연료에 쏟아부어…'기후 약속'은 휴지조각

JP모건 등 미국계 은행이 투자 주도…'넷제로 연합' 탈퇴하며 약속 폐기 가속
IEA '목표와 양립 불가' 경고에도…기업대출 허점 이용해 '자금 수혈'
미국 은행들을 중심으로 화석 연료에 대한 자금 지원이 급증하면서 금융권의 기후 약속 후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은행들을 중심으로 화석 연료에 대한 자금 지원이 급증하면서 금융권의 기후 약속 후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로이터
세계 주요 대형 은행들이 기후 관련 약속을 뒤집고 지난해 화석 연료 사업에 대한 투자를 큰 폭으로 확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1년 이래 줄곧 감소하던 화석 연료 투자가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JP모건 체이스를 비롯한 미국계 은행들이 투자를 이끌면서 금융권의 기후 위기 대응 의지에 근본적인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7일(현지시각) 레인포레스트 액션 네트워크와 시에라 클럽 등 기후 옹호 단체는 '기후 혼돈에 투자하는 은행업' 보고서를 공동으로 펴냈다. 보고서를 보면, 세계 60대 은행은 2024년 한 해 동안 화석 연료 기업에 8694억 달러(약 1193조 원)를 쏟아부었다. 이 액수는 지난해보다 23% 급증했으며, 스위스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다.

이러한 흐름은 화석 연료의 단계적 퇴출에 합의한 국제 사회의 약속에 역행한다. 2015년 맺은 파리 협정은 지구 온난화를 산업화 이전보다 1.5°C 높은 수준에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2024년 지구 온도는 사상 처음으로 이 임계치를 넘어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또한 새로운 화석 연료 사업은 1.5°C 목표 달성과 양립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 JP모건 필두로…미국계 은행이 투자 주도
자금 공급은 미국계 은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JP모건 체이스가 535억 달러(약 73조 4287억 원)를 투자해 1위를 차지했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460억 달러)와 씨티그룹(447억 달러)이 그 뒤를 따랐다. 유럽계인 바클리스는 4위에 올랐지만, 상위 12개 은행 가운데 유일한 비미국계 은행이었다. 이들 상위 4개 은행은 모두 지난해보다 투자를 100억 달러(약 13조 7250억 원) 이상 늘렸다.

◇ '규제 허점' 이용하고 약속은 '헌신짝'

투자 급증의 배경에는 은행들이 스스로 내건 기후 약속을 노골적으로 저버리는 흐름이 있다. 미국 주요 은행들은 2024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전후해 유엔 주도의 '넷제로 은행 연합'에서 잇달아 탈퇴하는 등 약속을 철회하거나 완화하는 흐름이다. 여기에 사업별 투자는 막으면서도 기업 전체에 대한 대출은 허용하는 정책의 허점과, 화석 연료 기업의 자금 조달을 쉽게 해준 저금리 환경도 투자 확대를 부추겼다.

논평 요청에 JP모건 체이스 등 대부분 은행은 답변을 거부했다. 씨티그룹 대변인은 "에너지 안보에 대한 세계적 수요를 채우면서 전환의 필요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려도 화석 연료에 대한 자금 지원을 계속하는 한 기후 혼돈은 깊어지고 청정에너지 개발은 가로막힐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옥스퍼드 지속가능 금융 그룹의 벤 칼데콧 이사는 "탈탄소화 의지가 전혀 없는 기업으로 너무나 많은 자금이 흘러 들어간다"며 "기업들이 믿을 만한 전환 계획을 이행하도록 효과적인 자금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인포레스트 액션 네트워크의 앨리슨 파얀스-터너 정책 책임자는 "구속력 있는 규제가 없다면 기후 혼란을 부추기는 은행의 투자 행태는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