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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에 투자비 늘고 수요 줄어…불황에 움츠린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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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에 투자비 늘고 수요 줄어…불황에 움츠린 기업들

수요 위축에 화학업계 투자속도 조절...비용 급증 부담
기존 투자계획 재검토·감산 돌입...비주력 사업 정리도

금호석유화학 울산고무공장.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금호석유화학 울산고무공장.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경기침체로 국내외 수요가 위축되자 화학업계를 중심으로 기업들이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한동안 이어진 고환율 상황의 여파로 기존 계획보다 투자 비용이 늘어난데다 수요회복은 지연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은 의료용 장갑 원료로 사용되는 주력 제품인 NB라텍스 증설 계획과 관련해 투자 비용이 기존보다 205억원가량 늘었다고 최근 공시했다. NB라텍스 생산설비 투자금액은 기존 2560억원에서 2765억원으로 증가했고 투자종료 예상 시점도 기존 2023년 12월 31일에서 2024년 4월 30일로 미뤄졌다.
금호석유화학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대외환경 변화와 안전관리 강화 등으로 투자금액과 투자기간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6월 연산 24만톤 NB라텍스 생산시설 증설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총 2560억원을 들여 울산 석유화학단지의 NB라텍스 생산시설을 증설하고 2023년까지 총 95만톤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 상황 때문에 투자 비용이 늘어나는 데다 자재 조달도 여의치 않자 투자종료 시점을 4개월 늦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코로나 특수를 누렸던 NB라텍스 수요가 꺾이고 당분간 시장 가격도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속도 조절에 나선 모양새다. 실제 금호석유화학의 3분기 실적을 보면 합성고무 사업 영업이익이 840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62.2% 급감했다. 지난해 코로나 유행기에 급증한 NB라텍스 판매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다만 금호석유화학은 NB라텍스 시장의 장기적 성장세가 견고한 것으로 보고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LG화학도 NB라텍스 투자에 숨을 고르고 있다. 국내와 중국, 말레이시아에서 설비 증설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최근 수요가 급감하자 투자 속도를 늦추고 있다. 공급 과잉 상황에서 무리하게 투자하기보다 수요와 경기 상황을 점검하면서 진행 상황을 조율한다는 방침이다.

또 업계 전반적으로 전방 수요가 위축되면서 LG화학, 대한유화[006650], 여천NCC 등 화학업계는 잇따라 정기보수에 나서고 있다. 제품을 만들어 팔아도 손해가 나는 상황이라 일단 공장 가동을 멈추고 정비와 안전에 집중한 뒤 업황이 회복되면 최대한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배터리와 반도체 업종 기업들도 국내외 투자계획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3월 애리조나주 퀸크리크에 1조7000억원을 투자해 연산 11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원통형 배터리 신규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으나 3개월만인 지난 6월 계획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과 환율 여파로 당초 계획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되자 보류한 것이다. 다만 북미 배터리 시장의 급속한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투자 계획을 뒤엎는 수준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로 3분기 '어닝 쇼크'(실적 충격)을 경험한 SK하이닉스도 내년 투자 규모를 올해보다 50% 이상 줄이기로 했다. 10조원대 후반으로 예상되는 올해 투자액 대비 내년 투자 규모를 50% 이상 줄이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량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일정 기간 투자 축소와 감산(減産) 기조를 유지하면서 시장의 수급 밸런스가 정상화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거나 부실 자회사에 손을 보는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태양광과 화학 사업에 집중하는 OCI는 지난 9일 이사회를 열어 진공단열재(VIP) 사업을 철수하기로 했다.

OCI의 고성능 진공단열재 '에너백(ENERVAC)'은 높은 단열 성능과 내구성으로 냉장·냉동창고, 산업용 단열재, 바이오 의약품 운송 용기 등에 쓰였으나, 단열재 수요가 줄면서 작년과 올해 상반기 매출은 각각 121억원, 47억원에 그쳤다.

SKC는 반도체 장비·부품 자회사인 SK솔믹스가 부분 자본잠식 상태인 SK텔레시스를 흡수합병하기로 했다고 최근 공시했다. 현재 SKC솔믹스와 SK텔레시스는 모두 SKC의 100% 자회사다.

회사 측은 "계열사 내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사업 주체를 일원화해 관리 효율성 증대, 사업 성장 실행력 강화, 신사업 발굴 및 육성 등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목적을 밝혔다.

SK텔레시스는 2000년대에 통신 중계기·휴대전화 제조업을 했으나 사세가 기울어 2010∼2015년에 연속 적자를 냈다. 지난해에는 통신장비 부문을 팬택C&I에 매각하고 전자재료 사업 부문의 반도체 소재·부품 사업에 집중해왔다.


김태형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adkim@g-enews.com